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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

지난 열흘 동안 받은 메시지 속의 고백

 

***금년 초에 발발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두 번의 한국 방문이 취소되어  한국의 교회 지체들 소식이 궁금했는데, 지난 열흘 동안 연달아서 날아온 메시지의 사이다 같은 고백을 접하고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그것들을 나누고자 아래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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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기적 교회의 지체로 살기 시작한 지 2년 된 지체

 

영원에서 지상으로’의 복음을 듣자마자 “바로 이거다!” 확신하며 이 교회로 살기 시작한 게 어느새 꽉찬 2년이 됐습니다. 그간 ‘예수님짜리’의 정체성이 누리게 해주는 자유함과 총체적인 복음의 능력이 감당케 해준 자족함으로 마냥 기쁘고 감격하며 지내왔는데, 두어 달 전부터는 ‘예수님 자리’에서의 삶을 깊이 묵상하게 됐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는 주님의 말씀처럼 참 사랑을 한다는 건 체휼함이 먼저일진대…  현대 도시의 삶에 최적화된 지극히 평범한(?) 개인주의자로 살던 제게 던져진 이 화두는, 지금까지 기껏해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어떤 것들을 사람의 의와 열심으로 제공하는데 그치다가, 결국 영육의 한계점에 부딪혀 자괴감에 시달리기 일쑤였던 저로선 막연하게 짐작만 해오던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조금이나마 알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영원부터 섭리되어진 십자가의 희생, 섬김, 사랑…  2천 년 전 주님이 홀로 걸으셨고, 같은 길을 면면히 걸어왔던 수많은 선배들의 맥을 이어 마치 주님이 제게 “너도 나와 함께 걷겠니?” 하시며 너무나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선하심으로 물으시며, 하찮고 보잘것없는 저를 설득시키시는 것 같은 거룩한 그 물결 앞에 “아! 주님의 설득하심이 이런걸까?” 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내가 했던 사랑은 가짜구나… 나는 사랑하는 법을 모르고 살아왔구나…”가 깨달아지면서 마음 한구석에선 십자가의 삶, 그 체휼함의 고난을 거부하고 편히 살고 싶은 육신의 정욕도 밀려왔지만, 그러기에 더욱 내가 아닌 오직 주님의 이끄심만이 나를 주장케 해달라는  마음의 소원이 가득해짐을 느꼈습니다.

 

저 자신을 보면 잘 할 자신은 없지만… 그동안 거저 누려온 ‘예수님짜리’의 기쁨과 감격, 그 거룩한 은혜의 무게가 이제는 체휼의 삶인 ‘예수님 자리’로 조용히 옮겨지는것 같습니다.

아직도 저라는 인간은 변한 게 없지만, 위대한 복음의 능력이 제 삶을 조용하면서도 강력하게 변화시키고 있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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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기적 교회의 지체로 살기 시작한 지 5년 반 된 지체

 

내게 다가온 기쁜 소식을 혼자만 알고 누릴 수 없기에 몇 자 올리려 합니다.

 

2020년 7월 11일 늦은 오후 한 형제의 “복음이 무엇이냐?” 라는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왔고, 내가 천국 시민이고 새 종족이다.”

(이렇게 답했을 때 함께 있었던 형제, 자매들은 “저 친구 뭐야!!” 라는 표정을 짓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흥분을 가라앉히며 글을 씁니다.

 

관념적이며, 지식적으로 수도 없이 듣고 또 듣고 알았다고 자부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내게 실체화된 시간임을 고백합니다.

 

목사님.

아, 자주 말씀하신 “흥분을 안하면 기적”이라는 그 말씀이 이제서야 이해가 됩니다. 많은 형제 자매들은 벌써 느끼고 경험하며 살고있지만, ‘지금 이 시간의 나를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고 다시 경험치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에 목사님을 깨웁니다.

 

지금 밖은 비가 내려 좁은 거실에서 총총거리니, 아내가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앉아 있으랍니다. 반쪽의 속도 모르는 반쪽… 그것마저 사랑스런 반쪽.

 

2008년 아무것도 모르고 받은 침례, 이제 세상에 대하여 죽고 새 시민으로 살고자 앞으로 올 기회에 침례받기 원합니다.

 

이해하여 주세요! 머리와 가슴과 손이 따로 놀고 있음을…..

