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어떤 지역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모임의 지체들이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부탁해왔기에 써서 보낸 글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그 지체들이 지금 당장은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교회 생활을 오래 경험한 다음 먼 훗날에 다시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제법 길게 써서 보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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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소식을 얼마 전 접하고 감사한 마음 그지없었습니다. 창세 전에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에 반응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교회로 살기를 원하는 여러분의 힘찬 출발을 응원하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지금부터 111년 전인 1910년 8월 29일에 한일 합병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치욕적인 날로써 흔히 “국치일”이라고 부르는 날인데, 2021년 8월 29일은 “국경일” 축제가 벌어지는 날입니다. 하나님 나라(國)에 축하(慶)할 일이 생긴 날(日)이니 실로 국경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축제의 한복판에 있는 여러분을 멀리 미국에서 마음껏 축하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태동하는 여러분의 모임을 보면서 제가 20여 년 전에 복음을 새롭게 깨닫고 첫발을 내디딜 때가 떠오릅니다. 저는 그전에 20년 가까이 청춘을 바쳐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목회를 했지만 결국 방황의 늪에 빠지고 말았는데, 그때 저에게 찾아온 그리스도의 복음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도 엄청난 충격과 감격과 환희를 안겨주었습니다. 제 나이 47세에 벌어진 일로서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항상 가슴이 떨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지난 20여 년 동안 저는 그 복음의 능력을 더 놀랍게 끊임없이 경험하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에 감탄하고 또 흥분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진정 그리스도와 교회를 전혀 모르고도 아는 줄로 착각하고 용감하게 목회했었던 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런 놀라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른 채, 죽어서 천국에 갈 소망만 붙잡고, 축소된 복음을 가지고 간신히 연명하면서 살았었으니까요. 그래도 그것에 인생을 다 걸고 정신없이 뛰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의 인생에 반전을 허락하셔서 지난 20여 년을 복음에 사로잡혀, 같은 복음에 반응한 교회들과 함께 신바람 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이런 여정에서 여러분의 소식을 듣게 되니 다시 한번 가슴이 설렙니다.
여러분의 멋진 출발이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날로 더 충만한 가운데 지속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제가 지난 20년 이상 관찰하고 경험한 것들 중 정말 중요한 몇 가지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신약 성경이 말하는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려면 우리가 꼭 알고 실천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요, 집이요, 신부요, 가족인 교회,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교회가 되기 위해 이것들만큼은 꼭 있어야 한다고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제가 복음을 알고 감격하고 흥분해서 미국과 유럽을 몇 년 동안 돌아다니며 교제했던 수십 개의 소위 유기적 교회 또는 가정 교회들 중(그리고 만나지는 못했지만 들어서 알고 있는 수많은 교회들 중) 지금 남아있는 모임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사실상 100 퍼센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의 모든 교회가 처참하게 공중 분해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또 제가 함께 해온 교회들을 보면서 이것들만큼은 참된 주님의 교회를 이루는 데 필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꼭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교회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알려주시리라 믿고, 제가 필수 중의 필수라고 생각하는 몇 가지만 제시하겠습니다.
1) 참된 주님의 교회를 이루려면 우선 그리스도의 총체적인 복음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이 말은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원래 목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에 올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유기적 교회들(또는 가정 교회들)이 제도권 교회를 뒤로하고 새롭게 시작을 하지만 빨리 우수한 교회를 이루어야겠다는 야망 때문에(또는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실체 없는 꿈 때문에) 초점을 “참된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에 맞춥니다.
