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크리스마스 트리 인간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7

크리스마스 트리 인간

 

이 글을 시작할 때 교회가 ‘예수님짜리’의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성경 말씀을 통해 확인했었습니다. 이것에는 예수님짜리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 지체 또한 예수님짜리여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여자이므로 교회 속의 모든 지체들도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시고 아끼시는 존재입니다.

 

구약성경 아가 7:1-9에 보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과 사랑에 빠지니까 그녀의 몸의 각 지체가 너무 예뻐서 하나씩 열거하며 감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마치 교회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신 예수님께서 교회의 각 지체를 향해 감탄하시는 것을 연상케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짜리 교회에 속한 지체들은 엄청나게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런 예수님짜리 교회를 세우려면 우선 그 교회를 구성하는 지체들이 누구인가가 관건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과 생명의 교제를 나누는 생명체(여자)이므로 교회의 지체들 또한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즉 요한복음의 저자가 줄곧 강조한 “생명(life) 또는 영생(eternal life)”을 소유한 사람들만이 참된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기독교 종교인들은 예수님짜리 교회를 절대로 세울 수 없습니다.

 

 

산타클로스와 믿음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어렸을 때 산타클로스를 정말 믿었던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었는데, 아홉 살 때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었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던 것이,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큼직한 양말을 장롱의 문고리에다 걸어놓고 잠들면 그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그 양말 안에 평소 갖고 싶었던 것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밤새 산타 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내려와 선물을 주고 갔다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부모님과 형, 그리고 누나 일곱 명이 이구동성으로 그렇다는데 믿지 않을 어린애가 어디 있겠습니까?

 

크리스마스 때의 이런 경험이 여러 해 동안 쌓이고 쌓여 확고부동한 믿음으로 자리 잡았었는데, 이런 굳은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 끝난 후의 개학 첫 날부터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방학숙제인 일기쓰기 검사를 하면서 몇 사람을 지목하여 일기를 읽으라고 했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 12월 25일자 일기의 내용인 산타클로스의 선물에 대해 자랑스럽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듣고 있던 반의 아이들이 깔깔대고 웃는 것이 아닙니까? 그 후로 두고두고 그들의 놀림감이 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뒤늦게 산타클로스가 사실이 아닌 허구였음을 알고 허탈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산타클로스가 사실인지 아닌지 따져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믿어버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양말을 걸어놓은 후 잠자고 일어나면 틀림 없이 양말 속에 선물이 들어있는 확실한 경험이 산타클로스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순진하고 신실한 믿음이었지만 하루 아침에 무너져버린 믿음이었습니다.

 

 

확실한 경험과 굳건한 믿음?

 

위의 산타클로스의 예에서 본 바와 같이, 경험한 것이 확실하고 믿음이 견고해도 얼마든지 가짜를 믿을 수 있는데, 기독교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서 받은 응답, 기적의 체험, 마음의 평안, 감동 받은 것 등 자신이 경험한 것들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아주 열렬하게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믿은 예수는 진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아니라 자신들이 상상해서 만들어놓은 예수일 가능성이 큽니다. 마치 2천 년 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열렬하게 믿었지만 자신들이 바라는 메시아로서의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요한복음이 증언하기를, 정작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은 그들을 믿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요 2:23 – 25).

그들이 진짜 메시아에게서 자신들이 원하는 가짜 메시아를 바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경험도 많이 하고 소위 은혜도 많이 받지만 예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비극이 기독교 이단에서는 물론이고 정통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예수를 진짜 예수라고 착각하고 믿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생명체로서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운명

 

크리스마스 절기가 되면 가정집이나 공공 장소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데, 간단하게 인조나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생나무를 잘라다 놓은 것이라야 제격일 것입니다.

거기다 흰 솜을 붙이고, 방울도 달고, 캔디도 걸고, 빨간 양말도 달고, 은박지로 된 별도 달고, 각양 각색의 전구도 달아서 아름답게 꾸밉니다.

장식한 것을 보면 집집마다 천차만별입니다. 형식적으로 해놓은 집,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해놓은 집, 가족 전체가 달려들어 정성스럽게 꾸며놓은 집, 크리스마스 트리 치장하는 맛에 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장식한 집…… 보기만 해도 금방 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한 열의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나무가 실은 죽은 나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푸른 잎을 자랑하며 살아 있는 듯 하지만 실지로는 죽어있습니다.

