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프랭크 바이올라가 그의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 그의 허락을 얻어 우리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유기적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한 아래의 article이 가장 많은 혼동이 일어나는 영역에 명확한 분별을 더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 블로그의 글이 나의 대답을 듣고 유익을 얻게 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입니다. 특히 가정교회 또는 simple church 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 글이 이 문제들에 대해 더 깊이 살펴보도록 하는데 일조했으면 합니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물론 나 자신의 견해입니다. 여러분의 신앙 여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의 생각에 동의하든 그것을 고치든 그것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요점: 내가 “유기적 교회” 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전부 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20여 년 전 제도권 기독교를 떠난 이래로 나는, 그 후에 살아온 교회 경험을 표현해주는 말을 찾으려 모색했습니다.
내가 약 20년 전쯤부터 “유기적 교회” 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흥미롭게도 최근 들어 이 단어가 점토(clay word)같은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에 의해 각기 다른 여러 의미로 변형되었다는 말입니다.
오스틴 스팍스가 이 용어를 사용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내린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충만함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과 법칙은 유기적인 생명이다.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는 생명이 그 고유의 생명체(유기체)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영적 존재든 관계없이.
이것은 모든 만물이 안으로부터 생성된다는 의미이다. 기능과 질서와 열매가 이 안으로부터의 생명의 법칙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신약 성경에서 보는 것이 오로지 이 원리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제도권 기독교는 이 순서를 통째로 뒤집어놓았다.
“교회의 유기적인 표현” 이라는 말은 스팍스가 선호한 문구였는데, 나는 아직 이것을 능가하는 더 좋은 문구를 찾지 못했습니다.
내가 “유기적 교회” 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이것입니다:
인간 제도에 의해 만들어져서 종교 프로그램들에 의해 유지되지 않고 영적 생명으로 태어난 비 전통적인 교회.
유기적 교회 생활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특징지어 지는 원초적인 경험입니다:
친밀한 공동체, 모든 지체가 역할을 수행함, 모두가 참여하는 열린 모임(회중을 향해 목사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것에 반하는), 계급 없는 리더십,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모임의 실질적인 지도자요 머리로서 역할을 수행하시는 것이 중심이 되고 우위를 차지함.
달리 표현하자면, 유기적 교회 생활은 그리스도의 몸의 “경험” 입니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제가 땅으로 옮겨져서 그 순수한 형태 그대로 사람들에 의해 경험되는 그런 교제입니다.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만일 내가 인간의 기발한 재능과 조직적인 솜씨를 발휘하여 실험실에서 오렌지를 만들려고 한다면 그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오렌지는 유기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오렌지 씨를 땅에 심어서 오렌지 나무가 자라났다면 그 나무는 유기체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죄로 물든 인간들이 비즈니스 기업을 창업하는 식으로 교회를 시작하려 한다면 교회 생활의 유기적인 원리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유기적 교회는 한 그룹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실질적으로 만날 때, 그리고 교회의 유전자(DNA)가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할 때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존재입니다.
요약하자면, “유기적 교회”는 교회가 제도적 조직이 아닌 영적 생명체(유기체)라는 성경적 가르침을 구체화하는 교회 생활을 묘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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