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교회는 유기적이라야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18

교회는 유기적이라야

 

앞에서 계속 언급했듯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인 생명체이고 인격체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머리요 신랑이신 예수님과 자발적인 교제를 통해 관계가 깊어지고 사랑이 무르익어가야 정상입니다.

인격적인 교제에는 노골적인 강압이나 은근한 압력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부담을 느껴서 드리는 헌신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생활을 유기적으로 해야 주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유기적 교회란?

 

Organic Church(유기적 교회)라는 말은 영국의 오스틴 스팍스로부터 나와서 최근에는 미국의 프랭크 바이올라에 의해 15년 전 소개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말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에 의해 태어난 교회를 뜻합니다.

즉, 인간의 제도로 조직되어 종교적 프로그램에 의해 유지되는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유기적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의 차이는 하나님에 의해 태어났느냐 아니면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느냐, 살아 있는 생명체냐 아니면 인위적인 조직이냐,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스타일이냐 아니면 대본에 의해 연출되는 드라마냐, 생명체인 식물이 자라나는 채소밭 같은 것이냐 아니면 기계인 자동차를 만들어내는GM 공장 같은 것이냐… 의 차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교회는 인간의 제도나 전통이나 조직이나 형식이나 교리 같은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지체들이 머리요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자발적인 사랑과 헌신을  드림으로써 비로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구태여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느니,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느니, 예배와 기도와 말씀공부와 전도와 선교를 해야 한다느니…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해야 하고, 저것을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자꾸 요구해봐야 결국 신앙생활을 때우는 종교인들만 잔뜩 양산하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고 유기적인 토양이 형성되면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그 생명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유기적인 교회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교회로 살아갈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아름다운 일

 

예수님께서 온 천하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꼭 말하라고 하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도 이 글을 쓰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이 이야기는 꼭 하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마태복음 26장과 마가복음 14장과 요한복음 12장, 이렇게 세 군데에 등장하는, 예수님께서 “좋은 일” 이라고 칭찬하신 이야기입니다. “좋은 일” 이란 그리스 원문 그대로 표현하면 ‘아름다운 일’ 이라는 뜻입니다. 즉, 마리아 라는 여자가 예수님의 미적 감각을 자극해서 감탄하시게끔 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복음을 전파할 때 이 이야기를 꼭 말해야 한다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복음이 무슨 교리나 신조가 아니라 관계성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벌어지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누구나 마리아처럼 아름다운 일을 자발적으로 하게 됩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항상 관심이 가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는다’는 말씀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예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이틀 후에 잡혀 죽으실 것을 아시고 힘들고 착잡한 시간에 영적으로 통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평소 특별히 사랑하시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베다니를 찾으셨습니다.

거기서 식사하실 때 마리아가 아끼고 아껴 모아둔 향유(인도에서 수입한 순전한 나드)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남김 없이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요즘의 장정 한 사람의 일 년 연봉과 맞먹는 비싼 것을 송두리째 예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왜 아까운 것을 허비하느냐” 라고 마리아를 책망했지만, 예수님은 “저가 아름다운 일을 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마리아야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예수님의 마음과 가장 잘 통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열 두 제자는 예수님에겐 안중 없고 “우리 중에 누가 더 크냐”며 도토리 키재기 하고 있었는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마리아의 마음을 보신 예수님께서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마리아가 한 일이 왜 아름다운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리아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주님께 사랑의 헌신을 했다는 점입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한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셔서 한 것도 아닙니다.

또는 평소에 예수님께서 은근하게 압력을 가하시고 넌지시 암시하신 적도 없습니다. “거, 인도에서 수입한 나드라는 향유 좋던데…” “너 요새 시집가려고 향유 모으고 있다며? 시집도 좋지만 그걸 하나님께 드리면 다 갚아 주시고 더 흔들어 넘치게 축복해주실 텐데…” 예수님께서 뭐 이런 식으로 힌트를 주셨을까요?

 

아닙니다. 아무런 노골적 강압도 없었고, 그 누구도 은근한 압력이나, 알아서 기라는 식의 엄포나 힌트를 준 적도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주님의 마음을 읽고 스스로 부담을 느껴 자발적으로 마음이 동하고 손발을 움직인 것입니다.

이런 마리아에게 우리가 가서 주일 성수 하라, 십일조 하라, 감사헌금 하라, 전도 하라, 선교 하라, 제자훈련 받으라, 성경공부 하라, 성경구절 암송 하라, 구제 하라, 기도 하라, 큐티 하라, 예배 하라, 새벽기도 하라… 라고 하면 어떻게 받아 들일까요? 아마 우리를 불쌍히 여기며 “여러분은 신앙생활 참 피곤하게 하시네요” 라고 하지 않을까요?

 

마리아가 한 일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마음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에겐 무엇을 하라고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모욕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올바로 받아 들인 사람의 마음 자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온 천하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마리아의 이야기를 꼭 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복음이 이렇게 주님을 향해 자발적으로 헌신하게끔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신부인 교회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올바로 깨달은 사람들을 모아 태어나게 하신 생명체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향해 마리아처럼 아름다움을 풍기게 됩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보실 때 신부인 교회는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이 아름다움은 교회가 유기적으로 돌아갈 때 풍겨나오는 것입니다.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교회, 조직이 잘 짜여 있는 교회, 율법에 의해 집행되는 교회, 점수 따기 위해 노력하는 교회… 이런 교회가 예수님의 눈에 아름답게 비칠 리가 없습니다. 오직 아름다움은 마리아처럼 자발적으로 아름다운 일을 할 때 발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7-8)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하나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교회가 남편이신 그리스도에게 걸맞은 아내인 것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신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실 때 아름다운 아내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 아름다움이  “성도들의 옳은 행실” 이라고 했습니다. 이 옳은 행실은 다름 아닌 마리아처럼 자발적인 사랑의 헌신입니다. 예수님과 한 마음으로 통하여 그 마음을 읽고 유기적으로 행하는 교회생활입니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유기농’과 같습니다. 농약도 필요 없고, 화학 비료도 필요 없는 유기농 채소처럼 말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5-16)

 

이것입니다. 인위적으로 억지로 뭘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생명체라면 스스로 세워지게 되도록 유기적인 삶의 스타일을 고수해햐 합니다.

물론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것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3)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것에만 올인 해야지, 다른 어떤 것이 강조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어떤 것이 유기적인 교회생활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유기적 교회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려면 아래에 있는 책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필자가 집필한 책들과 필자가 번역한 책들임) – 괄호 안은 번역된 책의 제목.

 

프랭크 바이올라의 책:

   Pagan Christianity(이교에 물든 기독교)

   From Eternity To Here(영원에서 지상으로)

   Finding Organic Church(유기적 교회 세우기)

   Reimagining Church(다시 그려보는 교회)

 

진 에드워드의 책:

   How to Meet in Homes(오래된 교회 가정집 모임)

 

필자의 책:

   예수님짜리 인생, 예수님짜리 교회

   예수님짜리

   예수님 자리

   사망에서 생명으로

   생명에서 생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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