밑동이 잘리던 날, 뿌리에서 떨어지는 순간 이미 죽은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떨어져나갔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밑동이 잘리기 전에 뿌리를 통해 흡수했던 수분과 영양분이 남아 있기 때문인데, 바로 이 상태의 나무를 크리스마스 절기 동안 사용하는 것입니다.

나무 자체로 보면, 장식을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의 차이일 뿐 이미 죽었고, 죽어가고 있고, 앞으로 죽을 운명입니다.

나무가 시들어 푸르던 잎이 점점 노랗게 변해가는 것이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 절기가 지나면 그 나무는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향하게 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인간

 

이런 크리스마스 트리와 인간도 비슷합니다.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실지로는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생명 뿌리에서 밑동이 잘려나갔을 때 이미 죽은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뿌리 쪽에서 볼 때 죽은 것이듯, 사람도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쪽에서 보실 때 죽어 있습니다.

이렇게 죽은 인간은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 눈으로 보기에도 죽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결국 쓰레기통으로 향하게 됩니다.

쓰레기통이라니?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인간 쓰레기를 버리는 영적 쓰레기통을 말하는데, 성경은 이것을 지옥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크리스마스 트리와 비슷한 운명을 가진 인간이 지옥 가기 전 몇 십 년 동안 무엇을 합니까? 역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장식하는 일입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에 장식 이외의 다른 의미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지식, 지위, 학위, 돈, 출세, 명예, 권세 등으로 장식하고, 더 크고 호화로운 집과 차로 장식하고, 더 사치스런 결혼식, 더 비싼 옷과 보석, 더 화려한 가구 등으로 장식합니다.

심지어는 박애주의로, 인도주의로, 봉사활동으로도 장식합니다. 종교와 철학과 이념과 사상으로도 장식합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평소 장식하던 버릇대로 하나님께나 다른 교인들에게 점수를 많이 따려고 온갖 종교활동의 장식을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 지도자가 되면 교회성장이라는 장식, 근사한 교회당이라는 장식, 위대한 설교자라는 평을 얻기 위한 장식 같은 것에 매달리게 됩니다.

얼마나 더 많이 장식하느냐에 따라 인정을 더 받고 덜 받기 때문에 오로지 장식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그러나 박수를 더 받고 덜 받는 차이일 뿐 누구나 때가 되면 시들해져서 영적 쓰레기통인 지옥으로 향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 크리스마스 트리 팔자가 되었는가?

 

어쩌다가 인간은 이런 크리스마스 트리의 운명처럼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생명 줄인 뿌리에서 분리되어 뿌리의 목적과는 동떨어진 장식하는데 사용되듯이, 사람도 하나님이라는 생명의 뿌리에서 이탈해서 하나님의 목적과 동떨어진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나무 뿌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물과 영양분을 충분히 흡수하여 줄기와 가지로 보내서 나무에 푸른 잎이 무성해지고 꽃이 만발해서 벌과 나비가 달려들고 결국 독특한 열매를 맺는 것이 목적입니다.

뿌리의 생명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 받아 하나님의 생명이 확장된 교회를 이루어 하나님과 영원토록 생명의 교제를 나누는 목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런 하나님의 목적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켜버렸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 “죄” 라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생명 뿌리로부터 단절된 인간은 이미 죽었고, 죽어가고 있고, 앞으로 영원히 죽을 것입니다.

 

이런 죄인은 이제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고 싶어도 살 수 없게 되었고, 오로지 장식만 하다가 끝나버릴 팔자가 되었습니다.

남보다 장식을 많이 하면 우쭐해져서 자랑을 일삼고 또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장식이 부실하면 낙심하고 열등의식에 빠지고 비관하는 등 장식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다 보니 이 세상은 그야말로 피 튀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되었습니다. 장식 때문에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샘내고, 낙심하고, 비관하고, 헐뜯고, 가로채고, 훔치고, 빼앗고, 죽이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죄인이라는 사실을 과소평가해선 안 되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교회 안에서도 장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인간을 벗어나지 못한 채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이런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사람이 소생해서 하나님의 목적대로 예수님짜리 교회를 이루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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