하지만 이것은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마치 아기가 태어나려면 한참 멀었는데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보낼 생각부터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교회는 창세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생명과 사랑으로 하나로서 교제하시던 그것이 이 땅으로 확장된 것이므로, 이 교제가 제대로 여기서 이루어지려면 역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공유하시던 그것을 제대로 알고 경험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즉, 교회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낳아주셔야 하고, 우리는 그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총체적인 복음’이라고 표현하는 복음에 사로잡힐 때 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 3장에서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했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곧 “복음”이라고 했던 이것에 대해 우리가 통달하고 늘 감격해야 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다른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알려주신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감추인 상태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즉, 구약시대에 그 누구도, 또한 예수님이 지상에 계셨을 때 그 누구도 이 복음은 알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십자가, 부활, 승천을 통해 모든 것을 완성하신 후 성령이 오셔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그것을 나타내셨을 때 그들이 역사상 최초로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복음은 천사들도, 마귀와 그 졸개들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제대로 아는 것만이 하나님의 목적을 따르는 교회가 세워지는 기초가 됩니다. 이 복음이 그동안 축소되고 왜곡되어 전해져서 오늘날 교회 안의 그리스도인들이(주님을 사랑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체들이 이 총체적인 복음에서 만나지 않고 복음을 안다고 생각하고 다른 것들을 가지고 교회를 잘 해보려고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닥이 드러나고, 온갖 문제가 생겼을 때 버텨내고 소생하기가 정말 힘들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알고, 더 알고, 더 분명히 아는 것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공중 분해된 교회들은 총체적인 복음의 터에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기들이 복음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서둘러 괜찮은 교회를 만들려고 온갖 아이디어를 가진 지체들이 서로 주도하려고 하다가 자중지란이 일어나서 사라지는 교회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총체적인 복음이 아니면 교회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습니다. 부분적으로 아는 복음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복음을 아는 것에만 우선 집중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총체적인 복음을 처음 접하고 20년 이상 지난 지금, 복음으로 살아오고 또 수도 없이 그 복음을 전해왔지만, 아직도 복음을 더 깊이 아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제가 아내와 결혼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아내를 다 알지 못하듯이…. 그러므로 다른 무엇보다도 복음을 놓고 씨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이 우리 삶을 지배할 때, 그 복음에 늘 감격하며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에 사로잡힐 때,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교회는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교회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복음을 더 깊이 아는 데 집중하시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겸손하게 “나는 아직 복음을 제대로 모른다”는 자세로 출발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아는 데 있어 저에게 가장 도움을 준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제가 지난 20년 이상 수없이 늘 읽고 또 읽고 있는 것들입니다. 읽기만 할 뿐 아니라 깊이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20년 가까이 목회를 하며 설교, 부흥회, 세미나 등에서 수천, 수만 번 말씀을 전했지만 저는 복음의 반의 반도 몰랐었는데, 이 성경 본문들 속에서 복음을 총체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이 본문들로 설교하고, 가르치고, 세미나도 하고, 책도 집필했지만 이 본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기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런 것이 기적이겠지요.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 본문들을 참고로 해서 복음의 깊이가 더해지면 좋겠습니다.
이 본문 말씀이 이전에 알고 있던 것이 아닌 전혀 차원이 다른 말씀으로 다가올 때 교회가 무엇인지 알게 되며, 또 교회로 살아갈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30년 가까이 그분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수십 개 세운 후에 쓴 편지가 에베소서이고, 요한 역시 예수님을 만난 후 적어도 50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쓴 것이 요한복음으로서, 이 두 성경 본문에는 그들이 말년에 더 깊이 알게 된 주옥같은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실로 엄청난 이야기인데, 이것을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제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 6 장
바울이 특정한 교회에 쓴 것이 아니라, 말년에 여러 교회가 있는 지역에 쓴 편지로서 오늘날의 우리를 향해서도 직접 쓴 것이나 마찬가지인 내용입니다. 이 안에 헤아릴 수 없는 보화가 가득 쌓여있습니다.
요한복음 13-17 장
13-16장은 예수님께서 자기 사람들, 즉 최측근들만 모아놓고 십자가로 가시기 전날 밤에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만큼은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셔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차원을 확장시켜서 교회도 똑같이 하나가 되게 하시는 역사를 미리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있는 생명과 사랑이 교회에 그대로 이식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7장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단둘이 대화하신 내용이니, 성경에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인 차원이 확장되어 교회도 똑같이 경험하는 역사를 위한 기도입니다.
이 두 본문에 통달하고 총체적인 복음을 나날이 더 깊이 깨달아 감격 속에 이 내용 그대로를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매주 한 번은 이 두 본문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시기를 제안합니다.
