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문제 (3)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62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문제(3)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43)>

 

바로 앞에서 언급했던, 바울이 고린도 전서 서두에서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라고 일갈한 말은 우리가 이 땅에서 교회의 지체로 살아가는 동안 두고두고 곱씹으며 우리의 몸에 배도록 해야 되는 진리입니다.

 

이것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난도질 하는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 심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 바울을 엿볼 수 있는데, 이후로도 그는 사분오열되어 있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교회가 곧 그리스도라는 사실, 즉 그리스도와 교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라는 것을 고린도 전서 전체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무엇을 결정하든 관계없이 지체들 모두가 우선 깊이 새겨야 할 필수적인 기초 원리입니다. 이런 기초 원리가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의사결정에 있어 각각 하나님 뜻이라고 고집하는 자기 주장을 여간해서 굽히기가 힘들 것입니다.

 

 

교회가 곧 그리스도라고 하는 바울의 표현

 

고린도 전서 1장에서 “교회가 어찌 나뉘었느냐” 라고 표현해야 하는 곳에서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라고 했던 바울은 12장 12절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교회를 몸에 비유하면서 여러 성도가 한 교회를 이루는 것이 곧 많은 지체가 한 몸을 이루는 원리와 같은 이치임을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 “교회도 그러하니라” 라고 해야 할 곳에서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 교회 안의 다른 지체들보다 자신들이 더 낫고, 더 중요하고, 더 옳다고 주장하는 지체들을 향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교회가 곧 그리스도라는 것. 즉, 교회와 그리스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임을 다시 강조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 속한 교회의 지체 중에는 어떤 차별도 없어야 하고, 중요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왜 합의에 의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자기 주장만 관철시키기 위해 교회를 분열로 몰고 가는 것은 그리스도를 잘라내는 것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제가 사는 집 바로 옆 동네에 있는 한 한인 교회가 내분에 휩싸여 경찰이 출동하는 등 서로 각을 세우고 있는데, 교회가 곧 그리스도라는 원리만 제대로 알아도 이런 극한 대립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바울의 표현

 

바울은 고린도 전서에서 또 교회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3:16,17)

 

이 구절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안의 분쟁에 대해 지적하는 문맥 속에 있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곧 하나님의 성전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교회당을 성스럽게 여겨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그런 것이 아니라, 지체들로 구성된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뜻입니다.

 

여기 이 말씀은 고린도 전서 6:19-20의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과는 다른 맥락의 말씀입니다.

거기서는 우리의 육체를 성령의 전에 비유해서 음행을 피하고 거룩하게 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므로 분쟁으로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런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을 멸하신다는 뜻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일어난 분쟁을 하나님의 성전이 더럽혀진 것으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원리가 몸에 배어야 교회 안에서 극한 대립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원리를 바로 알아야 앞에서 다루었던 유기적 권위에 복종할 수 있습니다. 즉, 이런 원리에 기초해야 교회 안에서 “피차 복종하라”는 에베소서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 지체들 상호간의 복종은 대가 없이 거저 이루어질 수 없음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는 지체들을 향해 정말 사랑을 실천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다시 프랭크 바이올라의 설명을 인용합니다. 다음은 Reimagining Church(다시 그려보는 교회)  12 단원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상호간의 복종에 따르는 대가

 

상호간의 복종은 권위적인 구조에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동시에, 그것이 포스트모던 사고방식으로 특징지어지는 극도로 개인주의적이고, 윤리적으로 상대적이고, 관대하기만 한 무정부주의와 혼동해선 안 된다.

 

상호간의 복종엔 대가가 따른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의 자아는 그 누구에게도 복종하기를 원치 않는다. 타락한 존재인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간섭받지 않고 우리 자신의 눈으로 볼 때 옳은 것을 행하고자 한다 (잠 12:15).

따라서 유기적인 권위를 거부하는 성향은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우리의 본성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롬 3:10-18). 다른 사람들에게 지적과 권면과 책망을 받는 것은 커다란 십자가를 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잠 15:10; 17:10; 27:5-6; 28:23).

이런 이유로, 상호간의 복종은 법을 싫어하는 우리의 문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반항적인 육신에 해독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영적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또한 고통을 수반한다. 남을 지배하는 성격의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을 책망하는 역할은 어렵고도 위험부담이 있다. 성서는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는 것이 견고한 성을 취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잠 18:19).

따라서 대립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다른 사람들을 지적하는 난처함이 우리 육신에게는 주님의 권위를 행사하는 영역에서 주님께 대한 순종을 어렵게 한다. (이런 난처함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 사랑하고 받아주는 관계성을 정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저 신경을 끄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고, 잘못을 범한 형제들을 놔두고 그냥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할 것이다. 인내와 겸손과 연민을 가지고 사랑으로 그들과 맞서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에 대한 예외가 있다면 자기 의로 가득해서 지배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적하기를 즐기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이 다른 사람들과 우리의 관계를 지배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면 그들의 조언과 권면에 우리 자신을 복종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랑은 잘못을 범한 형제들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나아가도록 우리를 강권할 것이다 (갈 6:1; 약 5:19-20).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악한 동기의 탓으로 돌리기를 삼갈 것이다 (마 7:14; 고전 13:5).

근본적으로, 사랑의 길은 언제나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유기적인 교회의 토양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계급과 제도가 존재하는 현대 교회에서는 상호간의 복종이라는 것이 신기루에 가까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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