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머리와 지체의 역할을 빼앗는 사람 (4)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31

머리와 지체의 역할을 빼앗는 사람(4)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12)>

 

기독교가 지난 2천 년을 지나오면서 이렇게 저렇게 왜곡되고 변질되어 신약성경이 말하는 원래 교회의 모습이 사라진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진리를 바로 알고자 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십여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이후로 이것이 사실임을 피부로 느껴왔습니다. 20년 가깝게 목회에 올인했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목적에 관해, 또 신약성경이 말하는 유기적 교회에 관해 깨달은 것을 여러 사람에게 소개했을 때 의외로 많은 사람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거나 아예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뭔가에 세뇌 당한 사람들 같았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 하는 종교인들. 그래서 기독교 안에 맹신, 미신, 광신이 판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잘못된 전통을 생각 없이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

 

이런 저의 견해를 대변해주는 것 같은 글이 인터넷상에 있기에 아래에 인용합니다. 신앙에 관한 글은 아니고, 생각 없이 그냥 무턱대고 아무거나 받아들이는 현대인들을 개탄하면서 어떤 분이 쓴 글인데 아마 이 내용이 교회 안의 교인들에게도 딱 들어맞을 것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자초지종도 모르면서 큰 소리 치는 사람은 대부분 상대방의 논리 정연한 설명을 듣기를 두려워하거나 귀찮아 합니다주로 정신이 게으른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합니다.


자기보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자기가 모르는 분야를 공부하고 이해해서 확실히 그 내역을 알고있는 사람으로부터 손쉽게 진리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머리를 조아리고 그 사람의 설명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는 노력조차도 하기 싫어하거나 못하는 사람이 고학력자 중에도 의외로 많습니다.


그냥 자기 밥상에 삼시 세 때 밥만 올라오고,  TV의 화면만 꺼지지 않는다면 그냥 오합지졸들이 알고있는 지식과 정보를 검증도 하지 않고 빈 머리통에 주워담기를 원한답니다그건 바로 길거리에서 남이 피우다가 버린 담배꽁초나,먹다가 버린  빵쪼각을 빈 깡통에 주워담는‘ 지식의 거지’ 와같은 행위입니다


그래서 요즘의 젊은 가장들소위  white collar  라고 지칭되는 젊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깊게 사고하고 분석하는 것을 몸서리치도록 싫어하거나 아니면 아예 그럴 능력이 없어보이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사람들의 사고능력이 컴퓨터처럼 생각의 버튼을 누르자마자  바로 그 답이 나와야 하니 깊게 사고할 시간이 없나봅니다.”

 

성경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의도에서 한참 멀어진, 지난 2천 년 동안 변질되어온 기독교 전통에 대해 따져보거나 검증을 하거나 할 생각 없이 무조건 그냥 받아들이는 오늘날의 교인들도 아마 위에서 지적한 부류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전신자 제사장주의를 외치면서도 실지로는 성직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앞에서 살펴보았는데, 저는 이  성직주의가 유기적 교회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해로운 요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 거룩한 직분과 그렇지 않은 직분이 존재하고, 기름 부음을 받은 종과 기름 한 방울도 바르지 못한 평신도가 존재하고, 평생 설교만 하는 계층과 평생 설교를 듣기만 하는 계층이 존재하는 한 신약성경이 추구하는 유기적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요원할 것입니다.

 

 

성직이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구약에 있었던 성직이 신약에 와서 사라져버리고 없는 것일까요? 구약시대에 일반 백성들과는 따로 구별된,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던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거룩한 직분 말입니다.

이것에 관해 적어도 개신교인이라면 아래와 같은 성경구절들을 근거로 해서 이론적으로는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벧전 2:9)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 1:6)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계 5:9-10)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구약의 모든 제도도 다 폐하시고 완성하셨으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성직자요 예수님과 함께 다스리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이 성도(‘거룩한 사람들’, 신약성경에 50번 이상이나 등장)임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지로는 교회 안에 성직이 따로 있고 특권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은 무엇 때문일까요?

 

이것의 이유는 이미 앞에서 반복해서 강조했던 ‘성경을 보는 눈’이 잘못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이 하늘에서 떨어진 책인 줄 아는 사람들에게 설교자들이 구미에 따라 구약과 신약 가릴 것 없이 갖다 이용하는 통에 혼란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제사장, 왕, 총독 등 지도자 계급을 오늘날의 목사와 동일시하게끔 세뇌시켰다는 말입니다. 모세, 아론,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나단, 엘리야, 엘리사, 다윗, 느헤미야… 같은 사람들의 직분이 신약에 와서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져보지도 않고 믿는, 즉 자신이 구원 받고 복을 받고 천국에 가려는 목표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성경에 있으면 어느 시대에든 다 똑같이 적용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에 굴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이 세상의 계급제도가 1세기 말 이후로 교회에 도입되어 성직자 계층이 굳어져서,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시고 모든 지체가 몸을 이루는 유기적 교회는 물 건너가고 말았습니다.

 

 

은사에 대한 오해

 

이와 같은 성직에 대한 잘못된 적용엔 은사에 대한 지식의 결핍도 한 몫을 한 것 같습니다. 은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셔서 교회에 필요가 있을 때마다 한시적으로 사용되는 기능(function)인데 이것이 무슨 특권인줄 아는 사람들에 의해 오용되어 교회를 어지럽혀 왔습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데는 때에 따라 그런 은사적 기능이 유익이 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 강조했던 ‘모든 지체가 진리를 말하는 사역’을 항상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필수불가결한 모든 지체의 사역은 도외시된 채 특별한 은사들이 교회 안의 우월한 계층을 생겨나게 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물론 오늘날의 ‘목사’라는 종교전문가입니다. 초대교회의 ‘목자와 교사’와는 전혀 다른 돌연변이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를 돕는 사역자로서의 기능이 특권층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은사는 무엇이든지 영적인 생리상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라는 생명체의 유전자(DNA)에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은사(기능)가 다 들어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자라나면서 때가 되면 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려 할 때 유기적인 교회는 세워질 수 없을 것입니다. 모조품 은사가 생겨서 인위적인 모조품 교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누나들이 필자를 의사로 만들겠다고 어린 나를 세뇌시키려고 했던 기억이 지금도 쓴 웃음을 짓게 합니다.

심심하면 “너는 흰 가운만 걸치면 영락없는 의사야!” 라고 하면서 반창고와 거즈와 몇 개 되지도 않는 상비약(머큐로크롬, 옥도정기, 이명래고약 등)이 들어 있는 약장 관리를 맡기며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려고 부추겼습니다.

순진했던 필자는 의당 그래야 되는 줄 알고, 중학교에 입학해서 반의 보건부장을 뽑을 때 다른 학생이 원할세라 얼른 손을 들고 자원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추억인데,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사역자로 부르신 적이 없는데도 카리스마가 좀 있다 해서, 말을 좀 잘 한다고 해서, 헌신적으로 교회 일을 한다고 해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해서 사역자가 되려고 신학교에 입학하는 경우입니다.

스스로 착각해서 목사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위에서 부추기니까 그래야 되는 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사에게 덴 나머지 자신이 하면 더 잘 하겠다고 생각해서 목사가 되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인위적으로 은사를 만들어내는 케이스일 것입니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유기적 교회의 사역자는 어떻게 생겨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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