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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

욕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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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세상을 떠난 세계적 톱 가수 프린스(Prince)에 대한 추모 열기가 대단히 뜨겁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듣고 불과 몇 시간 후부터 수천 명이 한 자리에 모여 그의 노래를 틀어놓고 함께 부르며 밤 늦게까지 그를 기념하기도 했고, 저명한 인사들의 끝없는 추모의 글이 인터넷을 도배하다시피 했고, 그가 죽고 나서 단 사흘만에 그의 노래를 담은 앨범 58만 장과 음원 230만 개가 팔렸다고 하니 가히 전설적인 뮤지션이라 할 만 합니다.

 

프린스에 대해 뮤지션으로서만이 아닌 그의 여호와의 증인으로서의 삶도 아울러 조명되고 있는데, 그 중 그가 그의 집에 ‘욕 단지(Swear Jar)’를 두고 손님들에게 벌금을 물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라면 욕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단이나 사이비일수록 “하면 큰 일 나는 것”이 많은데, 특히 여호와의 증인은 욕을 하면 안 되므로 프린스는 그것을 철저하게 실천하려고 집에 욕 단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프린스의 집에서는 손님들이 욕을 할 때마다 보통 3 달러에서 10 달러까지 그 욕 단지에 벌금을 넣어야 했는데, 입만 벌리면 욕이 튀어나왔던 어떤 방문자는 그 욕 단지를 보고는 얼른 은행으로 달려가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인출해와서 미리 욕 단지에 수백 달러를 집어넣고 욕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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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단지’ 라는 것이 한국 사람들에겐 좀 생소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심심치 않게 이것을 사용합니다.

미국인들이 욕을 워낙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서 이런 관습이 생긴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 사람들 중에도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렇게 “뭘 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들 중에, 한국 사람들에겐 손주 자랑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 “자랑할 때마다 벌금 내고 하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벌금 내는 것을 넘어, 오히려 “그 자랑을 듣는 사람들이 돈을 걷어줘서 자랑을 그치게 해야 한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손주 자랑이라는 것도 욕하는 것처럼 그냥 술술 나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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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욕 단지를 둔다든가 벌금을 내라든가 하는 압박을 가하는 이유는 욕이든 손주 자랑이든 제어가 안 되기 때문에 화산이 분출하듯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것이기 때문인데, 이런 조치로 근절할 수는 없습니다.

욕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다는 것, 그리고 손주 자랑이 객관적으로 얼마나 근거가 없는 것인지를 스스로 자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몸에 배어 저절로 하지 않게 되기 전에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도권 기독교가 신앙에 도움을 주기 위해 행하는 많은 제도와 관행도 욕 단지나 벌금 부과 같은 조치처럼 근본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주일 성수를 시킨다고 해서, 예배 분위기를 엄숙하게 만든다고 해서, 또는 음악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고 해서, 십일조하는 습관을 들인다고 해서, 이런 저런 봉사를 하게 한다고 해서, 교회당을 거룩한 분위기로 꾸민다고 해서,… 하나님의 생명이 주입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소의 뒷걸음질에 쥐가 잡히듯 이런 관행들에 의해 간혹 신앙을 갖게 되었다거나 변화가 일어났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지 “그런 제도나 관행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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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교회들이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행하는 소위 ‘전도 총력 주일’ 이라는 것에 사람들을 데려가야 하는 교인들의 부담이 요즘엔 “교회 출석 알바” 라는 신종 직종을 출현시켜 인터넷 채용 정보 사이트에 버젓이 광고를 내는 일도 벌어진다고 합니다.

전도 총력 주일 당일 예배당에 3시간 동안 앉아 있기만 하면 얼마를 준다는 내용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배와 새신자 양육반에 10주 동안 앉아있으면 일당을 지급한다는 광고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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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류의 광고를 낸 교인들에게 문제를 제기했을 때의 그들의 반응이 흥미롭다고 합니다.

“나가서 전도를 해도 잘 안 된다. 믿지 않는 입장에서 보면 돈으로 (사람을) 사서 하는 게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하나님 말씀 듣고, 은혜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소의 뒷걸음질에 쥐가 잡힌 격입니다.

하지만 그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 타당한지도 의문인데, 이런 소행은 “목적이 좋기 때문에 수단은 정당화 될 수 있다”는 발상입니다.

물론 교회들이 내거는 이런 목적이라는 것도 하나님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것인 줄 그들이 알리가 없지만…

 

욕 단지를 둔다거나 손주 자랑하면 벌금 내야한다는 것이야 재미나 애교로 볼 수 있지만, 기독교에 만연하는 제도와 관행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왜곡된 복음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목적을 정말 알고 그 목적대로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이 드물다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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