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받은 목사의 딸이 본 아버지
얼마전 <목사의 딸> 이라는 책이 출판되어 한국 교회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 사는 저는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기독교 뉴스에 나온 기사나 서평을 통해 그 내용을 대충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고 박윤선 목사의 딸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쓴 책이라고 하는데, 저는 박윤선 목사를 잘 모르지만 그는 한국교회에서 20세기 한국 보수 신학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고신대와 총신대 그리고 합신대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고, 1979년에는 세계 최초로 신·구약 성경 전권을 주석했고, 나중엔 교권주의자들의 횡포를 피해 설립한 합신대학교의 초대 원장을 지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책을 펴낸 경험이 있어 기독교 출판계를 좀 아는 저로서 이 <목사의 딸> 이라는 책이 나온지 3개월만에 벌써 1만부 이상 팔려 6쇄를 준비한다는 사실은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어떤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출판되는 기독교 서적 거의 대부분이 1쇄에서 끝나고 마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 책에 대한 반응은 정말 대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한국 교회가 거목으로 추앙하는 박윤선 목사의 딸이 아버지를 정면으로 비판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떠난지 30년 가까이 된 박윤선 목사에 대해, 그것도 한국 기독교에 있어 20세기 보수 신학의 대부로 꼽히는 거장을 다른 사람도 아닌 70세가 훨씬 넘은 그의 친 딸이 이제와서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그녀는 그것을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고 합니다.
“…최근에서야 나는 자유함을 만끽하고 있다. 정죄의 틀에서, 죄 짓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며 사랑받지 못한 상처에서, 그리고 사랑하지 못해 죄책감에 눌려 살던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을 말한다.’ (엡 4:15)”
이 책에서 저자는 박윤선 목사의 신학적 문제점과 이중적인 삶을 지적한다고 합니다.
한국교회에 팽배한 영육이원론, 샤머니즘적 기복주의와 율법주의의 뿌리를 놓은 사람이 다름아닌 박윤선 목사라는 주장입니다.
박윤선 목사가 네덜란드 유학 중에 보낸 편지에 ‘네덜란드가 하나님을 잘 믿은 국가였기 때문에 잘 사는 나라이며 선진국이다’ 라고 했다는 것을 보면 그의 기복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서 잘 사는 선진국이라고 믿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무식한 사상입니다.
그럼 온갖 우상과 귀신으로 가득하고 기독교 신자가 극소수인 일본은 어째서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단 말입니까?
그가 가졌던 율법신앙의 단면은 다음과 같은 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던 딸이 여름방학이 되어 부산의 집에 갔을 때 주일이 되어, 아버지가 옮겨서 시무하는 교회가 아닌, 서울에 올라가기 전까지 다녔던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오랜만에 친구들과도 인사를 나누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때 박윤선 목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의 예배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친구를 만나는 것이냐? 그렇다면 지금 너의 행동은 주일을 범하는 것이다.”
이에 딸은,
“물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게 목적인데, 이왕이면 친구와 같이 예배를 드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버스를 타는 것도 아니고 걸어서 가는 것이니 주일을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는 두 시간 거리를 걸어서 예배에 참석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아버지 말씀을 어긴 게 어찌나 불편하던지 후회를 했습니다.
그게 난생 처음 아버지의 말씀을 불순종한 것이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새 어머니가 대신 전하는 아버지 말씀은,
“네가 네 고집대로 주일을 범하였으니 앞으로 네가 유학을 가든, 결혼을 하든, 어떤 협조도 하지 않겠다. 그리 알아라” 였다고 합니다.
제도권 교회의 비성경적인 주일성수 사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무엇보다도 박윤선 목사의 이중적인 삶을 드러내는 가슴 아픈 사실은 책의 246쪽에 있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아버지의 독선적인 성품으로 제일 많이 고통당한 건 가장 가까이 있던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자녀들이 보는 데서 거의 상습적으로 어머니를 구타했다.
이는 자녀들에게 무관심한 것보다 더 치명적인 상처가 되었다.
그런 아버지가 밖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그야말로 함부로 대할 수도 없는 거룩한 어른으로 숭상받던 상황은 오빠들과 언니를 혼돈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그들의 인생을 비틀거리며 살아가게 만들었다.”
박윤선 목사도 사람이기에 완벽할 수 없고 실수를 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딸에게 비친 그의 모습에서 반쪽짜리 복음이 지배하는 제도권 기독교의 치명적인 한계를 보는 듯 하여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 자신도 이전에 주님께 헌신하며 사역에 올인하여 겉으로는 박수도 받고 존경도 받았지만 이중적인 저의 삶에 회의를 느끼며 방황한 적이 있기 때문에 박윤선 목사의 자녀들이 겪었을 혼란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박윤선 목사가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쓰임받는 것과 그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아야 하는데, 제도권 기독교 안의 수많은 사역자가 쓰임받는 것이 대단한 줄 알고 아직도 하나님의 목적에 관심이 없이 사역에 집착하며 평생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하지만,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필요하면 무엇이든지 다 쓰십니다.
물도 쓰시고, 바람도 쓰시고, 돌도 쓰시고, 강도 쓰시고, 바다도 쓰시고, 나무도 쓰시고, 짐승도 쓰시고, 물고기도 쓰시고, 새도 쓰시고, 흙도 쓰시고, 침도 쓰시고,…
바로도 쓰시고, 불순종하는 사울도 쓰시고, 발람도 쓰시고, 삼손도 쓰시고, 가룟 유다도 쓰시고,… 심지어는 마귀도 쓰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나도 쓰십니다.
쓰임받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합니까?
따라서 쓰임받는 것 자체는 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쓰임받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진정 하나님의 창세 전 목적, 즉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일인 신약성경이 말하는 복음에 충실하여 교회의 올바른 지체로 살아감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이루어지느냐 아니냐입니다.
그런 교회의 지체로 사는 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지체들에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중적인 삶이 설 땅이 없는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가 올바른 복음을 알았었다면 한국 기독교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의 자녀들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를 상상해봅니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복음도, 교회도 알지 못하고, 지체로 살아본 경험도 없이 사역하고 싶어 하는 것은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는 은근한 기복신앙의 발로임을 알아야 합니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