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같은 생명끼리의 교제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10

같은 생명끼리의 교제

 

바로 앞에서 인용한 요한 일서 1:1-3의 말씀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얘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타나신 예수님과 처음으로 교제했던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서, 그들과 복음을 받아 들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교제가 곧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 이라고 했습니다. 즉, 교회생활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창세 전부터 누리시던 생명의 교제가 연장되어 생겨난 생명체가 바로 교회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 봐도 하나님의 관심은 다른데 있지 않고 오직 교회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통로이고, 교회가 하나님의 생명이 확장된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 요한복음이 아주 분명하게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도배되다시피 한 단어

 

신약성경의 다른 세 복음서에 끊임 없이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단어가 요한복음에는 단 한 군데에만 언급되어 있을 뿐, 요한복음의 저자가 일부러 그 표현을 피한 듯한 인상을 주는 단어가 있습니다. “천국(하나님 나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른 복음서들뿐만 아니라 현대의 교회들 안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 중의 하나인 이 중요한 단어를 요한복음의 저자는 왜 기피했을까요? 그 이유를 바로 알게 되면 하나님의 목적이 더욱 선명해질 것입니다.

 

요한복음 전체에 “하나님의 나라” 라는 말이 등장하는 유일한 곳은 3장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중에 이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한복음 3:3-6)

 

요한복음 전체에 “하나님의 나라” 라는 말은 이렇게 딱 두 번만 언급되어 있고 나머지는 전부 다 다른 말로 대체되어 있는데, 그 말이 바로 “생명(영생)” 이라는 단어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요한복음을 쓰면서 생명 또는 영생이라는 말로 도배를 해놓다시피 했는데, 여기엔 1세기 말의 교회들이 잘 못 생각하고 있던 것을 바로 잡아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천국(하나님 나라)에 관한 올바른 이해

 

그것은 바로 천국(하나님 나라)에 관한 사람들의 오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크게 두 가지로 잘 못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천국이 죽은 후에 가는 어떤 장소라는 개념이고, 또 하나는 천국(하나님 나라)이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게 이 땅에 건설하셔서 통치하시는 메시아의 왕국이라는 개념입니다. 아마 1세기 말의 교회들도 이렇게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저자는 의도적으로 이 단어를 회피하고 그 대신 “생명(영생)” 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올바로 이해시키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지금부터 영원토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 곧 교회생활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려고 했습니다.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영생을 누리고 있음을 아래의 구절들이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3:36)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4:1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4)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6:47-48)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6:56-58)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7:2-3)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교제

 

바로 위의 요한복음 6:56-57의 내용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생명의 교제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교회라는 생명체로 연장되어 계속됨을 표현한 것인데, 17장의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기도에도 이것이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따로 모아놓고 하신 말씀인 요한복음 13-16장 바로 뒤에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12장에서 예수님이 공중 앞에서 행하신 사역의 결과를 요약했습니다. 즉, 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보고, 말씀을 듣고, 표적도 보았지만 참으로 믿는 사람이 없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13장부터는 “자기 사람들(교회)”만 불러놓고 하신 말씀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교회생활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 핵심이 아버지와 아들과 교회 사이의 생명의 교제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자신의 독자들인 교회를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을 주목해야 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요한복음 17:21-24)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이치는 간단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안에 있는 생명과 동일한 생명(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교제라는 것은 생명이 같아야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강아지나 고양이와 함께 지내며 데리고 놀 수는 있어도 그들과의 우리 사이에 교제는 되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우리 사람의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제의 본질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하나님과 동질의 생명이 있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예수님과 동일한 생명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교회의 구성원에게 이 생명이 필수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래서 생명은 없고 종교심만 가득한 교인들, 장식에 사로잡혀 있는 죽은 교인들로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교회가 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교회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생명의 교제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대한 오해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요한복음 13-17장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부터 영원까지 누리는 생명(영생)의 교제 곧 교회생활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이해했다면 요한복음 14의 내용을 종종 잘못 이해함으로써 핵심을 놓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께서 다름 아닌 아래의 내용을 제자들에게 이해시키려 한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요한복음 14:19-24)

 

이렇게 요한복음 14장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누리는 생명의 교제인 교회생활에 관해 예수님께서 설명하신 것인데, 전통적으로 아래의 14:1-4만 따로 떼어 이 세상을 떠난 후에 가는 천국이라는 장소 또는 예수님의 재림 이후의 얘기로 잘 못 이해한 나머지 이 말씀이 주로 장례식에서나 애용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이것이 앞에서도 언급했던 proof texting(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의 부분을 맘대로 잘라다가 사용하는 것)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요한복음 14:1-4)

 

재차 강조하지만, 이 말씀은 위에서 인용한 14:19-24의 결론을 도출해내시려고 예수님께서 알기 쉽게 설명해나가신 것입니다.

알기 쉽게 설명한 것을 후대와 와서 엉뚱하게 해석함으로써 이 말씀이 가리키고 있는 매우 중요한 교회생활의 핵심을 놓치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 바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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