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1)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19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1)

 

바로 전 글에서 교회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유기적이라야 함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는 모든 지체가 자발적으로 주님께 헌신할 때 제대로 세워질 수 있고, 또 교회가 오직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것에만 전념해야지 다른 어떤 것이 강조되면 안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때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필요에 따라 생겨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에게 그것을 다 알려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기적 교회가 되려면 미리부터 이것을 해야 되고 저것을 해야 되고, 이것이 있어야 되고 저것이 있어야 된다는 기계적, 비즈니스적인 사고방식에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 출석이든지, 성경공부든지, 기도든지, 전도든지, 봉사든지, 구제든지, 선교든지, 그 무엇이든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다 2차적인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천천히 해도 늦지 않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인 것은 우선 하고 봐야 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한 사람에게 즉각 무엇을 강조합니까? 전도할 때 구원 받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도전한 다음 그 사람이 결정을 내리고 회개기도를 하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소위 Follow-Up이라는 것을 합니다.

“형제님은(자매님은) 이제 하나님 안에서 갓 태어난 영적 아기입니다. 육적 아기가 호흡하고, 먹고, 운동해야 살 수 있고, 또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아야 하듯이, 영적 아기도 영적으로 호흡하고, 영적 음식을 먹고, 영적인 운동을 하고, 영적인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도전을 합니다.

 

그리고는 영적 호흡이 기도이고, 영적 음식이 성경 말씀이고, 영적 운동이 전도이고, 영적 가정이 교회임을 주지시킵니다.

호흡하지 않으면 금방 질식하고, 먹지 않으면 곧 영양실조에 걸리고, 운동하지 않으면 결국 몸에 이상이 오고, 가정이 없으면 보살핌을 받지 못하니까 여기 저기에서 시달리게 되므로, 기도와 성경 읽기와 전도와 교회출석을 안 하면 큰 일 난다는 식의 경고로 신앙생활을 출발하게 합니다.

 

물론 다 타당한 것이겠지만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뭘 해야 할 것을 잔뜩 안긴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존재가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그런 것들은 유기적으로 나타나게 될 텐데, 아직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교 활동을 요구하며 율법신앙을 기르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들을 무슨 의무처럼 가르치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마치 엄마 뱃속에서 금방 나온 아기에게 생존하기 위한 필수요소를 가르쳐주면서 앞으로 닥칠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할 피곤한 인생을 예고해주는 것 같은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느긋하신 예수님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을 삼으시고 무작정 가르치시지 않고 먼저 본을 보이시고 기다리셨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늘 우리는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한 사람에게 기도를 호흡에 비유하면서 기도부터 가르칩니다. 기도가 호흡과 같기 때문에 하루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 질식 상태에 빠져 금방 신앙 까먹고 시험에 들 것처럼 우리는 강조를 하지만, 예수님은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하나님 아버지께 늘 기도하시면서도 제자들에게는 한참 동안 기도에 대해 가르쳐 주시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다음 성경구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눅 11:1)

 

이 구절에 의하면, 이 때가 언제쯤인지는 모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가 말을 꺼내기 전에는 제자들과 함께 늘 지내시면서도 한 번도 기도를 가르치신 적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에 대해 하도 말씀을 하시지 않으니까 그 제자가 의아해서 예수님께 물어본 것입니다.

세례(침례) 요한도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는데,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왜 그때까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지 않으셨을까요? 우리가 그 이유를 정확히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아마 기도가 무슨 종교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시켜서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6:5-7을 보면, 그 당시 유대인들의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와 이방 신을 섬기던 사람들의 “중언부언” 하는 기도를 예수님께서 지적하셨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기도의 격식과 법도를 따지고 온갖 미사여구로 사람들 앞에서 경건한 모습을 보여주며 신앙을 과시하는데 치중했을 것이고, 이방인들은 한 얘기 또 하고 또 해서 신들을 감동시키고 뭔가 얻어내려는 기도를 했습니다.

