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교재 [생명에서 생명으로]를 공부하는 분이 제 11단원을 마친 후 하나님께 드린 고백의 기도를 여기에 퍼왔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
바닥을 치고 절망의 늪에 주저앉은 자들에게도 끝까지 만회할 기회를 주시고 배려하시는 주님!
자기 사람들을 다시 소생시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는 아니라’고 부인했던 그 숯불의 현장…
그러나 지금은 떡과 생선이 구워져 있는 회복과 치유의 숯불의 자리임을 감사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일어나 먹으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로뎀나무에서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장차 게바라 하리라.’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 가오리이까.’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그 누구보다 주님을 더 사랑한다고 자부했던 베드로…
그러나 그 상태로는 하나님께서 꼭 하시고 싶은 일은 할 수 없었습니다.
과신했던 자신의 충성심이 철저히 무너져 예수님 앞에서 주제파악이 되어지기까지는…
가룟 유다의 속 마음은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가슴 아프게도 교회로 살며 주제파악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스스로 뉘우쳐…’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스스로 예수님을 팔아 넘기고, 스스로 자책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교회없는 개인이 얼마나 위험하고 마귀의 밥이 될 수 있는지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장차 게바가 될 것을 아셨지만, 요한의 아들 시몬이심도 알고 계시니 감사합니다.
회복을 통한 사명의 자리에서 조차 끊임없이 따라 다니는 비교의식…
쟤는요?
왜 나만 이 고생입니까?
왜 우리 집은…?
하필이면 내 직장은…?
왜.. 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고통스런 과정을 지날지라도 그 자리가 사명의 자리임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소서.
교회 생활 가운데 시시로 주제 파악하며 지체로 살게 하소서.
순간 순간 부활하신 주님을 잃어 버리지 않게 하소서.
끝까지 주님 따라가게 하소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예수님의 양, 예수님의 교회임을 잠시도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신부.
아름다운 보석들.
벽옥, 남보석, 옥수,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수정…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똑같이 여기시는 예수님짜리.
다시금 찬송하리로다 외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모셔놓고 둘러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세상이 알 수 없는 우리의 비밀
교회와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
들어도 들어도 또 듣고 싶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끝이 없는 이야기 속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은혜와 진리를 충만하게 경험하며,
우리가 그런 영광 속에 있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소서.
주님을 더욱 알게 하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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