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T. 오스틴 스팍스(1888 – 1971)가 쓴 article입니다. 스팍스는 20세기에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는 유기적 교회를 처음으로 소개했다고 알려진 영국의 선구적인 사역자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여기에서 바울이 세상에 대하여 독특하게 말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아주 포괄적인 말이고 아주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이것의 본질로 곧바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의 문맥을 살펴보면서 그 본질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갈 6:13)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이렇게 말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결신자를 만들었는가 보시라!
우리가 주도하는 운동이 얼마나 성공적인가를 보시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큰 세력을 형성했는가를 보시라!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이 주신 이 모든 축복의 증거를 보시라!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그 원리와 본질에 있어 세상적이다.
그리고 세상 자체이다.
그는 이것에 반하는 자신의 분명한 영적 입장을 세워놓았습니다:
내가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가?
내가 사람을 즐겁게 하려 하는가?
아니다.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런 것들은 모두 나에겐 중요하지 않다.
내가 비중을 두는 것은 내가 주도하는 운동이 성공적이냐 아니냐가 아니고,
나를 따르는 사람이 많으냐 적으냐가 아니고,
겉으로 나타나는 성공적인 많은 결과물도 아니다.
내가 비중을 두는 것은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그리스도의 분량이다.
갈라디아서 전체의 주제가 편지의 맨 마지막 부분에 가서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재차 강조되어 있음이 참 멋집니다.
우리는 그 주제가 요약된 구절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19)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나의 관심사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비중을 두는 것이다.
규모가 큰것도 아니고,
대단한 것도 아니고,
인지도가 있느냐도 아니고,
성공적인 사역 또는 성공적인 운동이라고 말해주는 세상과 짝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죽었다.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혔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이고, 너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분량이다.
세상이 어떻게 기어들어오는지 보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겉만 보고,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세상적이 될 수 있는지가 보입니까?
즉, 우리의 인지도에대해, 우리의 성공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말하는지, 무엇을 말할지, 어떤 자세를 취할지 표면적으로만 파악하고…
이것이 다 세상이고, 세상의 본질이고, 세상이 말하는 방식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것들은 세상의 눈으로 본 가치들이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눈으로 본 가치들이 아닙니다.
새 창조 세계에서는, 십자가의 저편 곧 부활 쪽에서 보면 오직 한 가지만이 가치를 결정합니다.
즉, 그것은 모든 것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분량입니다.
이것 말고 다른 가치는 없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규모가 클지라도, 아무리 인지도가 높을지라도, 사람들이 아무리 그것에 대해 좋게 말할지라도, 부활 쪽에서 보면 조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그리스도가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있는 당신과 나는 다른 모든 요소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아, 당신은 인기가 없을 수도 있고, 성과가 형편 없을 수도 있고, 박수 받지 못할 수도 있고, 세상이 당신을 멸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겐 그리스도의 무언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십자가를 위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멸시받는 것보다 더 감당하기 힘든 것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거부 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이 우리의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표준(resurrection standard)입니다.
이제 이것이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
(갈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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