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님짜리?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1

예수님짜리?

 

저는 대학생 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이후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음을 확신하고 목회자가 되어 설교와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통해 교인들을 가르치고, 셀교회 운동과 선교에도 열심을 내고, 성경공부 교재도 집필하고, 목회자들을 상대로 세미나도 수없이 하며 신앙에 꽤나 통달한 듯 살았습니다.

하지만 영적 지식과 경험이 쌓여가면서 행복했던 순간들도 많았고 잘 나가는 것 같았는데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뭔가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고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반쪽 복음에서 온전한 복음으로

 

그 이유는 바로 아주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나는 도대체 왜 태어났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안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 구원을 받은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예정된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내 책임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등등.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칠 때는 확신에 차서 열변을 토하던 주제들이고 상당히 정리가 되어 답도 확고하게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어딘가에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약 10년 전에 우연히 손에 들어온 책 한 권을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저의 신앙이 새로운 차원으로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 즉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를 알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써나갈 ‘예수님짜리 교회’ 라는 제목의 글은 지난 10년 동안 새롭게 알고 경험하게 된 복음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 제가 알았던 복음이 엉터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복음의 반쪽을 전부인 줄 알고 살았었습니다. 복음을 알기는 했지만 온전하지 못한 복음을 붙잡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우선 이전의 저처럼 복음의 반쪽을 전부인 줄 알고 있는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없지만 성경적인 표현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제가 ‘예수님짜리’ 라는 제목으로 처음 성경공부 교재를 펴냈을 때 이 제목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거룩한 예수님의 이름에 ‘짜리’ 라는 말을 붙이다니…… 아주 불경스럽게 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이 말의 깊은 뜻을 알고 보니 공감이 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짜리’ 라는 말이 성경에는 없지만 이것처럼 성경적인 말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 곳곳에서 이 말의 의미를 지지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라는 말이 성경 어디에도 없지만 우리가 성경의 증거로 그 말의 뜻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듯이, ‘예수님짜리’ 의 의미도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아래의 성경구절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요한계시록 5:9)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 전서 6:19-20)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가치가 예수님의 목숨 값이 되었다고 위의 구절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셨다면 그 존재야말로 아주 비싼 값일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예수님짜리’ 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짜리의 가치

 

어떤 것의 가치는 그것이 얼마짜리인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5불 주고 샀으면 5불짜리, 100불 주고 샀으면 100불짜리입니다. 1만불 주고 산 다이아몬드는 1만 불짜리, 2만불 주고 산 차는 2만 불짜리, 100만불 주고 산 집은 100만 불짜리 입니다.

 

제가 한국과 일본에서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리던 해인 2002년에 영국에서 지냈을 때, 어느 대학교수가 그 당시 영국 축구대표팀의 주장이던 베컴의 상품가치에 대해 조사한 보고서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교수는 베컴의 상품가치를 무려 10억불쯤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때 한국 1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상품가치가 18억불이었던 것을 볼 때, 축구 스타 한 사람의 가치가 정말 대단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1년을 지내면서 이것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에 관한 시시콜콜한 얘기까지도 거의 매일 신문과 TV에 등장하는 것은 물론, 그의 아내가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부터 출산하고 퇴원하기까지 며칠 동안 아예 신문은 그 뉴스로 도배를 한 것 같았고, TV는 중계방송 수준으로 극성을 떨었습니다. 10억 불짜리임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똑 같은 몇 십 불짜리 야구공 중에도 홈런 기록을 세운 백만 불짜리가 있습니다. 같은 프로 축구 선수들 중에도 베컴 같은 비싼 선수가 있는가 하면, 미국의 메이저리그 사커에는 연봉이 십만 불도 되지 않는 선수들이 대다수입니다. 돈을 지불하고 산 값이 천지차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목숨 값을 지불하고 산 존재의 가치는 당연히 ‘예수님짜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실로 엄청난 가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짜리의 성경적인 표현들

 

그럼 신약성경은 예수님짜리의 가치를 지닌 존재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몇 개만 예로 들겠습니다.

아래의 구절들(지면 관계상 인용은 하지 않겠지만 성경을 찾아보기 바람)은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감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이전에 저는 이 구절들을 수도 없이 읽고, 가르치고, 설교도 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잘 못 짚은 것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로마서 8:16-1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를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 라고 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공동 상속자’ 입니다.

예수님과 똑 같은 상속을 받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로마서 8:29-30

보통 ‘이신칭의’ 라는 말은 곧잘 이해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에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러나 위의 구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영화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화롭다고 하시는 존재는 오직 예수님뿐인데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3-5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을 빠짐 없이 다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오직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모든 것을 공유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 하나님의 모든 것에 동참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복을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좋게 말하신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게 말하는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데, 우리도 그런 존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1:23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의 충만 그 자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하신 목적의 완성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런 목적을 이루는 교회에 하나님께서 충만히 거하셔서 교회와 하나가 되십니다. 원래 하나님 아버지께서 충만히 거하시는 존재는 아들이신 예수님 밖에 없는데(요한복음 1:14) 교회가 바로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4-6

구원 받은 정도가 아니고 예수님과 운명이 같습니다. 이미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힌 바 된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3:1-4도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요한 일서 1:1-3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차원에서 교제(사귐)를 누리는 존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1-22:5

이것은 이 세상이 끝난 이후에 나타날 천국의 이야기가 아니고, 지금 이 세상에서부터 앞으로 영원히 지속될 교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린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으로 상징된 교회가 새 하늘과 새 땅이고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교회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구절이 예수 그리스도 안의 존재가 예수님짜리의 가치가 있음을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는, 사도 바울의 말을 빌리자면,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비밀(신비)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온전한 복음을 아는 것인데, 예수 믿고 구원 받은 다음 이 세상에 살 때 복을 받고 죽은 후에 천국에 간다는 반에 반쪽 짜리, 아니면 구원해 주신 은혜 감사하여 주님의 제자로 헌신하다가 나중에 천국 가서 상급을 받는다는 반쪽 짜리 복음이 오늘날 기독교 안에 만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래 의도와는 한참 거리가 있습니다. 그 원래 의도를 간단히 말하면 ‘교회’입니다.

교회가 복음의 핵심입니다.

저는 이것을 ‘예수님짜리 교회’ 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이런 교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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