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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

온전한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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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주 오랜만에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면서 마음 속에선 유기적 교회의 모습이 연거푸 떠올랐습니다.

필라델피아의 The Kimmel Center의 Verizon Hall에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진 나디아 소넨버그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관람했는데, 저는 소위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그녀의 연주보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휘자의 지휘를 따라 일사분란하게 연주하는 것에 더 매료되었습니다.

저같이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이 들어본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콘체르토와 구스타프 홀스트의 The Planets이 장내에 울려퍼지는 내내 저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휘에 따라 하나로 움직이는 교회를 마음 속에 그려보았습니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때마다 감탄하는 것은 수십 명의 바이올리니트들의 활이 똑같이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미국의 고등학교 오케스트라나 대학교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봤을 때 저같은 사람도 포착할만큼 활의 오르내림이 뭔가 어수선하고 상당히 미숙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그야말로 일품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실력을 갖춘 연주자들이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한치의 실수가 없도록 맹연습을 한 후 관중 앞에서 드러난 결과겠지요.

 

Philadelphia Orchestra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저는 평소에 궁금하던 것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있는 저의 조카사위에게 물어봤습니다.

제가 물어본 그것은 바로 공연 중 가끔 한번씩 심벌즈를 치거나 북이나 팀파니, 또는 실로폰 같은 것을 치는 연주자들의 연봉과 거의 쉬지 않고 연주하는 현악기 연주자들의 연봉의 차이가 있는지였습니다.

좀 속물같은 질문이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연봉에 큰 차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뜻밖에도 연봉에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종신직(tenure)인 단원과 그렇지 않은 단원의 차이는 있고, 악기 파트마다 그 파트의 리더들과 평단원들의 차이는 있고, 또 근무 년수(seniority)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그 외에는 차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현악기를 다루는 사람이나, 관악기를 다루는 사람이나, 타악기를 다루는 사람이나, 건반악기를 다루는 사람이나 모두 다 실력있는 전문가들이고, 모두가 다 연주할 음악 전체를 이해하고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자기가 맡은 역할을 실수 없이 해내야 하므로 모두가 다 똑같이 중요하기 때문이랍니다.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몫을 다 하기 때문에 차별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체들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자기 몫을 다 하는 교회 안에서도 차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orchestra

 

세계 곳곳에 수많은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유소년 오케스트라도 있고, 대학교 오케스트라도 있고, 웬만한 큰 도시에는 다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아는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오케스트라에 열광합니다.

왜냐하면, 실력의 차이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오케스트라는 있을 수 없어도 더 온전한 오케스트라일수록 돋보이게 마련입니다.

 

오케스트라 중에도 손꼽히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걸맞은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교회를 마음 속에 그려보았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3)

 

Eph 4

 

교회가 온전한 사람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온전한 오케스트라가 되려면 단원들이 단 한 사람도 예외없이 “다” 자신의 몫을 감당하며 지휘자의 지휘를 따라 “하나”로 움직여야 하듯, 교회도 온전한 사람을 이루기 위해 지체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분을 신뢰하고 경험적으로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조직에 의해 상위 소수의 헌신에 의지하여 움직이는 제도권 교회는 “온전한 사람”으로서의 교회에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교회는 지체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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