(오늘날도 기도라고 하면 우리가 접하는 신앙 과시행위 – 신앙 좋은 것의 척도가 되어버린 새벽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같은 것들 – 를 떠올리고,

하나님께[신들에게] 소원성취케 해달라고 떼쓰는 것 – 예를 들면, 한국의 수능 시험 때 교회들이나 사찰들의 특별기도회나 성황당 같은 곳이 초만원을 이루어 “지성이면 감천” 이라는 식의 기도를 하는 것 – 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음.)

 

이에 예수님께서 섣불리 기도를 강조하셨다가는 제자들이 그 동안 그들이 보고 들어왔던 기도를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시면서 때를 기다리셨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 스스로 기도에 대해 질문하기 전까지는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신앙생활에 급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거하면서 예수님을 아는 것에 집중하면 나머지는 유기적으로 되어져야 정상입니다.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에게 침묵하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단 교회가 유기적으로 돌아갈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영적 가게일까?

 

앞에서 교회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기적으로 태어나게 하셔야 함을 강조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 줄 아십니까? 사람에게서 아기가 태어나듯 하나님께서 생명을 드러내시는 것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가 되어 그들의 생명이 사랑에 의해 자연스럽게 연장되어 나온 것이 아기이듯이, 하나님의 생명이 사랑에 의해 연장되어 나온 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무지하면 자칫 교회를 영적 가게나 회사로 혼동할 수 있습니다. 가게나 회사를 개업하듯 교회를 시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교회를 개척한다고 하는데, 실은 영적 상품을 파는 영적 가게를 개업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가게를 차리겠다는 사람은 우선 목표를 설정합니다. 물론 그 목표는 수익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투자를 해서 처음엔 손익분기점을 향해 뛰고, 그 다음은 가능한 한 많은 수입을 목표로 매진합니다.

이것을 위해 머리를 짜내서 방법을 연구합니다. 몫이 좋은 데를 고르고, 건물을 짓든지 사든지 아니면 세를 내고, 설비를 하고, 실내장식을 하고, 마케팅을 하고, 고객의 구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상품의 품질을 높이고 서비스의 질도 높여 고객을 만족시키고, 이벤트도 하고,… 등등.

그 위에 다른 가게에 손님을 빼앗기지 않도록 늘 주의를 기울이고, 근처에 동종의 가게가 생기는 것을 경계하는 등 경쟁 모드에 돌입해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교회도 얼마든지 이런 식으로 차릴 수 있고, 이렇게 차려서 운영되는 교회를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아기를 낳는 부모가 결혼하기 전 각기 다른 가정에서 태어나 양육받고 자라나서 성인이 된 다음 둘이 만나 가정을 이루어 결국 자연스럽게 아기를 갖게 되는 것이지, 아기를 많이 생산할 목표를 설정해놓고 아기를 가지게 될 특별한 소명을 받은 남자들과 여자들을 택하여 그들에게 투자해서 아기가 생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아기 생산 훈련학교’에 보내어 몇 년 동안 아기 잘 낳는 방법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훈련 받게 해서 졸업시킨 다음, 우선 아기 생산 공장의 공장장 밑에서 부공장장으로 다년간 훈련을 쌓게 하고, 준비가 되면 아기를 잘 생산할 수 있는 장소를 골라 적합한 시설과 장비를 갖춘 후 우수한 아기가 많이 생산될 수 있도록 품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주위에 아기를 생산하는 회사가 생기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에 아기 대신 다른 뭔가를 대입하면 어디서 많이 보고 듣고 접하는 이야기 아닙니까?

 

교회 성장을 목표로 내걸고 이 세상 사람들이 가게를 차리고 운영하는 방법을 동원해서 영적인 상품을 파는 영적 가게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도 몫이 좋아야 하고, 건물과 시설이 우수해야 하고, 설교와 음악과 프로그램과 이벤트가 뛰어나야 하고, 마케팅을 잘 해야 성장한다는 논리가 기독교 전반에 걸쳐 팽배해 있습니다. 그래서 사방에 교회 성장을 위한 책과 세미나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비자를 만족시켜 수익을 극대화시키려는 비즈니스의 상술과 무엇이 다릅니까? 교회가 과연 영적인 장사를 하는 곳일까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표어로 내걸기만 하면 어떻게 하든 상관 없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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