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주일 성수의 문제 (3)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25

주일 성수의 문제(3)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7)>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무의식 중에 ‘주일 성수’ 라는 정체불명의 계명을 믿고 있습니다.

구약시대 때 토요일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에는 요일만 변경시키셔서 일요일인 주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주셨다는 믿음 말입니다. 옛 율법의 ‘안식일 성수’가 신종 율법인 ‘주일 성수’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류의 율법적 신앙으로는 신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고, 따라서 신약성경이 말하는 유기적 교회는 절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기적 교회는 율법이 아닌 생명의 법칙에 의해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근거 없는 믿음이 생기게 되는지 궁금해서 잠깐 분석을 해보았습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생기는 율법 신앙

 

저는 태어나서부터 교회라고는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가, 미국에 이민 와서 약 40년 전 대학생 때 난생 처음 교회의 주일예배에 출석했습니다. 그때 그곳은 한인 인구가 얼마 되지 않은 오하이오주의 대학교 중심 타운이라서 한인교회가 한인회나 한국학생회나 다름 없는 그런 곳이었기 때문에, 신앙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교회를 가끔 다니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멀리 떠나 혼자 대학생활을 하니까 외로울 때 교회에 가면 한국 동포들을 만날 수 있고, 또 한국 음식 먹을 기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1년쯤 들쑥날쑥 교회를 다녔는데 신앙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이 있던 로스 앤젤레스에 갔다가 그곳 교회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 그야말로 인생이 뒤집어졌습니다. 그 전까지 살아야 할 목적도 이유도 모르고 그냥 무미건조한 대학생활을 하다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으니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해서 오하이오로 돌아온 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교회생활로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님께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앙이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헌신이 지나치니까 성경을 무슨 지침서로 알고, 써있는 그대로 행동에 옮기려 하는데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주일 성수’에 대한 투철한 믿음이었습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주일이 안식일이므로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믿음을 스스로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주일예배에서 몇주 후에 야외예배를 드린다는 광고를 듣게 되었는데, 그 광고를 듣는 순간 속에서 거룩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니, 거룩한 안식일에 성전(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공원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둥 마는둥 하고 먹고 놀겠다니… 이 사람들이 제 정신인가? 하나님을 우습게 알아도 유분수지. 이러고도 어떻게 목사, 장로, 집사라고 할 수 있는가? 이 교회에서 나만이라도 신앙을 바로 지켜야겠다.”

저는 마음 속에 벌써 그날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타협하지 않고 이미 승리했다는 자부심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야외예배에 가지 않고 홀로 집에서 경건히 예배드릴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 친구에게 내 생각과 계획을 말했는데 순진한 그 친구는 그후로 몇 주 동안 고민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내 말이 맞긴 맞는것 같은데 그렇다고 야외예배에 가지 않으면 교인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고… 갈팡질팡하던 그의 선택은?

 

저는 야외예배 날 물론 그곳에 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정장을 하고, 평소 주일예배 드리는 바로 그 시간에, 포로생활 중 예루살렘 성전 쪽을 향해 기도하던 다니엘처럼 저도 교회당 쪽을 향한 다음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방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묵도부터 시작해서, 찬송, 기도, 교독문,… 십계명을 읊고(제 4 계명을 특히 강조하면서),… 그리고 성경본문으로 이사야 56장을 정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이 말씀에 비추어 안식일을 지키려고 애쓰는 자신의 복 받은 모습을 보며 은혜가 충만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일어나 열어보니 제 친구였습니다.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알고 보니 그 차림으로 야외예배 장소에 가서 간단한 예배만 드리고 이내 저에게로 달려온 것이었습니다. 경건하게 예배를 드린 다음 그릴 위에서 지글지글 타고 있던 불고기와 갈비를 뒤로 하고 그곳을 떠나온 그 친구의 승리를 축하하며, 우리가 둘 다 이렇게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도록 힘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아울러 안식일을 범하고 있던 목사를 위시한 모든 교인들을 속으로 정죄했습니다.

 

지금은 이 생각을 하면 쓴 웃음만 나오지만, 그때는 정말 심각했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제가 중세 때나 종교개혁시대 때 살았던 종교지도자였거나 청교도 지도자였다면 아마 야외예배 현장을 찾아가서 안식일에 야외에서 먹고 마시고 놀고 있는 교인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감옥에 쳐넣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의 이런 안식일에 대한 율법적인 믿음이 누가 얘기를 해줬거나 누구에게서 봤거나 해서 생긴 것이 아니고, 성경을 읽고 스스로 갖게 되었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다뤘던 ‘종교적 신념의 문제’ 입니다.

