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이 발동하여 예수님을 보려고 나왔다가 뽕나무 위에까지 올라갔던 삭개오가 결국 예수님의 VIP가 되는데, 그가 어떻게 해서 순식간에 그런 경지에 도달했는지 그의 마음 상태를 우리는 다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그를 보고 하신 말씀에서 대충 힌트를 얻을 뿐입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 19:9)
그 당시 유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죄다 자신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여겼을 테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좀 다른 뉘앙스를 풍깁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해서 다 동급은 아니라고 하시는 것같은…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요 8:39)
여기서 예수님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에 걸맞은 행동이 나와야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따라서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이 어떤 사람인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두 말 할것 없이 ‘하나님의 VIP’였습니다.
그의 별명이 “하나님의 벗”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 41:8, 약 2:23).
이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파격적인 표현입니다. 일개 인간을 야훼 하나님의 친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참람하기 짝이 없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VIP가 된 것은 그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인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지만 성경은 그런 은혜를 깨달은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루시려는 목적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드렸습니다.
물론 실수도 여러번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늘 자발적으로 응했고, 궁극적으로 믿음의 조상에 걸맞게 하나님의 의도를 올바로 파악하고 그것을 끝까지 고수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목적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는 것인데 (창 12:2), 그것은 오직 ‘가나안 땅에서’ (창 12:7; 13:15; 창 15:7), 그리고 아들 ‘이삭을 통해서’ (창 17:19)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항상 옳다’는 것이 아브라함의 삶 속에 깊이 배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위해 아브라함은 많은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과정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맘대로 해서 실수를 범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75년 동안이나 살아왔던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가나안 땅으로 가는 과감한 결단을 하고 실행에 옮겼지만, 그 땅에 기근이 닥치자 믿음이 연약해져서 애굽으로 갔다가 큰 코 다칠 뻔하고는 다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창 12:10-13:1).
또 하나님께서 주실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엉뚱하게 아내의 말을 듣고 여종과 동침해서 이스마엘을 낳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창 16:1-16).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런 잘못들을 극복하고 일어나서 하나님의 뜻을 고집하는 사람으로 변모해갔습니다.
조카인 롯을 떠나보내면서까지, 물이 넉넉한 좋은 땅을 포기하면서까지 가나안 땅을 고수했습니다(창 13:1-12). 사람과 소유 둘 다를 잃으면서까지…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이 오랫동안 친 자식처럼 키운 조카였는데도 이별을 해야 했고, 그 당시 목축업에는 절대적 필수인 물 걱정 전혀 할 필요없는 요단강 옆의 풍요로운 땅을 뒤로 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옳기 때문입니다.
‘이삭을 통해서’를 고수하기 위해 장남 이스마엘을 내쫓는 쉽지 않은 결단까지 내립니다 (창 21:8-14). 이스마엘은 비록 여종과 동침해서 낳았지만 이삭을 낳기 전까지는 외아들로 애지중지 키워왔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 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과감하게 그를 떠나 보냅니다 (창 21:12).
하나님의 말씀이 옳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압권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것입니다 (창 22장).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얘기지만, 실은 ‘삼척동자인 내 아들이 알까봐 겁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에 대해 얘기할 때 단골로 등장하지만, 또한 가장 꺼리는 얘기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너무 헌신했다가 어느날 알토란 같은 내 자식을 데려가시면 어떻게 하나?’ 라는 두려움을 자아내는 이야기.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한 사람이라 그럴 수 있었지, 나같은 범인은…’ 이라며 그의 믿음을 치켜세우면서 자신은 뒤로 빠지려는 꼼수를 부리게 하는 이야기.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것까지도 순종하여 실천에 옮겼습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이 옳기 때문입니다.
또 이삭의 아내를 데려올 사명을 받고 메소포타미아로 떠나보내는 종에게 절대로 이삭을 데리고 가지 못하도록 반복해서 강조하기도 합니다 (창 24:5-8).
혹시나 이삭이 그곳에 갔다가 거기서 발목 잡히게 되면 ‘가나안 땅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하나님의 목적이 다 수포로 돌아갈 것을 미리 차단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들이 결혼을 못하면 못했지 하나님의 목적을 그르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옳기 때문에.
그리고 창세기 25장에서는 아내가 죽고 난 후에 취한 후처의 소생들을 자기의 생전에 가나안 땅으로부터, 또 이삭으로부터 멀리 멀리 떠나도록 조치하는 아브라함을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삭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하나님의 목적이 방해받을 가능성을 자기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일찌감치 제거하고 원천봉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를 읽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기꺼이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옳기 때문입니다.
전에 어떤 회사의 사장을 만날 일이 있어 찾아갔더니 비서가 사장이 조금 후에 온다고 사장실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기다리다가 사장이 앉는 회전의자 뒤의 벽에 있는 액자가 눈에 들어와서 그 써있는 내용을 보니 거기에 다음과 같이 짧게 써있었습니다.
The Rules of the Office
1. The boss is always right.
2. If the boss is wrong, see rule number 1.
이것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겠지요.
이 회사의 규칙
1. 사장은 항상 옳다.
2. 만일 사장이 틀릴 경우엔 1번 규칙을 보라.
저는 이것을 보며 무릎을 쳤습니다.
그 사장은 물론 유머를 발휘해서 그것을 걸어놓았겠지만, 이 규칙이야말로 하나님만 주장하실 수 있는 ‘Rules of God(하나님의 규칙)’임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Rules of God(하나님의 규칙)
1. 하나님은 항상 옳다.
2. 만일 하나님이 틀릴 경우엔 1번 규칙을 보라.
아브라함은 일찌감치 이것을 깨닫고 통달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벗이요 VIP로 인정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 이라는 말씀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아브라함의 경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라고 하신 말씀도 이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요?
야고보가 한 말이 오늘날 하나님의 VIP가 누구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약 2:20 – 24)
삭개오가 비록 호기심에서 출발하였지만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의 자손” 이라며 VIP로 여김을 받은 것은 아마 예수님께서 그를 위의 말씀에 따라 인정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notice]예수님짜리 블로그를 이메일로 구독하기[/notice]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