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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

호기심에서 VIP로 (8)

 

 

 burial of jesus

 

아래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최 측근 제자들까지도 숨어서 문 걸어 잠그고 있을 때 과감하게 대놓고 예수님의 장례를 치렀다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 아님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엔 호기심에서 예수님을 따랐지만 점점 예수님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긴 한데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 왕국(“하나님의 나라”)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나라를 통치하는 왕이심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왕은 이 세상 나라의 왕들과는 전혀 다른 원리로 통치한다는 것을 오랫동안 예수님을 지켜보고 또 그분의 말씀을 종합해보면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감을 잡아온 그 통치 원리는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들의 눈 앞에 드러난 것입니다.

 

이 죽음에 대해 예수님은 이미 전부터 계속 암시하셨고, 공관복음에 보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실수록 이것을 드러내놓고 끊임없이 강조하셨습니다.

 

공관복음까지 인용하면 너무 많아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몇 구절만 아래에 인용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4 – 15)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 8:21 – 23)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 8:28)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요 10:14 –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요 12:7 –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3 – 24)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요 12:31 – 32)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3)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이 죽고 떠나실 것을 수차에 걸쳐 암시하셨습니다.

산삼, 웅담, 불로초 등 온갖 보약으로 몸 보신하고, 쥐새끼 하나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겹겹이 성으로 둘러싸인 왕궁에서 철통같은 경호를 받으며 오래 오래 권세를 누리고자 하는 이 세상의 왕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왕의 모습입니다.

이래야만 진정한 메시아 왕국인 하나님의 나라가 그 실체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이길래 그런 역설적인 원리가 성립됩니까?

예수님과 총독 빌라도의 대화에 그 답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요 18:36 – 37)

 

빌라도와 예수님 1

 

예수님이 왕이신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이 세상의 원리에 의해 통치되지 않고, 그 왕이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도 건재하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의 백성은 이 나라의 왕 곧 “진리”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요 14:6).

 

따라서 이 나라는 저 어딘가에 있는 장소 또는 이 땅에서 통치제도를 세워 다스리는 국가나 집단이 아닙니다.

이 나라는 이 땅에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진리이신 예수님과 하나를 이루는 차원이 다른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시작된 새로운 나라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 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를 온 세상에 드러내는 존재를  ‘에클레시아(교회)’ 라고 합니다.

곧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땅에서,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함께 하나를 이루며 “영생”을 누리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저자가 오해의 소지가 많은 “하나님의 나라”  라는 표현 대신 “생명”과 “영생” 이라는 단어만 줄기차게 사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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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이 모든 것을 다 깨닫지는 못했겠지만, 저간의 예수님 말씀을  토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들이 기대하던 메시아 왕국이 아니고, 뭔가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에 크게 실망하고 앞길이 캄캄했던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오히려 예수님의 가족들과 제자들 모두  다 기피하는 일을 실천에 옮겨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고, 그것도 왕 수준의 예로 장사한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 돌아올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큰 위험 부담이 따르는 행동입니다.

나무에 달려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중죄인(신명기의 율법에 의하면)에게 그런 호의를 베푼 것 때문에 나중에 공회에서 심문을 받을 각오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도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공회원들이 볼 때 참람하기 짝이 없는 메시아 왕을 사칭한 사기꾼 범죄자인데 죽은 후에 왕으로 추대하는 듯한 행동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나름 뭔가 확신이 있었기에 그런 소신있는 행동을 한 것 같습니다.

그들을 보면 일본의 7선 국회의원이었던 도이 류이치라는 사람이 연상됩니다.

 

도이 류이치는 몇 년전 삼일절에 한국 국회의원 몇 명과 함께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선언문 발표에 참가했다가 일본 일부 매체와 우익세력의 빗발치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선언문의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지 못한 채 서명을 했다고 해명을 했지만 결국 일본 민주당 원내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8선 출마까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도이 류이치

그는 중의원 7선까지 하면서 정치 인생 내내 일본의 반성과 한일 양국의 진정한 화해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는데 그것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간부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 동대문초등학교를 다니며 일본인 교사들과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말을 쓰는 학생을 구타하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조선인 학생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는 훗날 그리스도인이 되어 기독교적 세계관과 양심을 소유하게 되면서 지난 날 일본이 한국에 가한 만행이 용납되지 않아 자책감이 들고 괴로웠습니다.

그러다가 한국과 일본의 기독교 신자 국회의원 몇 명과 더불어 한일 기독의원 연맹을 결성해서 매년 삼일절과 광복절에 한국에 와서 함께 예배하며 지난 날의 일본의 만행과 과오를 참회했습니다.

 

이것이 결국 그로 하여금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중지하라’는 한일의원 공동성명문에 서명을 하게 했고, 종국엔 그가 쌓아온 모든 것을 잃게 했습니다.

도이 류이치는 일본으로 자기를 찾아온 한국의 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오히려 홀가분합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내 양심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네요. 나라고 어찌 일본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폐쇄적 민족주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되지요.  예수님도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였지만 인류의 화해를 위해서 고난을 선택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작게나마 실천했을 뿐입니다.”

“나는 독도 발언으로 모든 것을 잃은 정치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슴이 아프지만 결코 후회하진 않습니다. 부디 나의아픔과 상처로 한일관계가 더 좋아지고 진정한 화해와 평화의 길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볼 때 제법 양심 있고 소신 있는 일본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이것 이상 더 파격적으로 일본을 향해 용감하게 외치라고 하면 무리이겠지요.

이것만으로도 대단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에 관해 확실히 깨달았다고 성경에 속 시원히 기록되어 있으면 좋겠지만, 그 정도의 소신 있는 행동의 기록을 통해서라도 그들의 마음 상태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이 류이치의 소학교 때의 경험이 나중에 절대 다수의 일본인들 중에 돋보이는 소신 있는 행동으로 연결되었듯이,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의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도 나중에 예수님의 죽음 앞에 모두 다 문 걸어잠그고 숨어 있는 상황에서 소신 있게 장례를 치르게 했습니다.

 

또한 삭개오의 호기심과 나면서 맹인된 사람의 호기심도 수많은 군중 속에서 돋보이는, 예수님을 향한 소신 있는 고백과 행동으로 나타났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VIP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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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복음이 희석된 현실 속에서 창세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는 온전한 복음을 알고 과감하게 이 세상과 구별된 길을 가는 진정한 하나님의 VIP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제도권 기독교가 혼탁하게 만든 교회를 뒤로하며 소신 있게 신약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 영생, 교회를 누리고 살아가는 진정한 하나님의 VIP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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