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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7

더러운 안전을 택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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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약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멕시코의 소도시 시장으로 당선된 여성 시장이 취임한 다음 날 자택에 침입한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는데, 이런 사건은 멕시코에서는 흔히 발생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멕시코에서 암살 당한 정부 고위 관리와 시장이 100명이 훨씬 넘고 언론인도 100명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거의 전부가 카르텔(cartel, 마약 조직)의 소행입니다.

 

멕시코의 카르텔들은 수백, 수천의 무장 대원들과 탱크와 대포로 무장할 정도의 막강한 화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들의 횡포에 시달려 온 멕시코 국민들이 2006년 선거에서 지난 72년 동안 카르텔을 눈감아주며 부패가 극에 달한 제도혁명당 정부 대신, 마약 조직 퇴치를 들고 나온 국민행동당을 택하면서 범죄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로, 6년 동안 국민행동당 정부의 주도 하에 카르텔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치렀을 때 죽은 사람만 5만 명 가까이 되고, 압수한 무기와 마약이 각각 10만 정과 100억 달러어치나 된다고 하니 멕시코의 마약 조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죽은 수많은 사람 중엔 카르텔 조직원들 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정부 고위 관리와 언론인들, 그리고 군인과 경찰 및 민간인들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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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6년 동안 마약 조직들을 근절하기 위한 이런 새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희생자가 늘어가자 멕시코 국민들은 불안한 나머지 2012년 선거에서 다시 옛 제도혁명당을 택해서 범죄와의 전쟁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것을 “피비린내에 질린 국민들이 정의 대신 ‘더러운 안전’을 택한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대가 지불이 크다고 해서 그른 줄 알면서도 안전한 쪽을 택한 멕시코 국민들의 비겁함을 ‘더러운 안전’ 이라는 말로 비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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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더러운 안전’ 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곧 이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거리가 먼 전통적인 제도권 기독교가 어째서 계속 막강하게 유지되는지를 말해주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따르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에 속하면 너무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므로 자신들의 필요와 유익을 위해 이렇게 ‘더러운 안전’을 택하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 때문에, 제도권 기독교는 지난 2천 년 동안 이름만 달리하면서 대세를 차지해왔고, 앞으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계속 유지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경륜엔 관심 없고 자신들의 구원의 확신과 복과 천국행 티켓과 은사와 목회와 사역… 등에 사로잡혀 있는 신앙(노골적인 기복신앙과 은근한 기복신앙)이 절대로 근절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목적을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지체로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인간이 만든 제도에 의해 운영되는 교회 조직 속에서 ‘더러운 안전’과 타협하는 종교생활을 할 것이냐,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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