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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

내 코가 석자다

 

 내 코가 석자

 

“내 코가 석자다”

지난번 한국 방문 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제가 제일 많이 사용했던 말 중의 하나가 이것입니다.

 

이 말은 원래 신라시대 때부터 전래된 어떤 설화에서 유래한 것인데,  그 설화는 코가 커졌다는 얘기였지만 지금은 ‘코’가 아니라 ‘콧물’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나의 콧물이 석자나 나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내 코가 석자” 라는 말은 ‘내 콧물이 석자 씩이나 길게 나온 것을 닦지도 못하는 판에 누구를 걱정할 수 있겠느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을 영어로 가장 가깝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을 찾아보니 “I have enough problem of my own” 일 것이라고 합니다.

즉,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태산 같아서 다른데는 신경 쓸 수 없다는 뜻입니다.

 

i have enough of my own

 

제가 지난 달 한국 방문에서 이 말을 많이 하게 되었던 이유는 복음을 분명히 알게 되어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일에 동참하고자 하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을 여러 명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하고 비 성경적인 제도에 사로잡혀 살아왔음을 깨닫고, 그런 종교적인 삶을 뒤로 하고 제도권 교회를 나와 신약성경적인 유기적 교회 생활로 돌입해야 함을 분명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고민할 수 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혹시 내가 신천지 또는 구원파 같은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졌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몸 담고 있던 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그들로부터 외골수 극단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을까?

그들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인데, 그냥 여기서 썩는 밀알이 되어 그들을 내가 깨달은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주님께 더 영광이 되지 아닐까?

역사상 기라성같은 주님의 사람들 절대다수가 제도권 교회 안에서 평생 살며 많은 열매를 맺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했다는 말인가, 나는 그들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는 수준아닌가?

남편(아내)과 자식들과 부모님은 이 길을 거부하는데 나 혼자 가도 되는 것인가, 나 혼자 살겠다고 가족은 나 몰라라 하는 너무 이기적인 행태는 아닌가?

그동안 장시간의 교회 생활을 통해 쌓아놓은 인맥은 어쩌란 말인가?

내가 주위 사람들과 가족으로부터 올 불이익과 질시와 박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같은 데는 워낙 넓어서 그런 결단이 쉽겠지만 여기는 좁은 동네라서 너무 혁신적으로 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

 

pesecution

 

아마 이런 류의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우리 속에서부터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갈등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연약한 우리로서는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겠지요.

저 자신도 십 여년 전에 복음을 분명히 깨닫고 나서 이런 갈등 속에서 고민한 적이 있기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의 과정을 끝내고 결단을 내린 다음 행동으로 옮길 때 마지막 관문은 뭐니뭐니 해도 가족의 문제입니다.

복음을 바로 알려주고, 성경적으로나 기독교 역사 속에서의 제도권 교회의 심각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는데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인 남편(아내)이나 자식들이나 부모를 두고 홀로 떠날 것인가, 바로 이 문제입니다.

이런 걱정을 하는 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이것뿐입니다.

“내 코가 석자다.”

 

내 코가 석자 2

 

왜냐하면, 그런 걱정은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하실 일이고 문제는 주님 앞에서의 나 자신입니다.

가족을 데리고 주님 앞에 가겠다는 발상은 약간 심한 말로는 ‘오지랖’이요, 더 심한 말로 하자면 사자성어 사촌격인 표현으로 ‘주제파악’이 덜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주제파악 할 수 있게 하는 말은 역시 이것입니다.

“내 코가 석자다.”

 

that's my job

 

최근에 어떤 분이 91세를 맞으신 장로님의 생일을 축하하며 쓴 메시지를 읽으며 제가 잠깐 생각에 잠긴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다음과 같이 썼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우리 장로님은 주님을 만나신 이후로

오직 교회만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신 삶,

오직 주님의 성품만이 나타나신 삶,

당신이 만난 예수를 다른 지체들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의 삶,
오직 주님의 뜻만을 쫓으려는 순종의 삶,

교회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지혜와 분별과 오래참음…의 삶을 사시고 계시는 분 이십니다.

주님의 삶을 따라가시는 우리 장로님이 너무 부럽습니다.”

 

위의 글에서 그분이 타이핑하다가 오타한 부분이 제 눈에 확 띄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뜻만을 쫓으려는 순종의 삶.”

그분이 쓰려고 했던 말은 위의 문장이 아니고 이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뜻만을 좇으려는 순종의 삶.”

 

“쫓으려는”이 아니고, ‘좇으려는’이었겠지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ㅈ’과 ‘ㅉ’ 사이의 자음 하나 차이가 극과 극임을 보며 우리 신앙생활도 이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칫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닭이나 개 쫓듯이 ‘쫓는’ 우를 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좇는다고 착각할 뿐이지 실은 하나님의 뜻을 쫓아버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following Gdo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깨닫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데 힘쓰지 않고 안일하게 살다보면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버리고 있음에도 하나님의 뜻을 좇고 있다고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착각을 줄이려면 혼자 하나님의 뜻을 찾겠다는 무모한 신앙을 버리고 신약성경적인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엡 3:16 – 21)

 

3d people partner.

 

이런 교회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고

“교회 안에서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교회 안에서와”가 아니고, 원문에 충실하자면)

이런 교회생활이 몸에 배야 주님의 뜻을 ‘쫓는’ 것과 ‘좇는’ 것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이런 신약성경적인 유기적 교회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심지어 가족의 문제까지도 다 제쳐놓고 이 길로 돌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코가 석자”

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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