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turn to 예짜 교회

예수님짜리 교회 51 – 60

51. 현대 설교의 문제 (7)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51 현대 설교의 문제(7)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32)>   바로 앞에서 Proof Texting의 예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불신자에게 전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 수 있음을 언급했습니다. 흔히 그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는 성경본문인 마태복음 28:18-20을 먼저 살펴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마태복음 28:18-20에 있는 소위 ‘지상명령’이 1세기부터 오늘날까지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

View page »

52.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1)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52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1)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33)>   이제 앞에서 간간이 언급했던 리더십과 권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처럼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리더십과 권위를 교회에 대입해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돌아가기 위해 그런 리더십과 권위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크게 오해하는 …

View page »

53.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2)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53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2)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34)>   전신자 제사장주의를 아무리 외쳐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현대 교회에서는 비성경적인 성직자 계급(목사, 전도사, 사제 등)과 평신도의 구분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지도자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교회 안에 지도자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신약성경이 지향하는 유기적 교회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살펴보았습니다(물론 …

View page »

54.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3)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54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3)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35)>   바로 이전 글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마쳤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람들은 예외가 아닙니까?” 신약성경의 교회에는 직분이라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영어 성경에 ‘office’ 라고 번역된 말과 한글 성경에 ‘직분’으로 번역된 말의 헬라어 단어는 ‘직분’ 이라는 뜻이 아님), …

View page »

55.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4)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55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4)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36)>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0장에서 경계하신 “이방인의 집권자들”과 “그 고관들”의 권세, 곧 이 세상의 피라미드 조직 안에서 행사되는 상명하달식의 권세가 아주 오래 전부터 교회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행사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 교인들은 아무 생각없이 이것을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두신 권위인 …

View page »

56.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5)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56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5)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37)>   바로 앞에서 프랭크 바이올라의 책 Reimagining Church(다시 그려보는 교회)를 인용하면서 ‘커버링’ 이라는 것이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써 사실은 종교적인 옷을 걸치고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숨은 의도가 그 밑에 깔려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은 그 인용한 글의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소제목인 ‘커버링의 …

View page »

57.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6)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57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6)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38)>   모세가 이방인 제사장인 장인 이드로의 말을 듣고 재판에 도입한 피라미드 조직 방식이 하나님께서 인정한 것이 아닌 이 세상의 방식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 피라미드 조직 안에서는 공식적으로 명령계통이 확실하기 때문에 위로 올라갈수록 권위가 커집니다. 따라서 그런 조직 안에서는 쥐꼬리만한 …

View page »

58.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7)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58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7)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39)>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의 권위가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직책에 있지 않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 공식적인 권위는 조직과 제도에 의해 움직이는 이 세상의 질서를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교회는 영적 유기체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유기적 권위가 행사되어야 합니다. 신약성경 …

View page »

59.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8)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59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8)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40)>   이 세상의 공식적인 권위의 모형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이식하려는 것이 엄청난 오류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교회에서는 오직 유기적인 권위가 행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이 세상과 똑같은 공식적인 권위가 판치는 것은 구약의 제도를 교회에 …

View page »

60.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문제 (1)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60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문제 (1)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41)>   앞에서 오늘날 크게 오해되고 있는 교회 안에서의 리더십과 권위에 관해 신약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개념을 대충 정리해보았는데, 이것을 바로 이해하면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오류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적인 리더십과 권위에 대해 무지하므로 교회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의사결정이 판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

View page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You may use these HTML tags and attributes: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