2) 성경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총체적인 복음을 아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은 성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성경은 아무나 읽을 수 있지만 아무나 깨달을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역사상 수많은 이단이 성경에서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통 기독교도, 가톨릭도, 사이비들도 성경을 잘못 읽고 해석해서 인류 역사상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추하고도 무서운 일들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로 읽을 수 있도록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저는 위에서 언급한 공중 분해된 교회들 대부분이 성경을 등한시하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습니다. 제도권 교회에서 설교와 성경 공부를 강조하니까 반작용으로 그런 경향이 많습니다. 또 누구나 성경을 해석할 자유가 있다고 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그것을 강조하다가 서로 부딪히니까 아예 성경을 공부하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의 내용이 어디를 봐도 비중이 똑같다고 잘못 생각하므로 여기저기서 성경 구절을 갖다가 주장하니까 생기는 부작용입니다. 성경관의 정립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합니다. 이것에 관해 잘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성경을 등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을 많이 읽고, 큐티를 하고, 설교를 많이 듣는 것을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는 눈이 정확히 발달하지 않으면 성경을 100 독을 해도 소용없습니다. 설교를 수만 번 하거나 들어도 소용없습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성경의 단어와 문장을 읽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달달 외워도 소용없습니다. 오직 성경을 제대로 배우는 것에 집중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 꿈, 소원, 목적, 필요, 의도 등을 잘 파악해서 실천해야 합니다. 즉, 성경 안에서 제가 앞에서 강조한 그 복음을 만나야 하고, 그 복음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실행하고 있겠지만 성경에 충실하고 복음을 잘 설명해놓은 책들을 읽으면 성경을 보는 눈이 생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신앙과 교회와 관련된 수십, 수백 개의 책을 읽어봐야 지식만 늘어나고 비판적인 시각만 생길 뿐이지 주님을 따라 사는 데는 도움이 별로 안 됩니다.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수백 권의 책을 읽었지만 크게 와닿지 않았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다독보다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초점을 맞춘 책 단 몇 권만 택하여 책 하나당 적어도 다섯 번 이상(열 번이라도) 정독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어떤 지체는 책 하나를 14번 정독했는데, 그래도 잘 모르겠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 다음, 그 책들로 책 모임을 하며 하나씩 제대로 짚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제가 집필한 책들까지도 종종 읽고 또 읽곤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책들이므로 눈을 감고도 다 아는 내용이지만, 그 안에 그리스도와 복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옵니다. 무엇을 많이 아는 것보다 성경을 보는 눈이 발달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복음을 마스터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수라고 믿습니다.
3) 나의 필요(사람의 필요)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필요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위에서 제가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지만, ‘하나님의 필요’ 또는 ‘하나님의 목적’, 즉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것을 위해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임을 단 한 순간도 잊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람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위로하고, 문제들을 해결해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며 살아갈 때 부산물로 생길 수는 있지만, 그것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필요에 집중하도록 돕기 위해 그런 것들도 다루긴 다루어야 하겠지만,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는 튼튼한 지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려고 필요에 따라 그들의 삶에 개입할 뿐, 그리고 그들을 주 안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돌볼 뿐,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고 우리 각 사람이 주님의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교회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모든 지체는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을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 이것이 우리 모두의 삶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 곧 그분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부인하고, 제거하고, 포기하고, 떨쳐버리라고 한 것들을 도로 주워 담아서 해결하는 것에 교회가 힘을 빼면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은 요원합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프랭크 바이올라의 ‘인써전스’ 책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아주 쉽게 표현하자면, 예수님의 교회는 사람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육적 필요와 영적 필요를 둘 다 포함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육적 필요에 집중하는 신앙을 ‘기복 신앙’이라고 비하하지만, 인간의 ‘영적 필요’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시합니다. 나의 구원, 나의 구원의 확신, 오늘 죽어도 천국 가는 나, 나의 축복… 나의 섬김, 나의 교제, 나의 사역, 나의 교회, 나의 전도, 나의 선교… 전부 ‘나’ 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영적인 것이라 해도 우리는 나의 필요에 의해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창세 전 목적 곧 하나님의 필요에 삶의 모든 것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요, 집이요, 가족인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기 위해 모든 것을 해야지, 교회가 사람의 육적, 영적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기관으로 전락하면 곤란합니다. 제가 아는 많은 유기적 교회가 이런 인간의 필요에 집중하고 하나님의 필요를 등한시하다가 무너졌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제도권 교회와 다를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인간의 필요가 아닌, 하나님의 필요와 목적만을 철저하게 고집하기 바랍니다.
