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4)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55

리더십과 권위에 관한 오해 (4)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36)>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0장에서 경계하신 “이방인의 집권자들”과 “그 고관들”의 권세, 곧 이 세상의 피라미드 조직 안에서 행사되는 상명하달식의 권세가 아주 오래 전부터 교회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행사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 교인들은 아무 생각없이 이것을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두신 권위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 20:26).

 

그런데도, 자신을 책임져주는 누군가의 권위 아래 있어야 영적으로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으므로 그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사상이 현대 교회에 만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미국에서는 ‘covering(커버링)’이라고 하는데, 2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사방에서 영적 공해를 일으키고 있는 Under Cover (한국엔 순종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음) 라는 책을 쓴 존 비비어(John Bevere) 같은 사람들이 이런 비성경적인 권위를 주장합니다.

그의 책에 다음과 같은 자신의 고백이 실려 있습니다.

 

… 성령은 내게 계속 말씀하셨다.

“존, 내가 너로 이 목사를 섬기게 한 그 기간에 대해 심판 날 네가 내 앞에서 맨 먼저 할 말은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학생들을 얼마나 많이 구원으로 인도했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네 위에 세운 목사에게 얼마나 충성했느냐 하는 것부터 심판받을 것이다.”

그분의 다음 말씀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사실 네가 올랜도에 있는 학생들을 모두 구원하더라도, 내가 네 위에 세운 목사에게 복종하고 충성하지 않은 것 때문에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새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살아났다! 나는 자신을 방어하려던 것을 모두 중단하고 주님 손에 나를 맡겼다.

 

이런 내용을 읽으면 보통 교인들은 성령이 말씀했다고 하니까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성령의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이 ‘커버링’ 이라는 것은 소위 ‘신사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주장하는 사상으로서 성경적 근거가 없는 오류입니다.

이것의 문제에 대해 프랭크 바이올라가 그의 책 Reimagining Church(다시 그려보는 교회)에서 아주 잘 설명하고 있으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에 인용합니다. 다음은 그 책의 11장 ‘Reimagining Spiritual Covering(다시 그려보는 영적 커버링)’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을 맡는(covering) 사람은 누구인가?” 이것은 수많은 현대 그리스도인이 제도권 교회 밖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묻는 간단한 질문이다. 그러나 이 물음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성서적 근거는 무엇인가?

 

엄청난 혼란과 상식 이하의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영적 커버링(spiritual covering)” 또는 “보호를 위한 커버링(protective covering)” 이라고 알려진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나의 논점이다.

이 가르침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다른 신자나 종교단체의 권위에 복종할 때 교리적 오류와 도덕적 타락에서 보호된다는 주장이다.

 

많은 사람의 아픈 경험이 나로 하여금 “커버링(책임지는 것)”의 가르침이 오늘날 시온(Zion)을 크게 괴롭히는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게끔 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중대한 고찰을 하도록 절박하게 요청한다…

 

 

“커버링”이 성서에서 다루어지는가?

 

나는 제도권 교회 밖에서 모임을 가져온 이래로 기성 교회의 지도자에게 적대시되는 많은 사람을 지켜봤다. 이 용감한 사람들은 교회에서의 권위에 관해 예리한 질문들을 유발시켰다.

사실, 그들은 오래 전에 종교 지도자들이 우리 주님께 물었던 똑같은 질문들을 받아왔다: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마 21:23).

이것을 현대적 어조로 하면: “당신을 맡는(covering) 사람은 누구인가?”

 

만일 우리가 그것의 근원을 캔다면, “커버링” 사상은 상향지향적이고, 계급적인 권위의 이해에 기초한다. 이런 이해는 이 세상의 제도에 속한 구조들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것은 절대로 하나님 나라를 반영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리더십의 계급적/지위적 본성과 현대 “커버링”의 가르침 사이에는 자연스럽고 밀접한 관계가 있다.

 

흥미롭게도, “커버링(covering)”이라는 단어가 신약성서 전체에 단 한번 등장하는데, 여자의 머리를 가리는 것(covering)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고전 11:15). 구약성서는 이 단어를 이따금씩 사용하지만, 일반적으로 옷가지를 일컫는데 사용할 뿐 영적인 것으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적인 “커버링”에 관해 우리가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지지해주는 성서적 증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리스도인이 “당신을 맡는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앵무새처럼 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교회나 사역의 순수성을 측정하는 시금석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도록 한다: 만일 성서가 “커버링”에 대해 침묵한다면, 사람들이 “당신을 맡는 사람은 누구인가?” 라고 물을 때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압박을 느끼면) 이 질문을 바꿔서 “누가 당신을 책임지는가?” 라고 묻는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난감한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 성서는 절대로 사람에게 책임을 위탁하지 않는다. 항상 하나님께만 책임을 위탁한다 (마 12:36; 18:23; 눅 16:2; 롬 3:19; 14:12; 고전 4:5; 히 4:13; 13:17; 벧전 4:5).

결과적으로, “누가 당신을 책임지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성서에 걸맞은 대답은 단순히 “당신을 책임지는 존재가 나도 책임진다. 곧 하나님이시다” 이다.

그렇지만, 이상한 것은 이 대답이 보통 오해에 대한 처방 및 거짓된 비난에 대한 처방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책임”이라는 말과 “커버링”이라는 말의 음색 및 음정은 약간 다를지라도 노래 자체는 본질적으로 같다.

그리고 그것은 성서에 있는 명백한 노래와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커버링의 배후에 있는 진짜 질문 밝혀내기

 

질문의 범위를 좀 넓혀보자. 사람들이 “커버링”에 관한 질문을 던질 때 그들이 진정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들이 실제로 하는 질문은 “누가 당신을 조종하는가?” 라는 것임을 제기하고자 한다. “커버링”에 대한 일반적인 가르침(잘못된)은 누가 누구를 조종하는지에 관한 질문들로 요약된다. 그리고 현대 제도권 교회는 그런 식의 조종을 바탕으로 조직된다.

물론 사람들은 이것이 그 이슈의 밑바닥에 깔려있음을 좀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보통 종교적인 옷들을 잘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엔 “커버링”이 단지 보호 장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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