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종교적 신념의 문제 (1)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15

종교적 신념의 문제(1)

 

지금까지 교회가 어떻게 해서 왜곡된 거주지로 전락했는지를 간단히 살펴보았는데, 이것에 대해 잘 이해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목적을 모른 채 종교적 신념에 세뇌되어 그것이 참 신앙인 줄로 착각하고 인생을 낭비하게 됩니다.

종교적 신념이라는 것이 기독교든 타 종교든 관계 없이 사람을 외골수로 만들어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16세기 때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무자비하게 핍박했던 로마 가톨릭과 개혁자들입니다.

 

몇년 전 사살된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사람을 보십시오. 신의 이름으로 얼마나 잔인하게 횡포를 부렸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대 종교 지도자들도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심판하고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는 알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도 종교적 신념을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잘못된 전통, 교리, 제도, 의식, 확신 같은 틀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관해 몇년 전 미국에서 벌어졌던 좋은 예가 하나 있습니다.

 

 

성경은 성경으로만 풀어야 한다?

 

성경은 오직 성경으로만 풀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자기가 만든 틀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전역에 “Family Radio” 방송국을 150개 이상 소유하고 자기가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한 것이 진리라며 자신의 라디오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미국과 전세계에 전하던 해롤드 캠핑이라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성경으로만 풀어야 한다는 주장은 언뜻 듣기엔 아주 옳은 주장같지만 그야말로 무식하기 그지 없는 순진한 발상입니다. 이런 발상이 그를 세뇌시켜 얼마나 견고한 교리의 틀을 만들어 자신과 순진한 영혼들을 가둬놓았는지 그 폐해가 극심했었습니다.

 

그것은 2011년 5월 21일에 휴거가 일어나고 이 세상의 심판이 시작되어 2011년 10월 21일에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주장입니다.

해롤드 캠핑은 5월 21일을 제일 먼저 맞게 될 날짜변경선 바로 옆의 뉴질랜드와 오스트랄리아, 그 다음 파푸아뉴기니, 일본, 한국, 중국… 유럽을 거쳐 미국 본토, 그 다음 하와이까지 5월 21일 0시를 맞는 순서대로 역사상 가장 큰 지진이 연속으로 일어나면서 심판이 임한다고 큰 소리 쳤습니다.

성경에서 이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너무나도 흥분한 나머지 의자에서 떨어져 자빠질 뻔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날이 되어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자  해롤드 캠핑 자신도 낙담하고 그의 주장을 추종하는 수많은 사람이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994년 6월에 종말이 온다고 했다가 불발하자 계산 착오라고 했던 적이 있었으므로 두문불출 하다가 며칠 뒤에 나타나 이번에도 새로운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멍청한 사람들은 또 그를 믿고 따랐습니다.

1992년에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미선교회가 다른 이름으로 아직도 존재하고, 제칠 안식교도 예언이 몇 번씩 빗나갔어도 150년 이상 지난 후인 지금 오히려 세력이 훨씬 강해졌듯이 아마 해롤드 캠핑과 그의 사상도 다른 모양으로 또 건재할 것입니다.

 

2011년 당시 90세를 맞은 해롤드 캠핑은 개혁교회의 장로로 있다가 자기 뜻대로 안되니까 뛰쳐나온 사람인데, 샌 프란시스코 일대에 Family Radio 방송국을 창설하여 50년 이상 매일 전화로 청취자들의 성경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는 ‘Open Forum’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그의 확신에 찬 답변을 라디오로 듣고 그에게 세뇌되어 미국 전역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 걸쳐 그를 추종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끊임 없이 성경만 가지고 얘기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성경만 가지고 뭔가를 증명하려 하면 그것이 정통이든 이단이든 해롤드 캠핑이든 속아 넘어가기 쉽습니다.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온다고 주장했던 다미선교회의 이장림이라는 사람은 환상을 본 많은 사람의 증언을 성경 구절을 동원해서 증명하려 했었지만, 해롤드 캠핑은 오직 성경만 가지고 성경 전체를 오가며 풀기 때문에 순진한 그리스도인들이 잘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경을 사랑하고 강조해도 이것은 자신이 만든 틀에 자신을 가두어놓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문제가 무엇인가?

 

성경은 물론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지만 수 천년 동안 각기 다른 환경과 문화와 역사를 가진 여러 사람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결코 성경을 성경으로만 풀어서는 안됩니다.

또 기록된 목적과 대상도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성경 안에 역사서도 있고, 시(노래), 자서전, 뮤지컬, 편지, 예언, 계시문학 등 여러 장르가 있기 때문에 성경만 가지고는 절대로 성경을 다 해석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배경(역사, 전통, 문화 등)을 알아야만 제대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도 성경 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해롤드 캠핑은 성경 외의 것은 일체 참고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성경 안에서 다 해결하려고 하다가 억지로 해석하곤 했습니다. 그런 억지가 2011년 5월 21일 휴거와 심판의 시작이라는 결론을 얻게 한 것입니다.

그럼 성경만 파고 드는 사람들이 왜 이런 식의 황당한 주장을 하게 됩니까? 종교적 신념, 즉 교리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만 풀어야 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거나 틀리거나 하는 것은 아예 생각지도 않고 무조건 믿어버리기 때문에 종교적 신념이 되어버립니다.

