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주위에 어려운 일을 당하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불현듯 미국 사람들이 주고받는 다음과 같은 덕담이 떠올랐습니다.
“May the saddest day of your future be no worse than the happiest day of your past!”
또는
“May the happiest day of your past be the saddest day of your future!”
“이전에 당신의 가장 행복했던 날이 미래에는 당신의 가장 슬픈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즉,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했던 가장 행복했던 순간마저 제일 슬픈 일이라고 보일 정도로 앞으로는 행복하기 그지없는 일들만 벌어지기를 원한다는 뜻을 가진 아일랜드의 격언입니다.
하지만 이런 덕담은 상대방의 기분은 좋게 해줄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사항에 불과할 것입니다.
인생살이라는 것이 그렇게 되도록 우리를 그리 호락호락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알 수 없는 지뢰밭처럼 우리의 미래에 사방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이런 덕담 정도가 아닌, 훨씬 차원 높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6-17)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13)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공동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6-17)
눈 앞에 보이는 환경과 따로 놀 수 있게 해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진실을 성경은 이렇게 곳곳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진실이 이론이 아니고 실제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참된 교회생활을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예수 그리스도 안의 진리는 하나님의 목적, 즉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일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노골적인 기복신앙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꿈도 꿀 수 없지만, 주님을 믿고 주님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결국 나의 필요에 민감한 우리의 은근한 기복신앙으로도 경험할 수 없는 차원이겠지요.
위의 구절 중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는 부분만 따로 떼어 액자에 담아 걸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종종 그 뜻을 오해하는 기복신앙의 발로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바로 앞에서 말한 바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과 함께 있기만 하면 된다는, 굶든 배부르든, 있든 없든, 망하든 흥하든, 어떤 경우든 모든 상황에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말하는 것이지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긍정적이고 형통하게 된다는 것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영적, 육적 필요를 위해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고 헌신을 하고 사역을 하는, 교회를 통해서 뭘 하려거나 도움을 받으려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삶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필요에만 집중하고 살던 바울과 같은 사람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라고 인정하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회생활 할 때만 이 진리가 우리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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