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에 도착해서 고대 도시 유적 안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 일행은 먼저 에베소 옆 산꼭대기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의 집(The House of the Virgin Mary)” 이라 불리는 로마 카톨릭 성지에 들렀습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로 와서 산꼭대기에 집을 지어 드려, 마리아가 말년을 그 집에서 살다가 집 앞에서 승천했다고 믿는 수많은 카톨릭 신자가 찾아오는 곳입니다.
이런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를 믿지 않을까봐 마리아가 거기서 37년부터 45년까지 살았고, 그 집의 맨 아래에 보이는 벽은 2천 년 전 그때의 것이고 그 윗부분은 원래의 집이 무너진 후 6,7 세기 경에 올린 것이라며 이것이 마치 진짜 역사인 것처럼 포장까지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승천한 날이 8월 15일이라 하여 유럽과 남미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국가 공휴일로 지정할 정도로 역사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저 쏟아지는 빛도 혹시 이곳이 신비한 장소임을 암시?
벽 아랫 부분의 더 진하게 보이는 돌이 마리아가 살던 때의 것이라고 함
포장만 되어있지, 꼬불꼬불하고 오고가는 차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2차선 도로를 따라 제법 올라가야 하는 산 정상에 위치해 있는데도 성수기 때는 하루에 2만 명씩이나 찾는다고 하니 이곳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직전 교황까지 세 명의 교황이 방문했던 곳이므로 더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 나라 말로 써있는 마리아의 집 안내문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어머니인 마리아를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부탁하신 후 그 제자가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는 이야기(요 19:26-27),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 후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 속에 마리아도 함께 있어 기도에 힘썼다는 이야기(행 1:12-14) 이후로는 마리아에 관한 내용이 없는데, 로마 카톨릭은 사실무근인 전설에나 나올법 한 그후의 마리아의 행적을 역사와 교리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즉,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한 4세기 이후부터 꾸준히 대두되어 오다가 1950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교황 무류성’으로 선포되어 로마 카톨릭 교인이라면 꼭 믿어야 되는 ‘성모 몽소승천(The Assumption of the Virgin Mary)’ 교리 때문에 이런 전설이 역사로 둔갑한 것입니다.
성모 몽소승천 교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자범죄는 물론이거니와 원죄가 없다. 따라서 원죄의 결과인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에 심판 때까지 기다릴 필요없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육신을 부활시키셔서 천국으로 끌어올리셨다.’
431년 에베소 공의회가 열렸던 성모 마리아 교회
에베소의 항구 근처에 5세기 초에 지어진 성모 마리아 교회(The Church of Virgin Mary)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431년에 기독교 제 3차 공의회인 에베소 공의회(Council of Ephesus)가 열렸습니다.
이 공의회에서 “예수는 원래 인간이었는데 그에게 하나님이 임하여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주장한 콘스탄티노플 감독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고 정립하는 과정에서 알렉산드리아 감독 키릴로스와 그를 동조하는 교회 지도자들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Mother of God)”로 선포하는 어이없는 짓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좁은 사고방식으로는 예수님의 신성이 성립되려면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여야만 한다는 논리 외에는 없다고 판단된 모양입니다.
따라서 전설과 신화같은 이야기들이 발전해서 이렇게 기독교 지도자들에 의해 교리로 발전하게 되니 성모 몽소승천 교리 같은 허황된 것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런 류의 교리를 진짜라고 믿으면 성모 마리아를 만나서 계시를 받았다는 등 온갖 신비한 현상을 체험할 수 있는데, 19세기 초에 독일인 수녀 캐서린 에메리히가 환상 속에서 계시받았다는 성모 마리아의 말년에 살았던 집이 바로 에베소 옆 산꼭대기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성 요한 대성당의 상상도
에베소 외곽에 성 요한 대성당(The Basilica of St. John)이 있는데, 이 건물도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지은 저스티니안 황제에 의해 6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그당시 로마제국 전체에서 콘스탄티노플의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다음으로 규모가 큰 교회당이었습니다.
이 건물 역시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으로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어졌는데, 오늘날까지 거의 그대로 보존된 하기아 소피아와는 달리 수차례의 지진을 견디지 못하고 파괴되어 수세기 동안 지하에 묻혔다가 발굴되었습니다.
이 교회당을 지은 자리가 사도 요한의 무덤이라고 믿고 그 교회당 안에 요한의 무덤이라는 안내판까지 새겨놓았는데, 물론 이것 역시 역사와 무관한 전설 따라 삼천리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년에 에베소에서 사역한 것은 역사적 사실일 수 있지만 그의 무덤이 이 성당 자리에 있었다고 하는, 역사와 무관한 허탄한 전설을 따라 이곳을 마치 신성한 곳인양 믿게 하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역사적 근거가 없는 사도 요한의 무덤
하나님의 목적을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무지하면 전설과 신화가 난무해서 이런 기독교 미신이 판치게 됨을 에베소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미신은 카톨릭이든 개신교든 관계없이 지난 2천 년 동안 기독교의 이름으로 성행해온 것이고, 왜곡된 복음이 바로잡혀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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