3월 16

성도들(Saints)의 행진

    어제 로마 카톨릭의 프란체스코 교황이 테레사 수녀(1910-1997)의 성인(saint) 추대를 승인했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오는 9월에 시성식(성인 추대 의식)을 한다고 하니 적어도 수십만 명 또는 백만 명 이상이 몰려들어 성대하게 치러질 것인데, 평생 빈민들을 위해 헌신해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그녀를 카톨릭 교회가 성인의 반열로 올리는 것이야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늘 해왔던 그들의 교리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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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

이 땅에서 살아야 할 하나님 아버지의 집

    오늘 TV로 중계된 낸시 레이건(Nancy Reagan) 여사의 장례식을 보았습니다. 미국 현대사에 한 획을 그었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의 영부인으로서 내조를 잘 했다고 평가받는 사람의 장례식인지라, 전직 대통령과 영부인들 및 각계의 명사들이 다수 참석했고, 전형적인 미국 장례식 답게 조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낸시 여사를 회상하며 수시로 조크를 던져 웃음을 유발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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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9

날아가는 사람?

    오늘은 제가 미국에 온 지 42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살에 이민 와서 환갑을 넘겨 미국에 살고 있으니 제 인생의 3분의 2 이상을 미국에서 산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1974년 3월 9일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오던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포공항을 떠나 일본 동경 하네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 타고,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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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9

소비자가 있는 한…

    멕시코는 세계 제 1의 마약 수출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나라인데, 그것은 멕시코의 많은 카르텔(마약 조직)이 화물선과 잠수정 및 각종 군사 장비를 갖추고 마약을 수월하게 운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약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여서 카르텔 두목들이 부를 축적하고, 또 수많은 조직원과 그들의 가족이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마약을 많이 생산하고 수월하게 나를 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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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7

더러운 안전을 택하는 이유

    얼마 전, 마약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멕시코의 소도시 시장으로 당선된 여성 시장이 취임한 다음 날 자택에 침입한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는데, 이런 사건은 멕시코에서는 흔히 발생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멕시코에서 암살 당한 정부 고위 관리와 시장이 100명이 훨씬 넘고 언론인도 100명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거의 전부가 카르텔(cartel, 마약 조직)의 소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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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2

그동안 왜 아무도 설명을 해주지 않았을까요?

    어제 3월 1일, 어릴 때 한국에서 매년 3월이 되면 달달 외워서 부르던 ‘삼일절 노래’가 떠올라 아주 오랜만에 불러 보았습니다. 노래를 부르다 보니 근 50년 전에 불렀던 이 노래의 가사가 다 기억나서 나의 기억력이 그리 쇠퇴하지 않은 것에 스스로 놀라다가, 문득 그때 가사 중에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게 있었음이 생각나서 인터넷을 뒤져 확인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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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9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인생

    나흘 전에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죽음에 이르는 고통‘ 이라는 제목으로 이 블로그에 글을 쓰고 난 후 자주 생각나서 불렀던 노래를 오늘 새벽 어떤 젊은 경찰관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접한 후엔 하루종일 흥얼거렸습니다.   언젠가 사라질 세상에 아무런 미련 두지 않고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인생을 복음 위해 살리 창세 전에 하나님 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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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죽음에 이르는 고통

    열흘 전에 아는 분의 부고를 들었었는데, 어제 또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두 분 다 불치의 병을 앓다가 생을 마감했는데, 요즘 시대에는 별로 늙었다고 여겨지지 않는 환갑을 금년에 맞게 될 사람들입니다. 저의 고등학교 동기생들이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나기 시작해서 지난 몇 년 동안은 점점 부고가 자주 날아오더니 그 수가 벌써 50명에 이르러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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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잘못하신 적이 없는 주님

    “내가 86년간 그리스도를 섬겨오는 동안 그분은 단 한 번도 나에게 잘못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2세기 때 소아시아의 서머나교회 감독이었던 폴리캅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저주하고 가이사에게 제사를 드리든가, 아니면 죽음을 택하라”는 총독의 회유에 단호하게 대답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또 해야되는 말이라고 생각하므로 저도 사용하고자 합니다. “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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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

열흘 여행기 (28): 하루에 버가모에서 빌라델비아까지 4

    1월 25일(월) 오후 늦은 시각, 우리 일행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이자 이날 네 번째 방문지인 옛 빌라델비아교회가 있던 도시 알라셰히르에 도착했습니다. 1세기 때 빌라델비아(Philadelphia)는 사데(Sardis)에서 남동쪽으로 45 킬로미터, 라오디게아(Laodicea)에서 북서쪽으로 75 킬로미터쯤 떨어진 도시였습니다.     빌라델비아는 BC 189년에 버가모왕국의 왕 유메네스 2세가 동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세운 도시인데, 도시 이름을 자신이 동생인 아탈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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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

열흘 여행기 (27): 하루에 버가모에서 빌라델비아까지 3

    1월 25일(월) 우리 일행이 세 번째로 찾아간 곳은 두아디라에서 남쪽으로 40 킬로미터쯤 떨어진 옛 사데교회가 있던 사르트(Sart) 입니다. 사데(Sardis)는 주변 지역보다 약 450 미터 이상 높은 고지에 자리잡고 있었고 뒤에는 높은 산이 방패막이가 되어 준 천연의 요새여서 외부의 침략에도 비교적 안전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BC 7세기 이전부터 리디아왕국(Kingdom of Lydia)의 수도로서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감당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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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

열흘 여행기 (26): 하루에 버가모에서 빌라델비아까지 2

    1월 25일(월) 버가모(Pergamum)를 둘러보고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남동쪽으로 65 킬로미터쯤 떨어진 옛 두아디라(Thyatira)교회가 있던 아키사르 라는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위치상으로 숱한 전쟁을 겪고 피해를 입어 파괴된 폐허 위에 다시 건설하기를 반복했으므로 1세기의 유적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그래서 이곳엔 비잔틴 시대인 6세기 때 건축된 교회당의 유적만 달랑 남아 있었습니다.   6세기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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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

열흘 여행기 (25): 하루에 버가모에서 빌라델비아까지 1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인 1월 25일(월)은 옛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네 교회가 있던 곳을 하루에 다 둘러보아야 하므로, 아침 일찍 이즈미르(서머나, Smyrna)의 숙소를 출발하여 북쪽으로 90 킬로미터 떨어진 버가모(Pergamum)부터 시작해서, 남동쪽으로 두아디라(Thyatira), 사데(Sardis), 빌라델비아(Philadelphia)를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시간에 쫓기며 돌아다니다 보니 대충 훑어본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있던 곳을 다 방문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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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

열흘 여행기 (24): 에베소에서 그려본 에베소교회 7

    60년대 중반에 에베소교회가 주위의 영향과 거짓 교사들의 출현으로 휘청거리고,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2차 공판을 기다리고 있었을 무렵인 60년대 말에는 소아시아의 다른 교회들마저 바울을 저버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디모데후서 참조). 하지만 약 25년 후에 에베소교회는 거짓 지도자들을 가려내는 분별력이 생겼고, 주위의 영향에도 타협하지 않고 핍박을 견뎌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는, 꽤 성숙한 교회로 발전해 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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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

열흘 여행기 (23): 에베소에서 그려본 에베소교회 6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디모데전서를 통해 63-64년경 에베소교회가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 그리고 주위의 타락한 문화와 타협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혼란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에서 “경건(godliness)” 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세상과 구별된 참된 경건한 삶을 강조한 것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2:3) “크도다 경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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