4) 외부의 도움, 즉 사역자들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가 하나로 존재하면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꿈인데,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이루느냐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잘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외부 사역자들이 처음 얼마 동안은 꼭 교회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세울 때 한 교회에서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때로는 1년 이상을 지체들과 함께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쳐주고, 삶으로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냥 함께 지낸 것이 아니라 날마다 모였다고 되어있습니다. 그 말은 가끔씩 모임을 갖는 오늘 우리에게 대입하면 적어도 3년에서 5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사역자들에 의해 기초가 든든히 다져졌기 때문에 1세기의 교회들은 많은 핍박과 문제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앞에서 언급한 공중 분해 된 교회들을 소환하자면, 그들 대부분이(아마 거의 전부가) 외부의 도움을 거절하고 자기들끼리 교회를 세워보려다가 거센 폭풍우를 만나 파선하게 된 것입니다. 총체적인 복음에 의해 오랫동안 교회로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끼리 신약 성경적인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선생님 없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대학 입시 준비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또는 강의실에서 수영 강습을 받은 사람들이 수영 강사 없이 수영장에 들어가 훈련을 하고 올림픽에 나가겠다는 것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수영에 관한 수백 권의 책을 읽고, 수백 개의 동영상을 보는 것보다 오랫동안 물 속에서 지내며 수영이 몸에 밴 전문가와 함께 하는 것이 수영을 터득하는 지름길이듯이, 교회 생활도 그런 베테랑들을 통해 겸손하게 배우고 훈련받고 실제로 살아봐야 합니다. 이것이 신약 성경에 나오는 초대 교회들이 시작되고 자라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모습입니다.
그런 사역자들의 도움에 의해 복음과 교회 생활이 점점 몸에 배어감에 따라 나중엔 그들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게 되고, 지체들의 역할이 늘어나게 되면서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각 지체가 다른 지체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개인이 아닌 머리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몸인 교회가 하나가 된 인격체)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에베소서 4:11-15)
이 말씀이 여러분의 모임에서 글자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만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이루어져 머리 예수님과 하나가 된 ‘온전한 사람’이 세워집니다. 여기서 “다”를 주목해야 합니다. 교회 지체 모두의 몫입니다. 목소리가 큰 누가 혼자 주도하지도 않고, 덩달이로 다른 지체에게 묻어가지도 않고 지체들 각자가 그리스도와 복음을 아는 데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전통적인 제도권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라는 말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것에 하나가 된다는 것은, 믿고 아는 것이 다르면 온전한 교회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지체들이 하나가 아닌, 제각각 이런저런 다양한 믿음을 주장하면서 공존하면 바울이 말하는 교회는 세워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같은 복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교회에 일꾼들을 주셔서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도록 돕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복음을 잘 알고 교회를 풍부하게 경험한 외부 사역자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도움을 구하는 겸손함이 여러분에게 꼭 있기를 바랍니다.
위의 네 가지 외에도 강조해야 할 사항이 많이 있지만, 일단 이것들만 제대로 알고 실천해도 머지않아 차원이 다른 교회 생활이 펼쳐지게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향한 저의 부탁입니다. 물론 많은 고민, 갈등, 눈물도 따라오겠지만, 이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버티고 견뎌내는 사람들은 그런 교회 생활을 누리게 될 날이 꼭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먼 훗날 제가 부탁한 이것이 왜 그리 중요한지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총체적인 복음은 여러분을 향해 여러분이 아래의 성경 본문의 내용 그대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존재라는 것을 진실로 믿고 온종일, 아니 평생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즉 교회를 예수님과 똑같이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입이 딱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내용입니다. 제가 ‘예수님짜리’ 라고 명명한 존재가 바로 교회요 그 안의 지체들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다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 “하늘에 동석한 자”, “영화롭게 된 자”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만이 참된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여기서 “복”이란 하나님이 교회를 좋게 말하신다는 의미.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게 말하는 존재는 예수님과 성령님 이외에는 없는데, 우리도 똑같이 좋게 말하신다는 뜻)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 1:3-6)
주님의 놀라운 평강이 늘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2021년 8월 29일, 역사적인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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