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문제 (2)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61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문제(2)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42)>

 

현대 교회들의 의사결정은 주로 목사나 당회나 제직회 같은 소수의 지도자 층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공동회의에 의한 의결도 다수결(과반수 또는 3분의 2 이상 찬성)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신약성경엔 초대교회가 합의 곧 만장일치에 의해 의결했음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날의 실용주의에 물든 눈으로 볼 때는 합의가 불가능한 것 같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적인 머리로 하는 교회라면 주님께서 지체 모두를 결국 한 마음으로 묶으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다만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이 그리 간단하거나 쉽지 않음을 염두에 두고 모든 지체가 함께 애써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합의는 비싼 대가를 요한다

 

이에 대해서도 프랭크 바이올라가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그가 쓴 책 Reimagining Church(다시 그려보는 교회)의 10단원으로 가보겠습니다.

그가 “우리 앞에 놓인 도전” 이라는 소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한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합의가 비싼 대가를 요한다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교회의 모든 지체로 하여금 그들을 위해 주님을 찾도록 책임을 지운다.

그것은 신자 각 사람이 주님의 마음을 확인하도록 다른 신자와 함께 인내로 씨름하며 분투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종종 확신을 얻도록 지연시켜서라도 졸속한 결정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함께 세우면서 그것을 이루는 것이 이 얼마나 대단한가!  인내로 사역하는 것도, 상호간에 사랑과 존중을 표현하는 것도,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실천하는 것도, 육신에 제약을 가하는 것도, 십자가를 지는 것도, 우리 자신의 안건에 죽음을 선포하는 것도!

 

그런 대가가 주님의 교회를 위한 그분의 마음을 확인하는 가치에 합당하지 않은가? 주님께서 공동체로서의 우리 안에 더 깊이 역사하시도록 기회를 드리는 것이 가치 있는 일 아닌가? 주님의 교회와 관련된 일에 주님의 마음을 아는 확신이 조급한 결정(우리 형제자매의 삶을 손상시키고 주님의 뜻을 놓칠 수 있는 결정)의 편리함을 능가하지 않는가?

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수단이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너무 자주 잊어버린다. 다시 한 번, 크리스천 스미스가 그것을 멋지게 표현했다:

 

합의는 크리스천 공동체의 경험 위에 기초한다. 그것은 함께 이슈들을 헤쳐 나가는데 관대할 수 있는 든든한 관계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의견 차이가 있을 때 서로 들을 수 있는 상호간의 사랑과 존중을 요구한다.

합의는 또한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키거나 억지로 동의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그들을 알고 이해하기 위한 결단을 요구한다. 교회 안에서 결정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합의는 더 쉬운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수단이다.

윈스턴 처칠이 한 말을 알기 쉽게 바꿔본다면, 합의는 교회 안에서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하고 최악의 의사결정 방법이다.

 

합의는, 그것이 우리에게 쉽고 빠르다는 의미라면, 효율면에서는 크지 않다. 이슈들을 헤쳐 나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는데, 이것은 상당한 좌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합의는 교회 안에서의 결속, 대화, 성령의 인도에 열린 마음, 그리고 책임감 있는 참여에 힘을 발휘한다. 합의는 그런 가치들을 얻는데 있어 효율적이다.

따라서 합의에 의한 결정이 요구하는 것은 다만 결속과 사랑과 대화와 참여가 그리스도인의 계획에서 쉽고 빠른 결정보다 더 중요하다는 믿음이다.

그것엔 궁극적으로 과정이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이해가 요구된다. 우리가 함께 결정을 할 때 서로 어떻게 대하느냐가 실제로 무엇을 결정하느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합의의 문제에 접근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편리함이라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희생시켜왔다. 그러나 인간적인 편리함과 유리함은 영적 세계에서의 활동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는 위험할 정도로 얄팍하기 짝이 없다.

 

그러므로 물어야 할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이 편리하고 유리한가?”가 아니라 “이것이 성서적이고 교회의 유기적인 본질과 조화를 이루는가?”이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뭔가를 따르라고 하신다면, 그것이 주님의 은혜로 가능케 되고 실현될 것이므로 당신은 안심할 수 있다.

 

 

대립과 분쟁을 피하는 길

 

그런데, 문제는 교회 안에서 대립하고 분쟁할 때 저마다 자기가 속한 그룹은 성서적이고 또 진리의 편이고, 상대방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이런 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고문하고, 옥에 가두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 경우가 많이 있음을 증언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역사상 불신자에 의해 죽임을 당한 그리스도인들보다도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죽임 당한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더 많다고 합니다.

 

교회의 지체들 속에서 서로 마음이 맞지 않고, 의견이 다르고, 성격이 충돌할 수도 있고, 감정이 상하고… 등등 이런 것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편이라는 확신이 생기게 될 때는 그런 확신이 제도와 직책의 권위 같은 것과 맞물려서 상대편을 향해 제도적 또는 물리적인 압박을 가하곤 하는데, 이것이 극에 달해 죽음으로 몰기까지 한 것입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사도들과 교회를 핍박한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서는 그런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지만 이기기 위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선동하고 조작하는, 마치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이나 오늘날의 정치꾼 집단의 행태를 연상케 하는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결국 평행선을 그리며 파벌 싸움으로 치달아 서로 상대편을 향해 영적이지 않다고 하고, 마귀집단이라고 하는 등 공격을 퍼붓고 갈라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상처만 가득 안고 말입니다.

갈라지지는 않더라도 싸움에서 진 편의 앙금은 꾸정물통 아래 가라앉은 오물처럼 틈만 나면 언제든지 위로 올라올지 모르는 상태로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대립과 분쟁을 피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물론 그것이 간단하지는 않겠지만, 우선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말한 무서운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고전 1:13).

 

이것은 어떤 사역자에게 속했느냐를 놓고 분쟁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바울이 한 말인데, 교회 안에서 대립과 분쟁이 벌어질 때는 언제든지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일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가 어찌 나뉘었느냐?” 라고 하지 않고 고린도교회 지체들이 그리스도를 난도질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섬찟한 표현입니다.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요?

왜냐하면,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은 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몸을 나누는 것은 곧 머리를 나누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에 관한 이 진리를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때 일찌감치 깨달았을 것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행 9:4).

 

바울이 박해한 것은 교회인데 예수님은 “나를” 이라고 하셨습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왜 내 몸에 손을 대느냐?”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대립하고 교회를 분쟁으로 치닫게 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 상처를 입히고, 그 분을 칼로 쪼개는 것이나 매한가지입니다. 무시무시한 행동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이 말씀이 교회 안의 모든 지체에게 올바로 이해될 때 의견은 다를지라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상대편을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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