기독교든 타 종교든 관계 없이 사람을 외골수로 만들어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는 심각한 병 말입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코란을 읽어도, 몰몬경을 읽어도, 심지어는 성경을 읽어도 proof-texting을 하게 됩니다. 신념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구절을 맘대로 갖다 붙인다는 말입니다.

주일 성수를 해야 한다는 신념이 이것에서 나온 것일 것입니다. 성경에서 나온 율법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은 성경대로 한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못말립니다.

이것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아마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셔도 바뀌기 힘들 것입니다. 2천년 전의 유대인들처럼 말입니다.

 

 

세뇌 당해서 생기는 율법 신앙

 

율법 신앙은 이렇게 스스로 열심이 특심해서 생기기도 하지만,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세뇌되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해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큰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에서 유행하던 간증 비디오테잎을 보고 호기심에서 그 교회를 방문했었습니다.

그 비디오테잎의 주인공이 소위 한국에서 이름난 전도왕인데, 그 전도왕이 수많은 사람을 전도해서 데리고 갔다는 교회, 그런 훌륭한 전도왕이 집사로 섬기는 교회는 도대체 어떤 교회일까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기대감을 갖고 그 교회의 예배에 참석했는데, 마침 담임목사님이 몇 주 동안 외국에 가서 집회를 하고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에선 집회하고 돌아온 간증을 주로 하겠구나 하며 내심 더 큰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웬걸, 설교의 처음부터 끝까지, 40분 내내 ‘주일 성수’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일 성수해야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고… 성경 여기 저기에서 구절을 인용하며 주일 성수를 해야함을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안식일이 주일이라는 것과 꼭 교회당(성전)에 와서 예배해야만 주일 성수를 하게 된다는 말을 강조하면서… 그리고 주일 성수를 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설교에 단골로 등장하는 성경구절인 히브리서 10:25이 어김없이 강조되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렇게 주일 성수와는 상관도 없는 성경구절들을 찾아 인용해가면서 율법 신앙을 주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서 그 설교를 40분씩이나 듣고 있던 수천 명의 교인들이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세뇌당한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말을 제법 알아듣는, 그때 고등학생이던 아이들 앞에서 민망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스스로 생기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 의해 세뇌를 당하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와는 상관 없이 proof-texting에 의해 성경을 사용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사이에 율법 신앙이 우리의 삶에 배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것의 잣대로 자신과 남을 판단해서 자기 의에 빠져 자만하고 남을 정죄하기도 하고, 아니면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주일 성수가 바로 이런 율법 신앙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참고로 히브리서 10:25은 오늘날의 교회에서 교회의 예배나 다른 모임에 빠지지 말고 참석하라는 권면을 할 때 사용되어선 안됩니다. 우선 유기적인 교회를 하려면 모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강조하고 말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 히브리서 10:25은 무슨 뜻입니까?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히브리서는 교회에 핍박이 닥치니까 예수 믿기 이전의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유대인들(히브리인들)의 교회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당시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오늘 우리와는 달리 교회생활도 하고 동시에 유대인 사회의 중심지인 회당도 드나들던 독특한 신앙생활을 했는데, 교회에 무서운 핍박이 일어나니까 교회의 모임은 폐하고 이전의 유대교로 돌아가 비교적 안전한 회당 중심의 생활만 하려는 사람들이 속출하므로, 누군지 모르지만 구약성경에 능통한 유력한 지도자가 그들을 경고하기 위해 쓴 편지가 히브리서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완전히 폐기되었으므로 다시 유대교로 돌아다는 것은 형편 없이 열등한 것이고 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박는 것이나 매한가지라는 논리로 그들을 설득한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모이기를 폐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결별하고 유대교로 돌아간다는 뜻이지, 교회 모임에 출석을 잘 안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말입니다. 더구나, 이 구절을 주일 성수에 갖다 적용하는 것은 더욱더 말이 안됩니다.

 

아무튼 유기적 교회를 하려면 주일 성수를 해야 한다는 율법적인 사고방식 같은 것이 사라져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지체가 다 모이기에 적합한 날과 시간을 함께 정해서 모이는 것이 유기적 교회에서는 바람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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