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월 03

간증 – 2018년 추수감사절에

 

***2018년 4월, 저의 이 블로그를 통해 알게된 자매님이 지난 7개월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쓴 간증을 본인의 허락을 얻어 아래에 게재합니다.

 


 

 

2018. 11. 18. 추수감사절에

 

아버지, 저의 마음을 나눔에 있어 자랑이 되지 않게 하시고 상처받는 이가 없게 하소서.

 

제도권 교회를 떠난 지 벌써 11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11월 추수감사절이나 12월 연말이 되면 으레 한해를 돌아보며 감사제목을 찾곤 합니다. 올해 나의 감사제목은 무엇일까? 한순간도 은혜 아닌 것이 없지만, 올해는 특히 감사한 한해입니다.

 

재작년인 2016년 11월, 예배당 건축에 대한 기도가 대표기도에 서서히 등장하며 제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 2달을 보내며, “이게 뭐지?” 의아해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교회가 필요하면 건축도 하는 거지 뭐!” 하며 그냥 넘겼을 법한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사실, 10년 전 교회를 이전하면서 본당은 차후에 짓기로 하고 교육관 먼저 지어 예배드리자 했는데, ‘신자 수가 늘어서 더 이상은 안 되는 상황이 왔다’는 겁니다. 그래도 지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 당회에서 예배당 건축이 결정됐고 신자들은 그대로 따라야만 했습니다. 작년 2017년 1월 1일부터는 작심했는지 모든 공 기도에 건축기도가 올라왔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거룩한 성전을 지어 아버지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교회가 되고 싶다”고.

 

그런데 제 마음은 그때부터 너무나 불편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최전선에서 많은 봉사를 하는 저로서는 예배에 기쁨이 사라지고 불편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불쌍했던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셨지요. 2017년 1월 1일, 담임목사님을 찾아가서 이런 불편한 마음을 말씀드렸고, 이런 마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인지, 사탄이 주는 속임수인지, 제 생각인지 알고 싶으니 함께 기도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1년간 작정 기도할테니 함께 기도하자’고. ‘혹 1년이 지나도 이런 불편한 마음이 지속되면 교회를 떠날 테니 놀라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1년 동안 무던히도 몸부림친 것 같습니다. 교회를 떠나지 않기 위해! 성경을 아무리 읽어봐도 교회가 그런 것이 아닌데 왜 모두 다 괜찮다고 하는지, 왜 나에게만 이런 불편한 마음을 주셔서 교회당을 떠나야 하는 상황을 만드시는지, 원망스럽고 당황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참 많이 읽은 듯 합니 다. 읽고 또 읽고… 그동안 ‘구속사적 관점’으로 성경을 읽었다면, 작년 한해 동안은 ‘교회론 관점’으로 성경을 통톡하며 여기저기 샅샅이 연구하고 따졌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제 생각일 수도 있으니, 위험한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서 교과서인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봐도 마음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실, 전라도 처녀가 경상도에 시집와서 아는 인맥은 교회 성도들뿐인데, 23년이나 다녔던 교회를 떠나라 하시니 황당할 수밖에 없어 ‘안 나가면 안 되냐’고 하나님께 무던히 매달렸습니다.

 

떠나야 되는 이유도 모른 채, 하나님의 어떠한 지시나 약속도 받지 못한 채, 저는 2017년 12월 31일에 23년간 다니던 교회를 조용히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떠나라’고만 하셨지, 정말 아무런 희망의 메시지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속된 말로, 거지 같았습니다. 집 없는 떠돌이. 2018년 1월 1일. 오랫동안 드리던 12시 자정 신년예배에 갈 곳이 없어 혼자 집에서 쓸쓸히 예배드리고, 매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예배드리는 신세가 처량하여 눈물이 절로 나왔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왜 이러세요? 남들은 다 괜찮다는데, 왜 저에게는 대충 넘어가는 마음을 안 주시고 그런 불편한 마음을 주셨나요? 다른 교회도 다 똑같은 상황인데, 어디로 가라고 이러시는지, 도대체 대책은 있으신 건가요?” 하며 따졌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니, 하나님께서 너무 하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막막했던 그때가 생각이 나 타이핑하는 지금 이 순간, 눈물이 나네요. 어두운 터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터널 입구가 나올 것 같지 않은.

 

그런데 1월 셋째 주일, 일부러 외면했던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을 주셨습니다. 제 상황에 꿰맞추는 것 같아 창세기 통독할 때도 일부러 12장은 의미를 두지 않고 빠르게, 아주 빠르게 읽어 내려갔던 성경구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확신을 주시며 한줄기 빛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생각이 있으시구나!”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하나님께서 아무 계획 없이 나를 제도권 교회에서 나오게 하시겠나! 지금은 안 보이지만 분명 보여주실 거야!” 하며, 그때부터는 희미하여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든든히 믿게 되었고 기쁨이 생겼습니다.

 

 

6,7년 전에 ‘이교에 물든 기독교’ (프랭크 바이올라, 조지 바나 공저/이남하 번역)를 읽었었는데, 그때는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서 두세 페이지 읽고 책장을 덮었습니다. 그러다 일주 일 후, 가슴을 쓸어내리고 책을 다시 읽어 내려갔습니다. 읽고 난 소감은, “이것은 저자의 그저 한낱 생각일 뿐이야” 라며 책을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일년 후 그 책을 다시 읽은 소감은, “그래서 어쩌라고? 교회를 박차고 나오라고?’” 였습니다.

 

작년 교회를 떠나기 두 달 전에, 갑자기 그 책이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책장을 넘겼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책이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동안 비딱했던 제도권 교회에 대한 비평적인 제 시선이 그 책 속에 전부 있었습니다. 제도권 교회를 떠난 후에도 그 책을 3번이나 반복해서 읽고, 프랭크 바이올라의 다른 책들을 여러 번 읽으며 그의 주장을 검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분명, 프랭크가 말하는 유기적 교회가 한국에도 있을 거야.” 키워드 ‘유기적’, ‘유기적 교회’,  ‘이남하 목사’를 주기적으로 인터넷 검색했고, 번번히 돌아오는 실망의 연속 속에서도 문득 찾아온 4월 24일,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드디어 교회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영원한 목적! 하나님께서는 제가 불쌍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빨리 만나게 해 주시다니! 4개월도 채 못되어.

 

그러나 그녀를 만난 그 순간, 저는 감사가 아닌 회개 기도를 했습니다. “저에게 왜 이러시냐”고 투정하고 원망하던 그 순간이 생각나서 눈물이 마구 났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인을 주실 때 우리는 ’아멘‘하고 따라가지 못할까요?” “아버지, 죄송합니다! 한걸음씩만 보여주시며 당신의 손을 꼬~옥 잡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죄송합니다! 100%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해서…”

 

50세였던 작년, 그동안 하던 일을 계속 원했지만 허락치 않으시고, 좁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두운 터널을 허락하셔서 더욱 힘들었던 같습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Zero, 희년! 작년은 저에게 희년과 같습니다. 어둠의 시간이었지만, 빛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나 봅니다. 참 교회를 만날 준비. 새로운 30년을 만날 준비…

 

아버지,

지금은 진주에서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아요.

앞이 안 보여도 두렵지 않습니다.

주위의 심상치 않은 시선과 핍박이 와도, 아버지께서 이루실 역사를 믿으며 마음 편히 손만 꼬~옥 잡고 갑니다.

이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고, 저의 위치를 알았으니, 가슴 벅차게 오늘도 기쁨으로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아멘.

 

 

 

1 p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You may use these HTML tags and attributes: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