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59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8)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40)>
이 세상의 공식적인 권위의 모형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이식하려는 것이 엄청난 오류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교회에서는 오직 유기적인 권위가 행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이 세상과 똑같은 공식적인 권위가 판치는 것은 구약의 제도를 교회에 잘못 적용하는 것과 복종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이에 대해서도 프랭크 바이올라가 쓴 Reimagining Church(다시 그려보는 교회)에서 아주 잘 설명하고 있으므로 여기에 인용합니다. 다음도 그 책 12 단원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신약성서적 복종의 개념
신약성서에서 “복종(submit)”이라고 주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는 휘포타소(hupotasso)이다. 휘포타소를 “의존 또는 종속(subjection)”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
신약성서에서 사용되는 의미로서의 의존(종속)은 다른 사람의 권면이나 충고를 받아들이고, 협조하고, 따르는 자발적인 태도이다.
성서적인 복종은 지배나 계급적 권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맡기는 어린아이와 같이 열린 태도이다.
성서적인 복종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신약성서가 가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우리가 속한 신자의 공동체에서 서로 복종하고; 우리 신자의 공동체를 희생적으로 섬기는, 믿을만하고 입증된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나는 “믿을만한 것과 입증된 것”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들과 가짜 사도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사역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검증하는 것은 지역 교회 형제들의 책임이다 (살전 1:5; 살후 3:10; 계 2:2).
이런 이유로, 성서는 우리에게 고귀한 성품을 지니고 희생적으로 섬기는 영적 지도자들에 복종하라고 권면한다 (고전 16:10-11, 15-18; 빌 2:29-30; 살전 5:12-13; 딤전 5:17; 히 13:17). 어쩌면 이 토론에서 고찰해 볼 가장 명쾌한 본문은 에베소서의 구절일 것이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 5:21)
다시 강조하지만, 성서는 절대로 “보호를 위한 커버링”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 대신, 상호간의 복종을 가르친다. 상호간의 복종은 믿는 자 모두가 은사를 받았다는 성서적 개념에 근거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피차 복종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상호간의 복종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성서적 계시에 뿌리를 둔다. 하나님의 권위는 그리스도의 몸에 있는 특정한 일부가 아닌 몸 전체에 주어진 것이다 (마 18:15-20; 16:16-19; 엡 1:19-23).
하나님의 교회학에서, 에클레시아는 성령을 모신 모든 사람에게 신적 권위가 분배된 하나님의 통치 아래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하나님의 세 인격이 계급 없는 공동체적 관계성을 이루는 삼위일체를 반영한다.
이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권위를 어떤 개인이나 교회의 일부에게 위임하시지 않았다.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는 공동체 전체 안에 있다. 신자 공동체에 속한 지체들이 그들의 사역을 수행할 때 영적 권위가 성령이 그들에게 주신 은사들을 통해 분배되는 것이다.
사실, 상호간의 복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속한, 즉 몸에 속한 지체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이 요구하는 것은 또한 우리가 스스로는 하나님의 원대한 목적을 이루기에는 역부족임을 깨닫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상호간의 복종은 우리에게 동료 형제들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그리고 실제로 시인하는 것에 뿌리를 둔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호간의 복종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된다…
복종 대 순종
복종이 순종과 어떻게 다른가?
복종은 태도이고; 순종은 행동이다. 복종은 절대적이고; 순종은 상대적이다. 복종은 무조건적이고; 순종은 조건적이다. 복종은 내면적이고; 순종은 표면적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질서에 권위를 두신 모든 사람에게 겸손한 복종의 태도를 가지라고 하신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면 우리는 순종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위가 이 땅의 그 어떤 권세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가 복종하면서도 불순종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이 땅의 권세를 가진 직책을 향해 겸손한 복종의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그것에 순종하지 않을 수 있다.
반항하고, 욕을 하고, 타도하는 태도와는 전혀 달리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면서 불순종 할 수 있다 (딤전 2:1-2; 벧후 2:10; 유 8절).
히브리 산파(출 1:17), 라합(수 2:1 이하), 다니엘의 세 친구(단 3:17-18), 다니엘(단 6:8-10), 그리고 사도들(행 4:18-20; 5:27-29)의 불순종은 전부 다 공식적인 권위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때 그것에 불순종하면서도 복종하는 원리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아울러 권위를 가진 직책에 앉은 사람을 향해 복종하는 태도를 계속 가지면서도 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 (마 14:3-5; 행 16:35-39).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는 질서가 유지되도록 공식적인 권위를 두셨지만, 교회에는 이런 유의 권위를 제정하시지 않았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특정한 권리를 행사할 권세(엑수시아)를 주신다.
그런 것들 중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요 1:12); 땅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 (행 5:4);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기로 결정할 권리 (고전 7:37); 먹거나 마실 권리 (고전 8:9); 병든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권세 (마 10:1; 막 3:15; 6:7; 눅9:1; 10:19) 교회에 덕을 세울 권세 (고후 10:8; 13:10); 특정한 사역과 관련된 복을 받을 권리 (고전 9:4-18; 살후 3:8-9);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하나님나라에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을 권세 (계 2:26; 22:14).
하지만 놀랍게도, 성서는 결코 하나님께서 믿는자들에게 다른 신자들 위의 권위(엑수시아)를 주셨다고는 가르치지 않는다.
주님께서 제자들 중에서 엑수시아 형태의 권위를 책망하신 마태복음 20장 25-26절과 누가복음 22장 25-26절의 말씀을 상기하라.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진지하게 숙고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들이 고위층과 똑같은 권위를 행사한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요, 도를 넘는 추론이다. 다시 말하지만, 신약성서는 결코 엑수시아를 교회 지도자들과 연결시키지 않는다. 또한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 위에 엑수시아를 갖는다는 암시조차 없다.
물론, 구약성서는 선지자들, 제사장들, 왕들, 그리고 사사들을 공식적인 권위로 그린다. 이것은 이 “직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있는 사역을 비추는 그림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진짜 선지자이시요, 진짜 제사장이시요, 진짜 왕이시요, 진짜 사사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신약성서에서 공식적인 권위로 묘사되었거나 그려진 그 어떤 교회 지도자도 결코 찾을 수 없다. 이것엔 사도적 일꾼들뿐만 아니라 지역 교회의 감독들도 포함된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 위에 권위를 갖는다는 개념은 억지 해석의 한 예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성서적으로 옹호될 수 없다. 교회 지도자들이 정부의 관리들과 똑같은 형태의 권위를 행사할 때, 그들은 약탈자가 되고 만다.
의심할 여지없이, 권위는 교회 안에서 행사된다. 그러나 에클레시아 안에서 행사되는 권위는 이 세상의 질서 속에서 행사되는 권위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오직 교회가 인간의 조직이 아닌 영적 유기체이기 때문에 말이 된다. 교회 안에서 행사되는 권위는 공식적인 권위가 아니라 유기적인 권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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