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주일 성수의 문제 (1)

 

***이 글은 미국 시카고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신문인 <크리스찬 저널>의 요청으로 2010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격주로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님짜리 교회 23

주일 성수의 문제(1)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 (5)>

 

때우는 신앙생활의 대표적인 예로 앞에서 지적했던 ‘주일 성수’야말로 유기적 교회가 되지 못하게 하는 크나큰 방해요소일 것입니다.

바로 앞에서 다뤘던 예배 장소의 문제 곧 교회 건물을 중요시하는 것과 예배 날짜를 중요시하는 주일 성수는 앞에서 인용했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개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1-24)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 당시의 유대교 제사와 이교 제사 모두를 부정하는 혁명적인 사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경험하게 될 참 예배의 기초를 말씀하신 것인데, 1세기의 사람들이 볼 때 신성한 장소와 신성한 날과는 무관했던 유일한 종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요즘 교인들이 주일에 관해 흔히 오해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구약의 안식일 개념이 신약에 와서 주일 개념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십계명에 있는 안식일을 주일과 동일시해서 이것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으므로, 주일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신앙의 척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상식을 벗어난 종교적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고, 또 교회 지도자들이 이것을 끊임 없이 주입시켜 죄의식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 성수를 건드렸다간 큰 코를 다치게 되므로 이것에 관한 논의조차 타부(taboo)시 되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이 문제를 다룰 수 밖에 없는 것은 이것이 신약성경을 근거로 한 유기적 교회를 이루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안식일)에 하면 안된다는 것의 예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물론 교파에 따라 교회에 따라 그 수위가 제각각입니다.

주일에는 식당이나 공원 같은데 가면 안되고, 등산이나 낚시하러 가면 안되고, 시험공부를 해서도 안되고, 정원의 잔디를 깎아도 안되고, 자동차를 운전해도 안되고, 운전은 해도 되지만 기름을 넣어서는 안되고… 등등 극단적인 주일 성수파부터,

주일 예배에 빠지고 여행 가는 것을 찜찜해 하고, 여행이나 출장 가서도 주일엔 꼭 그곳의 교회에 들러 예배를 드려야 하고, 교회가 없으면 가족이 함께 또는 혼자라도 경건하게 예배를 드려야 된다는 좀더 진보적인 주일 성수파까지 다양합니다.

또 요즘 시대에는 교회당에 가서 주일 예배에 참석한 후에는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때우는 주일 성수파가 대세일 것입니다. 어느 파에 속하건 관계 없이, 율법에서 해방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주일 성수라는 신종 율법이 등장한 것입니다.

한국에 있는 교회들은 이것이 더욱 심한데, 얼마전부터 실시되기 시작한 ‘주 5일 근무제’에 대비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며 책자를 발간하여 계몽하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토요일에 놀게 되면 멀리 여행을 떠날 가능성이 있어 교회 출석률이 떨어지는데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코메디입니다.

 

전에 남미의 어느 나라에 사는 한국 교포 학생이 일요일에 대학 입학 시험이 걸리자 시험 치르는 것을 포기했다 해서 주일 성수를 고수한 신앙의 귀감으로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

헐리웃 흥행 성공 영화 ‘Chariots of Fire(불의 전차)’의 실제 주인공 중 하나인 에릭 리델(Eric Liddell)의 이야기는 더 널리 알려진 주일 성수의 귀감으로써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바 있습니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영국 대표로 출전한 스코틀랜드 육상 선수인 에릭 리델은 100미터 예선이 일요일에 걸리자 안식일에는 뛸 수 없다고 포기했는데, 나중에 그의 동료 선수가 400미터를 그에게 양보해서 결국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습니다. 이것이 그 당시 유럽에서 화제가 되고 타협하지 않는 신앙의 모델로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도전을 주었습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은 개인적인 확신에 의해 위와 같은 선택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데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고, 신앙이 더 좋은 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벌을 받지 않는다고 강조하는데 있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그들에게 강박관념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야말로 월권이요 심각한 오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오류가 바로 안식일이 주일로 대체되었다는, 성경 그 어디에도 없는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대체되었는가?

 

구약성경에 나오는 십계명 중 하나로서의 안식일 개념에 관해서는 여기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구약의 계명을 포함한 모든 계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그 효력이 상실되었음을 다음 성경 말씀이 확인시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4-15)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신 후 탄생한 예수님의 몸인 교회는 이제 새 사람으로서 새로운 창조 세계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앞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문제는 구약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계명이 교회에서 주일을 지키는 것으로 대체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교의 안식일은 토요일, 정확히 말하면 금요일 해 떨어질 때부터 토요일 해 떨어지기 전까지이고, 주일은 일요일을 말하는데, 이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면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신약성경 전체에 이 둘이 관계 있다고 써있거나 암시한 그림자도 없습니다.

 

신약의 교회들은 안식일을 지킨 적이 없습니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거룩한 안식일로 지킨 예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안식일에 유대인 회당에 간 적은 있지만 이것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고 유대인들을 만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행 13:14 이하, 17:1 이하, 행 18:4).

성도들이 안식일 다음날인 일요일에 모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떡을 떼려고 모였다고 했지 안식일을 지키려 한 것은 아닙니다 (행 20:7). 아마 일요일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므로 그것을 기념하며 식탁 교제하러 모였던 것 같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개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대체되었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증명될 수 없습니다.

 

 

주일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므로 지켜야 하지 않는가?

 

신약성경에 주일이라는 낱말이 등장하는 것은 요한계시록 1:10에 “주의 날”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 유일합니다. 이것이 일요일을 지칭하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기 때문에 제칠안식교에서는 안식일인 토요일을 뜻한다고 주장합니다.

일요일을 주일로 부르게 된 것이 서기 343년에 사르디카 종교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이므로 그 전에는 공식적으로 주일이라고 부른 예가 없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1세기 말에 로마제국의 주인인 도미티안 황제를 예배하는 날로서의 “주의 날”과 대조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인 “주의 날” 곧 안식일인 토요일을 뜻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신약성경 어디에도 없는 ‘안식일 성수’를 우기기 위해 안간 힘을 쓰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보고 우긴다면 한국에서 요즈음 번성하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단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창세기 1:26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어머니를 가리킨다고 우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남성인 아버지와 여성인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자신의 형상을 따라 남자인 아담과 여자인 하와를 창조하셨다는 그럴 듯한 해석에 순진한 사람들이 잘 넘어갑니다.

우리 정통 개신교에 삼위일체의 개념을 증명하기 위해 창세기 1:26의 “우리”라는 표현을 갖다 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도 위의 접근과 비슷한 것입니다. 삼위일체 개념은 그런 식의 해석 없이도 신약성경에 면면히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가 주일 성수를 고수하기 위해서도 성경을 이런 식으로 갖다 사용하지는 않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10의 “주의 날”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인 일요일을 가리킨다 해도,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 꼭 예배를 해야 한다는 암시조차 신약성경에는 없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에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지 무슨 계명이나 교리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2:46에는 예루살렘교회가 “날마다” 모였다고 했는데, 이것이 우리도 매일 모여야 한다는 뜻입니까? 이것도 그때 상황 속에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함께 모이는 날을 교회가 자발적으로 택할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일요일(또는 다른 날)에 시간이 나서 그 날을 정해 모임을 가질 수는 있어도, 소위 어떤 날을 ‘성수’한다는 개념은 신약성경과는 거리가 먼 아주 이질적인 사상입니다.

이런 사상으로 교인들을 묶어놓으려 한다면 신약성경이 말하는 유기적 교회는 신기루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럼 구약의 안식일 개념은 신약성경에 아예 없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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