 

‘2020. 07. 11. 17시 경’

 

다른 분들과 목사님이 벌써 느끼시는 감격의 경험에 지금 제가 동참한 시간을 기억하렵니다. 앞으로의 시간, 기대만으로 설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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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기적 교회의 지체로 살기 시작한 지 5년 된 지체

 

2014년 제도권 교회를 나와 유기적 교회로의 귀한 초대를 받고도 5년이라는 시간을 정확한 복음도 모른 채, 내 삶의 목적도 모른 채 지냈다. 그러다가 내 안에 주님이 주시는 갈증을 느끼며 진짜 복음을 알고 싶어 참 생명을 소개하는 요한복음 메시지를 듣고 또 들으며, 음부에 있을 수밖에 없는 내 영혼이 있어야 할 곳은 하늘임을 알게 되어, 2019년 봄 교회 안의 한 언니를 향해 문을 두드렸다. 바울 옆의 디모데처럼 교회의 삶을 보고 배우며 하늘 차원의 과격한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미 저 너머의 차원에 있는 듯한 그 언니의 삶은 바울의 삶이요, 그리스도의 삶이요, 아름다운 신부의 삶이요, 오로지 교회를 위해 사는 지체의 삶으로 보였다.

 

그 삶은 [생명에서 생명으로]  교재에 나오듯 지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는, 가히 내가 흉내도 내지 못할 삶이었다. 최근 읽었던 책에 ‘바울의 등에 난 채찍질의 흉터를 보았는가?’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나는 마치 그 언니에게서 바울의 등에 난 흉터 자국을 보는 것 같았다. 오랜 세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 채워온, 그 상처가 난 자국들을 보았던 것이다. 먼저 살아내신 언니를 1년 동안 보고 배우며,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물으셨듯이 내 삶에서 만난 예수님을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삶으로 살아낼 것인가, 내가 전해 들은 예수가 아니라 내 삶에서 나와 함께 살자고 하신 나의 사랑하는 신랑 예수님께 어떤 모습으로  영원 전부터 받은 그 사랑을 돌려드리며 (감히 돌려드릴순 없겠지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무나도 크신 그분 앞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한없이 작고 낮은 나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절대로 나 혼자로는 예수님을 다 알 수 없어 교회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로 화답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것은 완전한 예수그리스도의 것뿐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것이 들어가도 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더러운 배설물과 악뿐임을 처절히 깨닫는다. 온전히 교회를 위해 사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그 언니 옆에서 지내며 본 그 삶으로 내 삶의 무게는 깃털만도 못함을 느끼며 오다보니 나 혼자 겪어야 했을 시간보다 한결 수월했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과 인내는 나에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그분만을 바라고 싶은 소망을 따라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내가 내 삶의 목적으로 삼았던 육신의 문제 해결 따위는 어느새 경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것들을 초월하고 있는 내가 아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삶의 어느 하나도 내 것이 없으므로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다. 오직 그분의 것이다.

 

[인써전스] 책에 나오는 “하늘의 식민지” 라는 단어가 나로 하여금 주님을 향한 복종과 항복이 저절로 나오게 해준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타나야 할 것은 내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것이 나는 마땅히, 온전히 죽어버려야 하는 이유이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내 안에 살아움직이기 시작함을 느낀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죄는 때와 크기와 상관없이 똑같음을 깨달은 은혜로 지체를 나보다 낫게 여기고, 그의 연약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그분이 드러나시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아니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기만 하면 된다. 단지 내 영이 그것을 알아보고 영과 육을 분별할수 있기를… 그분이 나타나기 위한 나의 역할을 알아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제는 내 삶이 교회와 지체를 위해서라면 수치와 억울함을 당해도, 손해를 보더라도, 설령 죽는다 해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라면 마땅히 모두 내놓는 삶이어야 한다. 이제는 책에서 읽고 말씀에서 듣는 그분의 것들이 내 안에 활활 타오름을 느낀다. 그 불길에 나는 모두 태워버려 주님만 남아 오직 그분만 사랑하기 원한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끄시어 예수님짜리로 봐주시고, 영원에서 영원으로 예수님 자리에 살게 하신 이 삶은 한시도 정체될 수 없다.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아들이 누리시던 그 교제가, 아들과 신부가 누리는 그 교제가 내게도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제 시작된 이 영원으로 향한 과격하고 절박한 앞으로의 삶이 너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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