이 경우는 그런 종교적 신념이 성경구절들을 짜집기해서 만들어낸 종말론이라는 교리의 틀을 고착화시켰습니다. 종말론의 예를 들고 있지만 기독교 교리의 상당수도 이런 식의 성경구절 짜집기로 탄생한 것들입니다.

 

 

성경으로 만들어낸 짜집기 교리의 틀

 

해롤드 캠핑은 자신만이 성경을 가장 정확하게 보기 때문에 이런 종말론을 깨달았다고 주장하지만, 알고 보면 그의 종말론의 틀은 기독교 안에, 특히 한국 교회 안에 보편화된 짜집기 종말론과 사촌지간에 불과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영국의 메리 셸리라는 여자가 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의 괴물이 이런 짜집기 종말론을 연상시킵니다.

과학자인 프랑켄슈타인이 완벽한 인간을 만들겠다는 욕망으로 이 시체에서 한 부분, 저 시체에서 한 부분 이런 식으로 잘라다가 사람을 만들어냈지만 결국은 괴물이 하나 생겨났듯이, 성경 여기저기에서 필요한 부분만 가져다가 그럴듯한 괴물 종말론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마치 어렸을 때 미술시간에, 이 그림 저 그림에서 필요한 색깔을 찢어다가 자기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었던 모자이크를 연상케 하는 종말론입니다.

 

대체로 이런 종말론은 다음과 같은 짜집기가 주를 이룹니다. 주로 구약의 선지서들(특히 다니엘), 그리고 신약의 마태복음 24, 마가복음 13, 누가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이 “세상 끝” 이라고 하신 말씀, 그리고 데살로니가 전서나 요한계시록(아마겟돈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을 조합해서 이것들이 전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이루어질 것처럼 주장합니다.

하지만 다니엘이 말한 마지막 때는 주전 2세기의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점령한 시기와 그 이후를 뜻하는 것이고, 예수님은 A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을 말씀하신 것이고,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아마겟돈은 계시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해 항상 일어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인데, 이렇게 각기 다른 의미를 억지로 갖다 꿰맞춰서 같은 시간대로 몰아버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종말론에 세뇌되어 있는 사람들이 소위 정통교회 안에도 많습니다. 그래서 지진이 큰 게 하나만 발생해도 종말, 휴거, 예수님 재림의 임박 등을 떠올립니다. 지진이라는 말이 복음서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성경적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교리라는게 이런 식으로 탄생해서 짜여진 틀, 곧 전통이 되어버립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기 위해서 성경을 연구하고 노력해서 뭔가를 정립하지만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와는 거리가 먼 교리의 틀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한번 갇히게 되면 헤어나오지 못하고 계속 그것을 고수하다가 교파가 다르고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신랄한 논쟁이 벌어집니다.

이런 교리의 틀(전통)이 힘과 결탁될 때 핍박하고 죽이고 전쟁까지도 불사했던 것입니다. 불꽃 튀기는 종교적 신념 간의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개혁자의 하나라는 쯔빙글리가 로마 카톨릭을 상대로 칼을 들고 전쟁하다가 전사한 것이 좋은 예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념이 다 정확무오하다는 성경에서 나왔기 때문에 목숨 거는 것입니다.

 

 

전통에 묶이다

 

여러 해 전에 겪은 일입니다. 주일 예배에 교회를 처음으로 방문한 어떤 여자 성도가 예배 후에 저에게 말하기를 자기가 오늘 예배를 헛 드렸다고 했습니다.

너무 뜻밖의 말이라 의아해 했더니 자신이 축도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로 시작하는 예배 끝의 그 축도 말입니다.

그녀는 정색을 하며 축도가 예배의 꽃인데 어떻게 목사님이 예배에 축도를 하지 않을 수 있냐고 저에게 따졌습니다. 축도를 받아야만 안심이 되어 그 다음 일주일을 편안히 살 수 있는데 축도를 받지 못해 영 찜찜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30년 이상 사역해오는 중 위에서 말한 그 축도라는 것을 제가 속한 교회에서는 한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전통에 갇혀 있는 그녀는 아마 저를 이단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후 어떤 교회에 말씀집회를 인도하러 갔다가 비슷한 것을 경험했습니다. 주일 예배가 끝날 무렵 한무리의 여자들이 본당 안으로 들어와서 뒷쪽에 서있더니 축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식당에서 봉사하는 당번들인데 축도만은 꼭 받아야 하므로 음식 준비하다가 그 시간에 맞춰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전통에 묶인 것의 어이없음에 얼마나 속으로 씁쓸했는지 모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다가 마지막에 주님의 이름으로 인사한 내용이, 그것도 성경 전체에서 고린도 후서 맨 마지막에 딱 한번 등장한 것이 축도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무지하게 만들어놓았습니다.

그것도 안수 받은 목사가 아니면 축도할 수 없다고 하니 이건 코메디가 아니면 영적 공해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축도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생겨난 전통에 묶여 달리 생각할 수 없게 만든 게 문제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전통에 끝나지 않고 기독교 미신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렇게 종교적 신념의 틀에 갇히면 헤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과연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교회가 경험될 수 있을까요? 종교적 신념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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