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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

열흘 여행기 (25): 하루에 버가모에서 빌라델비아까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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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인 1월 25일(월)은 옛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네 교회가 있던 곳을 하루에 다 둘러보아야 하므로, 아침 일찍 이즈미르(서머나, Smyrna)의 숙소를 출발하여 북쪽으로 90 킬로미터 떨어진 버가모(Pergamum)부터 시작해서, 남동쪽으로 두아디라(Thyatira), 사데(Sardis), 빌라델비아(Philadelphia)를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시간에 쫓기며 돌아다니다 보니 대충 훑어본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있던 곳을 다 방문했기에 좋았습니다.

두번 다시 이 먼 데까지 온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에 소위 “점 찍는 것”으로 만족한 것입니다.

 

이 네 교회는 서머나교회와 함께 성경에서 요한계시록에 딱 한번 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울 때 훈련한 제자들이 흩어져 세운 교회들로서 소아시아의 다른 교회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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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세기에 390 미터 산 정상에 건설된 버가모 왕국의 유적 아크로폴리스(Acropo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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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의 상상도

 

버가모는 고대 도시로서 알렉산더 대왕의 휘하 장군인 리시마쿠스가 다스릴 때부터인 BC 3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여 찬란한 버가모 왕국시대를 거쳐 로마제국에 접수된 이후 에베소 이전에 소아시아의 행정 수도였을 정도로 큰 역할을 감당한 도시였습니다.

390 미터 위 산 정상에 세워진 아크로폴리스(Acropolis)와 산 아래의 도시를 합쳐 한때 인구가 20만 명에 육박했던 거대한 도시였는데, 산 아래 도시의 유적은 거의 발굴되지 않았지만 산 정상의 아크로폴리스는 그대로 남아 있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엔 옛 왕궁터와 각종 신전과 제단들, 그리고 연극장 등이 있는데, 요한계시록 2:13의 “사탄의 권좌”가 이곳의 신전과 제단들을 가리킨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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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아크로폴리스의 제우스 제단 터. 제단은 독일 사람들이 뜯어서 독일로 가져가고 터만 남아있음.

우: 아크로폴리스에서 뜯어다가 그대로 옮겨놓은 베를린 박물관의 제우스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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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명을 수용했던 아크로폴리스의 연극장

로마제국에서 가장 가파른 곳에 세워진 연극장이었음

 

버가모는 양의 가죽으로 만든 종이인 양피지(parchment)의 본산지로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큰 세계 제 2의 도서관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인쇄술도 모르던 2천 년 전에 손으로 양피지에 쓴 두루마리 책이 무려 20만 권이나 비치된 도서관이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놀라운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타서 상심한 클레오파트라에게 안토니우스가 이 도서관을 몽땅 결혼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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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 20만권을 보유했던 세계 제 2의 버가모 도서관 유적

 

버가모는 또한 세계 최대의 종합병원인 아스클레피온(Asclepion)이 있던 곳입니다.

로마제국 각지에서 많은 환자가 아스클레피온으로 몰려왔는데, 병원의 치료율을 높이기 위해 가능성이 없는 중환자들은 받지 않고 히에라볼리로 보내서 거기서 온천욕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술까지 하는 종합병원이긴 하지만 심리치료가 주 종목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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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에 발굴된, 정문에서 아스클레피온으로 들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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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위에 뚫린 구멍에서 “너는 나을 것이다” 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환자들이 걸어가면서 명상하는 터널

우: 터널 위로 뚫린 구멍의 윗부분. 의사들이 심리요법으로 속삭이는 소리를 내는 곳.

 

버가모교회는 성경에서 요한계시록 2장에만 딱 한번 등장하는데, 외부의 핍박은 잘 견뎌냈지만 내부적으로는 거짓 선지자를 용납하던 교회였습니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계 2:13-15)

 

“나를 믿는 믿음”을 제대로 번역하면 “나의 믿음(my faith)”, 즉 갈라디아서 2:20의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그리스도의 믿음)” 입니다.

버가모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에 핍박이 닥쳐서 순교자가 생겨도 그리스도를 저버리지 않고 견뎌냈습니다.

“내 믿음”(믿으려고 노력하는 수준)은 환경이 좋을 때는 헤헤거리고 나쁠 때는 시험 들고 상처받기를 반복하지만,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초지일관 변함없는데, 버가모교회에는 이런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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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산 아래의 버가모

 

하지만 버가모교회는 하나님의 선지자임에도 욕심이 가득했던 옛 발람처럼 영적인 체하면서 세상과 짝하는 사람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방치한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주장을 “발람의 교훈” 또는 “니골라당의 교훈” 이라고 했는데, 신앙이 좋은 듯 위장하며 세상의 원리로 교묘한 교리를 세워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는 자들이 교회 안에서 세력을 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 2:16) 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런 버가모교회가 모임을 가졌던 가정집이 어디쯤 있었을지, 안디바가 순교한 곳이 어디였을지를 생각하면서, 시간에 쫓겨 서둘러 버가모를 떠나 남동쪽으로 65 킬로미터 떨어진 두아디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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