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바도기아를 이틀동안 돌아본 우리 일행은 1월 22일(금) 저녁 비행기로 갑바도기아를 출발하여 터키의 서쪽 에게해(Aegean Sea) 연안에 위치한 항구도시 이즈미르(Izmir)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사도 바울의 제 1차 교회 설립 여행지인 옛 남 갈라디아 지역과 그의 고향인 길리기아의 다소가 제외되어 좀 아쉬웠는데, 시간도 많지 않았고 또 그 지역이 시리아와 인접해 있는 IS의 근거지와 가까워서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즈미르를 중심으로 해서 사흘동안 요한계시록 2,3장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가 있던 지역, 즉 1세기에 소아시아 지방이었던 곳의 도시들에 집중하여 하나씩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이즈미르는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에 이어 터키 제 3의 도시로서 인구 5백만에 육박하는 무역의 중심지인데, 이 도시의 옛 이름이 바로 서머나(Smyrna)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등장하는 서머나교회가 있던 그곳인데, 도시 이름이 그리스식 발음인 스미르나에서 1923년 터키공화국이 들어선 이래 터키식 발음인 이즈미르로 바뀐 것뿐입니다.
하지만 서머나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있던 도시들 중 유일하게 지난 2천 년 동안 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 그리고 오스만제국을 거치며 발전을 거듭해서 오늘날 활발한 대도시가 되었기 때문에 서머나의 1세기 때의 모습은 현재 자취를 감추고 거의 볼 수 없게 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이즈미르 공항은 무역 중심지답게 비교적 규모가 크고 깨끗했습니다.
유럽과의 교역이 활발해서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또 왕래가 잦아서 이즈미르와 유럽의 도시들 사이에 직항노선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찾는 많은 크리스천 관광객이 주로 이즈미르를 중심으로 여행을 하기 때문에 이 공항이 그만큼 잘 꾸며져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일행은 이즈미르(서머나)를 깃점으로 1월 23일(토)은 라오디게아와 자매 도시인 히에라볼리, 24일(일)은 에베소, 그리고 25일(월)은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를 차례로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이곳들은 먼저 방문했던 이스탄불이나 갑바도기아와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교회가 세워졌던 1세기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도시들이기 때문에 이 도시들을 돌아보는 사흘 내내 제 마음은 더욱 설레었고 두근거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제 3차 교회 설립 여행 때 에베소에서 약 3년간 지내면서 복음을 전하고 훈련한 결과, 제자들이 복음을 들고 소아시아 지역 사방으로 흩어져서 세운 교회들이 있던 도시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 19:8-10)
서머나교회도 바로 이때 바울의 제자 중 하나에 의해 세워졌을 것이고, 나중에 2세기 때 사도 요한의 제자였다고 알려진 폴리캅(69-155년)이 감독으로 있었던 곳입니다.
이 서머나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의 순교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폴리캅을 서머나의 경기장에 붙잡아다 놓고 마지막 기회를 주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저주하고 가이사에게 제사를 드리든가, 아니면 죽음을 택하라”는 총독의 회유에 폴리캅은 단호하게 이렇게 반문했다고 합니다:
“내가 86년간 그리스도를 섬겨오는 동안 그분은 단 한번도 나에게 잘못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나의 왕이요 구세주이신 그분을 욕되게 하겠습니까?”
이에 총독이 “당신은 불에 타 죽게 될 것이다” 라고 위협하자 폴리캅은 다시 이렇게 되받았습니다.
“당신은 잠시 타다가 곧 꺼져버릴 불로 나를 위협하지만, 그것은 당신이 악인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심판의 불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회유를 거부하고 산채로 화형 당한 폴리캅은 죽어가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폴리캅을 기념하는 교회당이 이즈미르에 세워져 있는데 이 건물은 16세기 경에 로마 카톨릭에 의해 건축되어 나중에 개축된 것이고, 1세기의 서머나교회나 2세기에 폴리캅이 섬겼던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성당의 관리자가 개신교인들의 방문을 싫어한다는 말도 있고, 또 방문 약속을 하고 갔는데도 그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사라져버려서 건물 앞에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왔습니다.
따라서 서머나에서는 에게해를 바라보는 항구의 경관이 괜찮다는 것 정도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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