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독일의 뒤셀도르프로 가던 Germanwings 여객기가 알프스를 들이받고 산산조각이 나서 탑승한 150명 전원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한지 몇 시간 후에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저의 머릿속에는 18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 있는 내내 신문에서 본 사진 속의 처참한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비행기가 로키산맥을 넘으며 심히 떨렸을 때는 순간적으로 아찔하며 “아, 여기서 갈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한편, 이제 내 나이 환갑이 되었으니 살만큼 살았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1세기 때 살았던 대부분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에 비하면 꽤 오래 산 것이니까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또 잠이 들었다 깼다 하다가 성경책을 꺼내어 평소에 가장 자주 읽는 요한계시록 21-22장을 펴서 또 다시 읽어내려갔습니다.
읽을 때마다 저에게 존재의 이유를 상기시켜주는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 말씀만 떠올리면 안심이 되고 힘이 불끈 솟아오르기 때문입니다.
1세기 말 안팎에서 공격을 당해 위기에 처한 교회에 하나님께서 요한을 통해 주셔서 위로와 용기를 북돋워준 메시지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 21:1-5)
이사야 65:17-19의 이미지를 빌려와서 계시문학체로 다음과 같은 영적 사실을 밝혀주는 메시지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요한계시록 21-22장은 앞으로 우리가 가게될 죽은 후의 천국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부터 영원까지 우리가 살며 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의 교회생활을 가리킵니다.
“새 예루살렘”은 계시문학에서 ‘교회’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있든지 이 땅을 떠나든지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살아가는, 교회라는 새 창조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그린 것입니다.
비행하는 동안 처참한 비행기 잔해 사진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위의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한 진리가 불안했던 저의 마음에 다시금 평안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의 강림을 통해 세우신 교회 안에서 새 창조의 세계를 살고 있으니 언제 이 땅을 떠나도 이제는 후회나 아쉬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찔한 상황에 처해도, 이런 놀라운 복음의 실체를 살아가면 안심이 되고, 용기가 솟아오릅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이맘때 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의 목적, 신비의 경륜, 성경이 말하는 교회…
이것을 모르고 죽었다면 그것이 가장 아찔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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