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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7

영생을 맛보는가, 누리는가? (1)

 

 

 20141005_141032

 

저는 지난 달 볼리비아에 가서, 그리고 지난 주말 전주에 가서도 “영생”에 관해 강조했습니다.

지난 금요일 첫날 첫 시간부터 이것을 주제로 세미나를 인도하기 시작했는데 세미나 첫날 밤 서울에서 온 형제가 부친상을 당해 일찍 떠나야 했습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서울에 가서 조문을 하고 난 다음 날 저는 또 다른 부고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한 형제와의 식사 자리에서 그 형제의 은사가 방금 전에 임종했다는 소식을 연달아 들었을 때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며칠 사이에 세 사람이 세상을 떠난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미국을 떠나기 전날 짐을 싸면서 새삼스럽게 아내에게 이번 여행엔 정장을 챙겨갈까 한다고 말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스무번 가까이 한국 방문을 했을 때 한번도 그런 적이 없던 터라 아내는 의아해서 갑자기 왜 그러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내에게 “왠지 이번 방문시엔 조문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라고 대답했는데 그대로 되어서 저도 놀라버렸습니다.

이건 저에게 무슨 예지력이나 신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느낌이 그랬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 우리는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다른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러 장례식에 가다가 죽은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의 친척 중에도 부친의 임종 소식을 듣고 달려가 시신이 놓여있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자리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죽음이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비행기 탈 때마다 항상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마지막이 크게 두렵지 않은데 그 이유는 물론 제가 교회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중에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는데, 이전의 찬송집들에는 그 노래의 원래 후렴 시작 부분이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생을 ‘맛보며’ 라는 가사가 신약성경과 맞지 않기 때문에 늘 “누리며”로 바꿔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의 삶은 우리가 미국의 Costco나 한국의 이마트 같은 곳의 음식 시식 코너에 가서 이런 저런 음식을 맛보는 그런 차원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식

 

영생은 음식을 맛보듯 하는 삶이 아니라 푸짐한 식사로 음식을 마음껏 누리듯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며 사는 차원을 뜻합니다.

흔히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은 미래에 저 세상에 가서의 행복한 삶을 미리 조금 맛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신약성경은 꼭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맛본다는 표현이 비성경적인 것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최신 한국 찬송가에는 “영생을 누리며 주 안에 살리라…” 라고 올바로 표기되어 있어 고무적입니다.

 

성경은 “영생”에 관해 분명하게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특히 요한복음과 요한 일서엔 “영생”이라는 말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4 – 16)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3:35 – 3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9 -40)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요 6:47 – 51)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27 –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 – 2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요 12:24 – 25)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2 – 3)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요일 1:1 – 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일 5:11 – 13)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요일 5:20)

 

위의 구절들은 다 우리가 잘 알고 달달 외우다시피 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위의 구절들이 말하는 “영생”을 제대로 이해하고 경험하고 누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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