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왜곡된 거주지 (2)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14

왜곡된 거주지(2)

 

4세기 초반, 콘스탄틴 황제의 비호를 받으며 하루 아침에 기득권 세력이 된 교회는 ‘배교자’라고 불리는 줄리안 황제에 의해 잠시동안(18개월 간) 시련을 겪었지만, 그 이후 4세기 말부터는 날이 갈수록 더 그 위상이 높아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콘스탄틴 식의 십자가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교회가 이 세상의 원리와 방법을 도입하여 크고 웅장하고 높고 화려하고 부유하고 힘있는 것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독교가 유럽 전체를 완전히 장악해버렸으니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버린 교회

 

이렇게 높아진 교회의 모습은 사람들이 임금 삼으려 했을 때 피하신 예수님, 어린 나귀새끼를 타신 예수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낮고 연약하고 힘없는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인기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총독 빌라도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예수님의 길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한복음 18:36)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나라에는 이 세상의 원리와 방법이 설 땅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나라 소속인 교회도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아무리 효과적이고 눈에 보이는 열매가 많이 생산된다고 해도 세상의 방법을 사용하려 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왜곡시켜 세상 권력을 한 손에 쥔 콘스탄틴을 거부했어야 할 교회는 오히려 그의 비호아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버리고 힘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로마 카톨릭을 거쳐 오늘날의 교회들에도 팽배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간 마이클 잣틀러

 

십여 년 전 세미나 참석차 독일에 갔다가 평소에 꼭 가보고 싶었던 로텐부르크를 찾아갔었습니다. 그곳은 16세기의 교회 지도자 마이클 잣틀러와 그의 아내 마가레타가 순교한 도시입니다.

그들은 생명 없는 종교생활에 묶여 있다가 진리이신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자유를 경험하고 새로운 교회(새로운 생명체의 거주지)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던 중 붙잡혀서 사형당한 부부입니다.

 

렌터카를 타고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를 한참 달려 도착한 로텐부르크는 생각보다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잣틀러가 사형장으로 끌려가기 전 고문 받았던 광장을 손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잣틀러와 그의 아내가 사형당한 네카 강까지의 오백 미터쯤 되는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약 500년 전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갔던 신앙 선배들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로마 카톨릭 수도원의 부원장이었던 마이클 잣틀러(1490-1527)는 굶기를 밥 먹듯 하는 가난한 서민들에게 강제로 과중한 세금을 거둬들이는 종교정부와 교회의 타락한 현실을 보고 회의를 품던 중 바울의 서신들을 읽고 깨달은 바 있어 1525년 어느 날 수도원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이후 수녀였던 아내와 결혼을 하고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진리를 알고자 애쓰던 그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회복을 꿈꾸던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교제하면서 마침내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 믿고 세례(침례)를 받은 자들의 공동체라는 것과 그런 예수님의 교회는 이 세상의 원리와 힘과 방법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야 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당시 개혁의 기치를 들고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떨어져나왔지만 역시 카톨릭처럼 세상의 원리를 따르는 새로운 종교정부와 하나가 되어 힘을 행사하던 개혁자들의 교회와는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교회도 카톨릭 못지 않게 온갖 인간이 만든 제도와 종교적 전통으로 교인들을 묶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물리적 힘을 길러 자신들의 세력이 미치는 영역을 만들어 가톨릭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려했기 때문입니다.

힘없이 형장으로 끌려가신 예수님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원리를 배격하는 순수한 교회를 꿈꾸던 그였기 때문에 잣틀러는 카톨릭이나 개혁자들의 교회에서나 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늘 추방 당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에는 카톨릭 종교 당국자에 의해 이단으로 몰려 붙잡혀 로텐부르크 광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네카강 둑에서 화형 당해 처형되었습니다.

“남편의 신앙 때문에 고통 당하는 당신이 보기에 딱하다”며 남편의 길을 거부하면 살려주겠다는 백작부인의 회유에 단호하게 “나는 내 남편 때문에 이 신앙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진 이 신앙 때문에 남편을 따릅니다” 라며 거부했던 그의 아내도 이틀 후에 네카강에서 수장 당해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도들을 박해하고 죽이다

 

유대 종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였듯이 기독교 종교도 지난 2천 년 동안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교회가 왜곡되어도 보통 왜곡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지칭해서 다음과 같이 하신 말씀이 교회를 왜곡시킨 기독교인들에 의해 그대로 답습되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요 16:1-2)

 

역사상 하나님을 위한다는 교회의 이름으로 핍박 당하고 순교 당한 성도들의 수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들에 의해 순교 당한 성도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데, 위의 예수님의 말씀이 이것에 대해 답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믿고 확신을 가지고 행하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습니다. 이것에 대해 파스칼은 다음과 같이 뼈있는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행할 때처럼 그렇게 철저히 악을 행할 수 없다.”

 

이것은 이슬람교의 과격파들에게서도,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에서도, 로마 카톨릭에서도, 기독교 개혁자들에게서도, 심지어는 소위 정통을 주장하는 교단과 교회들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엔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물론 잣틀러가 당한 것 같은 험악한 일은 당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도들을 핍박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진리가 왜곡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회 안에 이 세상의 힘과 원리와 방법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왜곡된 거주지들이 사방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묶어놓고 있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면 꼭 물리적인 힘으로는 아니라도 여러가지 모양으로 핍박을 가하거나 숨통을 조입니다. 왜곡된 거주지는1970년 대의 미국 짐 존스의 인민사원이나 오늘날 한국의 소위 구원파 같은 이단이나 사이비 안에서 뿐만 아니라 곳곳에 널려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묶고 있는 틀

 

전에 동유럽의 알바니아에 가서 만났던 한 그리스도인이 왜곡된 거주지로 전락한  교회의 모습을 잘 증언해줍니다.

알바니아는 구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옛 동구권과도 스스로를 차별화시켰던 독종 공산국가였습니다. 얼마나 독종이었는지 북한에서도 존재하던 지하교회가 알바니아에서는 자취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엔버 호자 라는 김일성과 김정일 뺨치는 독재자에 의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씨가 말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알바니아도 호자가 죽고 소련이 무너지면서 약 20여 년 전 자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났던 그 그리스도인은 놀랍게도 그 서슬이 퍼런 엔버 호자의 독재체제 때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알바니아에서는 러시아어로 된 책들 일부를 제외하곤 일체 외국서적을 읽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그는 놀랍게도 러시아의 대문호인 톨스토이의 소설들을 읽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후 마음 속에서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솟구쳤지만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주님과 교제하며 숨 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제가 무너지고 서방 선교사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여기저기에 교회가 세워졌고, 그는 새장에 갇혔던 새가 자유를 얻은 것처럼 감격 속에 교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답니다. 자신이 경험했던 그리스도의 생명이 시들시들해져 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알바니아에 세워진 교회들이 온갖 제도와 의식과 형식과 조직과 인간이 정한 교리와 규범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서방세계에서 그대로 직수입된 제도권 기독교, 콘스탄틴의 십자가를 따르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그야말로 유기농과 같은 그의 새로운 생명이 꽉 짜여진 틀에 의해 묶이고 조여지고 있었습니다. 자유케 해야 할 진리가 그를 질리게 만들었습니다. 생명이 아닌 기독교 종교가 진리를 왜곡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런 교회에서 몇 년을 버티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박차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위로부터 온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새 생명체가 그런 철창같은 왜곡된 거주지에서는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단지 알바니아의 그 그리스도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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