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하나님의 VIP’ 곧 “하나님의 벗” 이라고 인정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정도로 하나님과 친밀했는지는 다음의 말씀이 잘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는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창 18:16 – 2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집을 방문하셔서 그의 대접을 받으신 후에 떠나시면서 그를 두고 사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로 작정하신 계획을 아브라함에게는 당연히 미리 귀띔해주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친구이므로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알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 15:15)
아브라함은 일찌기 하나님과의 이런 관계, 이런 위치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가치있는 것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에 걸맞게 행동하며 사는 것이 몸에 깊이 배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소돔 왕과의 대면에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들 수 있습니다.
다음은 그돌라오멜 연합군과 소돔과 고모라 연합군 사이의 전쟁통에 소돔에 살던 조카 롯과 온 가족이 사로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고 쫓아간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격파하고 그들을 구출한 후 소돔 왕과 대화한 내용입니다.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창 14:21:23)
요즈음 시쳇말로 ‘내가 네 덕을 본다면 내 손에 장을 지져라’ 라는 뜻이겠지요.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의 벗으로서 그 수준과 가치에 걸맞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위치에 있는 자신이 제 멋대로 죄 지으며 사는 속물 덩어리인 소돔 왕과 동급으로 놀면 하나님의 명예에 손상이 간다는 뜻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VIP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겉 다르고 속 다르지 않습니다. 친구의 부탁을 건성으로 듣고 그것을 겉으로 때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친구의 마음에 있는 목적과 의도를 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인, 아론, 발람, 삼손, 사울, 솔로몬… 요즈음으로 하면 다 그리스도인이고, 그 중에서도 교회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는 관심 없고 자기 구미에 맞으면 순종하고, 그렇지 않으면 적당히 때우거나 제 멋대로 하는 것이 몸에 밴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오로지 하나님께 복을 받고 싶은 속물 근성만 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벗 근처에도 못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은 열심히 때우는 사람들.
겉으로 볼 때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이지만 속은 자기 사랑, 자기 주관으로 꽉 차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유대인들이 그런 속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그런 상태를 요한복음의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요 6:15)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후에 군중들이 드러낸 속셈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또 요한복음의 저자는 그 사람들을 이렇게 평가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속물 근성을 폭로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6)
그리고는 예수님의 공중 앞에서의 사역을 이렇게 총 결산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요 12:36 – 37)
너도 나도 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는데 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지 아니하니” 라는 말은 ‘믿지 않는 것이 그들의 습관이었다’는 뜻입니다. 즉 믿지 않는 것이 그들의 몸에 배어 있었음을 강조한 말입니다.
믿어서 따라다녔는데 어째서 이런 식으로 평가했을까요?
예수님의 목적과 의도는 알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속셈을 채우려고 따라다녔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이런 유대인들의 속 마음을 예수님께서 다 아셨다고 요한복음 서두에서 이미 밝혔습니다.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요 2:23-25)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속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그들을 믿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런 속물들 중 군계일학과 같은 사람은 가물에 콩난 듯 했는데, 요한복음 전체에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VIP로 여기셨던 사람 딱 하나를 소개합니다.
유대인 초막절 행사 중 수만 명의 군중 속에 예수님의 눈에 띈 단 한 사람은 다름아닌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 이었습니다 (요 9:1).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는 서슬이 퍼런 바리새인들 앞에서 출교를 각오하고 끝까지 예수님을 변호했습니다.
자신의 안위가 위태롭게 되자 은혜를 입고도 예수님을 당국에 고발한 속물 중의 속물인 요한복음 5장의 38년 묵은 병자와는 대조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바리새인들로부터 내쫓겼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 그를 일부러 찾아 만나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서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요 9:35 – 38)
이걸 믿는다고 하는 것이고, 이렇게 믿는 사람이 곧 예수님의 VIP입니다.
이 사람은 그때까지 종교 지도자들이 들이대는 소위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에 속아서 몰라서 하나님을 오해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를 알게 되자 금방 대가를 치르며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마치 여리고성 수많은 군중 속의 군계일학인 삭개오가 예수님의 진면목을 알고난 후 금방 그때까지 살아온 삶의 가치에 혁명을 경험했듯이.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와 마음과는 동떨어진 종교적인 삶 속 깊은 곳의 속물 근성에 속아왔음을 깨우쳐줘도,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어도 위의 아브라함이나 이 사람들처럼 가치의 혁명이 일어나 과감하게 외길을 가는 예수님의 VIP가 드문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도 자존심이 있어서 ‘뭐가 팔려서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아는 ‘하나님의 벗’이요 ‘하나님의 VIP’인 예수님의 사람들이 그 가치에 걸맞지 않게 산다는 것은 예수님짜리의 자존심이 걸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notice]예수님짜리 블로그를 이메일로 구독하기[/notice]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