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01

요한복음 14장에 관한 오해 (1)

 


john-14-2-heaven-wallpaper-1024x580물음표 (1)

 

최근에 교회 지체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다가 다시 요한복음 14장 말씀을 살펴봤는데, 성경에서 이 본문처럼 오해받는 것도 드물 정도로 그리스도인들이 잘 못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저도 이전에 그랬지만 14:2-3을 14:4 이하의 내용과 따로 분리해서 자신의 구미에 맞게 읽는 버릇이 그런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이 장례식의 본문으로 애용되곤 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 내용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저 어딘가에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이 있는데 그곳은 우리가 죽은 후에 가서 영원히 살게될 장소이고, 예수님께서 먼저 가셔서 그 장소를 준비하신 후에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재림하셔서) 우리를 그곳으로 영접하신다.

 

흔히 요한복음 14:2-3을 죽은 후에 갈 천국이라는 장소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얘기라고 믿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라고 하시니까 저 멀리에 있는 어떤 장소에 큰 집이 있고 그 안에 수많은 방이 있는 줄로 생각합니다.

또 “내가 … 가노니…  내가 다시 와서…” 라고 하시니까 무턱대고 이것이 ‘재림’을 뜻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후 당연히 천국에 갈 것이고 또 예수님께서 언젠가는 꼭 재림하시겠지만, 여기서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창세 전 목적과 관련있는 말씀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요한복음 14장 전체의 문맥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우선 지금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요 13:1).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공중 앞에서의 사역을 12장에서 모두 마치신 후에 제자들만 따로 모아놓고 하신 말씀인 13장부터 17장 안에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 가노니…  내가 다시 와서… 너희도 있게 하리라” 라는 말씀은 그 제자들에게 “내가 갔다가 너희 앞에 다시 나타나서 무언가를 하겠다” 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눈 앞에서 사라지셨다가(십자가의 죽음) 그들 앞에 사흘 만에 다시 오실 것(부활)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재림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 뭔가를 해주시겠다고 하신 것을 볼 때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후의 천국에 관한 얘기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시기를, 부활하신 후에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나 있는 곳”은 다름아닌 바로 앞에서 말씀하신 ‘아버지집의 거할 곳’ 입니다.

“나 있는 곳”, “거할 곳” 이라고 하니까 금방 어떤 장소를 떠올리기가 쉽겠지만, 이것은 공간의 개념이 아니고 관계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14:3의 “내게로”와 14:6의 “내가”, “아버지께로” 라는 표현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제자들의 공동체(그리고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모든 믿는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이 땅에서, 그리고 영원토록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가질 생명의 교제를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아래의 말씀이 이것을 더욱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줍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아있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18-20)

 

조금 후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공동체(교회)를 하나가 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하신 그분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재림의 얘기가 아니고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어 영원토록 지속될 ‘교회생활’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14:2의 “거할 곳”과 14:23의 “거처”가 둘 다 헬라어로 ‘모네(mone)’ 라는 것을 알면 예수님의 의도를 금방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전체에 딱 두 번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메노(meno)’ (‘거하다’ 또는 ‘살다’) 라는 동사형은 신약성경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또 요한복음에만 40번이나 등장하지만, 명사형인 ‘모네(mone)’는 여기 14:2과 14:23에만 나옵니다.

 

“내 아버지집에 거할 곳(mone)이 많도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mone)를 그와 함께 하리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우리”)께서 예수님을 사랑해서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교회)에게로 가셔서 함께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아버지집의 거할 곳’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계신 어딘가에 있는 장소로 가는 것이 아니고, 거꾸로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로 오셔서 함께 생명의 교제를 나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세 전 목적을 이루어나가는 교회생활인데, 개역성경은 ‘모네(mone)’를 각각 한글(“거할 곳”)과 한자어(“거처”)로 번역함으로써 아주 중요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헷갈리게 했습니다.

 

이와같이, 14장 전체의 문맥을 봐야 14:2-3이 제대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구절만 따로 떼어서 장례식 설교 본문으로 사용하는 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통해 가시화시키신 “거할 곳”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살아나가며 경험해야 할 새로운 차원의 흥분되는 삶을 소개한 내용입니다.

그럼 이 새로운 차원이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notice]예수님짜리 블로그를 이메일로 구독하기[/notice]

 

 

1 p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You may use these HTML tags and attributes: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