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에 아는 분의 부고를 들었었는데, 어제 또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두 분 다 불치의 병을 앓다가 생을 마감했는데, 요즘 시대에는 별로 늙었다고 여겨지지 않는 환갑을 금년에 맞게 될 사람들입니다.
저의 고등학교 동기생들이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나기 시작해서 지난 몇 년 동안은 점점 부고가 자주 날아오더니 그 수가 벌써 50명에 이르러서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부쩍 잦았었는데, 열흘 간격으로 저보다 한 살 적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런 소식을 들으니 죽음에 대해 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죽는 것 자체는 그리 두렵지 않습니다.
나의 인생은 하나님께 속하였으므로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될 것이고, 또 지금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따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넓어진 교회 안에서 이미 영생을 누리고 있으니 이것이 육체의 죽음 후에도 계속될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제 안에 있음을 알기에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고백을 저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 1:20)
그래서 제가 언제 죽더라도 그것은 상관 없지만, 죽기 전에 불치의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서 주위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고통을 주는 일이 벌어질까봐 염려가 됩니다.
물론 이것까지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살아야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제가 고통이 극심할 때 가족과 교회 지체들과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부담을 주거나 섬김을 요구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만일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고통스러울지라도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고 혼자 잘 감당하게 되도록, 그리고 그런 경우엔 속히 이 세상을 떠나게 해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곤 합니다.
저는 중, 고등학교 시절 근 3년 동안 거의 매일 한 시간 이상 아버지를 안마해야 했습니다.
평생을 바쳐 이룬 사업을 하루 아침에 권력가에게 빼앗긴 후 억울해서 실의에 빠진 아버지가 매일같이 술에 만취되어 집에 돌아와 안마를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버지를 사랑하고 안스러워 하는 마음도 있기는 했지만 매일 반복되는 이것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고, 소위 ‘정신적 트라우마(mental trauma)’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안마하는 내내 “나는 앞으로 아무리 몸이 쑤시고 아파도 절대로 누구에게든지 안마를 요구하지는 않겠다” 라며 끊임없이 되뇌이고 또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파서 몸이 결리고 쑤셔도 아내나 자식들이나 그 누구에게도 안마를 부탁한 적이 없고, 진심으로 해준다고 해도 거절해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저의 결심이 이 정도까지는 해 낼 수 있겠지만, 불치의 병에 의해 도를 넘는 고통이 왔을 때도 과연 통할 수 있을지, 나 혼자 감당하게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게 할지 심히 걱정됩니다.
나 자신이야 그러다가 가면 그만이지만, 남아 있을 사람들에게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복음의 파워가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전에 한국의 큰 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꽤 이름 있는 기독교 지도자가 그 병원의 단골인데, 그가 입원할 때면 간호사들이 바짝 긴장을 하고 그의 병실에 서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왜냐하면, 간호사들을 권위적으로 대하고 또 신경질과 짜증을 내고, 이런 저런 요구사항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고 “나는 저러면 안 될 텐데…” 라는 말이 속에서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깨달은 것은, 죽기를 기다리며 고통 속에 있을 때 남을 괴롭히지 않고 잘 버티는 것이 그냥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평소에 복음의 능력으로 단련된 삶이 몸에 배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따르는 유기적인 교회의 지체로 살아가며 훈련이 되어, 일상생활의 아주 작은 일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내 주장을 펴거나 요구를 하거나 신경질과 짜증을 내거나 불만을 토로하거나 하는 일이 없어져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오히려 타인을 배려하고, 손해를 보고, 져주고, 참고 견디는 것이 오랫동안 숙달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큰 일에도 변함없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고, 신약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배들이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살며 본을 보였던 그런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의 삶에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당할 때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몸에 배어 있던 성숙한 모습이 나와서 그리스도의 이름에 누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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