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프랭크 바이올라의 블로그에 있는 글에서 발췌한 것으로써 프랭크 바이올라의 허락을 얻어 우리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분과 대화를 했는데 그는 악역을 자처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많은 사람이 “교회” 라고 부르는 제도(system)와는 다르다는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한 나의 열정에 관해 물었습니다.
아래는 그분과의 대화 내용입니다.
질문: 당신의 말은 하나님께서 제도권 교회(institutional church)를 사용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나의 대답: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이교에 물든 기독교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제도권 교회에 나의 구원과 침례(세례)를 빚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정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완전한 뜻이나 본래의 의도와 맞지 않아도 많은 것을 사용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에게 “쓰임받는 것”이나 “복 받는 것”은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측정하는 기준으로는 부적합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이 바벨론에 있을 때도 복을 주셨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뜻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십시오. 그리고 거기서 회당을 지은 것도 하나님의 완전한 뜻은 아니었지요. 하나님의 완전한 뜻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질문: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이 제도권(기관, institution) 안에 있지 않습니까?
나의 대답: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 기관들을 “교회”가 되게 하거나 신성하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병원에도 있고, 기업에도 있고, 학교와 정부 조직 안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민족국가(폭력에 의해 태어나서 유지되는) 안에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교회” 라고 부르는 “제도적 교회 조직”과 하나님의 에클레시와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라 함은 한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모여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아래 공동체로 삶을 함께 하는 믿는 자들의 그룹을 말합니다.
나의 논리를 따라와 보십시오.
하나님은 교회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동차도 사용하십니다. 그렇다고 자동차가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하나님의 사람들이 제도권(기관들) 안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종종 자동차를 몰기 위해 그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자동차를 교회가 되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제도권 교회들을 사용하십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나는 자동차 안에서 사람들에게 전도한 적이 많습니다. 그리고 내 친구 두 사람은 자동차 안에서 하나님을 만난 놀라운 경험이 있고, 그 중 한 명은 자동차 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자동차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제도권 교회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동차 안에서 하나님에 관한 것들을 배웠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 적이 많습니다. 먼 길을 여행했을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제도권(기관들)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맞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종종 자동차 안에서 주님과의 교제를 나누고, 어떤 경우엔 자동차 안에서 찬양과 예배를 한 것이 최고의 경험인 적도 있고, 심지어 눈물이 날 정도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 경우도 자동차 안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동차를 교회가 되게 하지는 않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 라고 부르는 제도(기관들)를 사랑하십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신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동차도 사랑하실까요? 위의 논리를 참고해서 나에게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로 따지자면 하나님께서 종교 기관과 자동차 둘 다를 사용하시는데, 어째서 하나님이 자동차를 사랑하시는 것보다 종교 기관을 더 사랑하실까요?
하나님이 분명 다양한 종교 기관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시지만, 하나님이 제도나 기관을 사랑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동차를 사용하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동차 안에 있고, 자동차가 종종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르치고 찬양하게 하는 도구로 쓰임받지만, 이것이 자동차를 하나님의 교회가 되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 라고 부르는 기관들과 제도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요점: 나는 교회를 아주 많이 사랑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교회” 라고 부르는 종교 기관들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닙니다. 나에게는 그런 제도나 자동차나 사실상 같습니다.
그것들은 좋게 쓰임받기도 하고 나쁘게도 쓰임받습니다. 그것들은 “신성”하지도 않고 결단코 에클레시아를 대신하거나 대체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민족국가를 향해 충성 맹세를 하지 않듯이 이런 종교 제도를 지지하거나 그것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몸에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에클레시아는 우리 주님의 약혼녀입니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입니다(찰리 리치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리고 하나님은 그녀와의 사랑에 한참 빠져 계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정말 사랑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아내를 싫어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아내를 그녀의 이름을 가둬놓은 인간이 만든 제도와 바꿔치기 하면서 그분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건물과 결혼하실 수 없고, 교파나 예배순서나 성직제도나 종교제도와 결혼하실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 에클레시아를 종교제도와 혼동하기 때문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종교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그것을 에클레시아에 대한 공격으로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글의 영어 원문 전체는 아래를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http://frankviola.org/2009/08/18/why-i-love-the-church-in-praise-of-gods-eternal-purpose/
예수님짜리 블로그를 이메일로 구독하기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