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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

열흘 여행기 (4): 테러의 현장 이스탄불을 가다

 

터키 이스탄불

 

조지아에서 1박한 후 1월 20일(수)  이른 아침 비행기로 트빌리시를 떠나 터키의 이스탄불로 향했습니다.

이스탄불(Istanbul)은 로마 황제 콘스탄틴이 제국을 통일한 후 330년에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옮겨와서 그의 사후(337년)에 원래의 이름인 비잔티움(Byzantium)에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콘스탄틴의 도시’)로 개명되었던 곳입니다.

무려 1100년 이상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로마와 함께 제도권 기독교의 상징이었던 이 콘스탄티노플도 1453년 오스만 터키에 의해 점령되어 제국의 멸망을 고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화려했던 제도권 기독교는 자취를 감추고 이슬람교 휘하에 들어가 오늘날에 이른 곳으로서, 현재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국제도시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Bosphorus Strait)을 사이에 두고 유럽쪽과 아시아쪽으로 구분되는 거대한 도시 안에 기독교와 이슬람 유적이 공존하는 곳이라서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관광지입니다.

 

이스탄불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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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쪽과 아시아쪽을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에 놓인 다리

 

우리 일행은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곧바로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Hagia Sophia Cathedral, 터키어로는 “아야 소피아”)이 위치한 술탄마흐메드광장으로 향했습니다.

8일 전인 1월 12일 자살 폭탄테러에 의해 11명이 희생된 바로 그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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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벼야 할 시간임에도 한산하기만 한 술탄마흐메드 광장

 

아니나 다를까 비수기라도 붐벼야 할 광장에 테러의 공포로 인해 사람의 그림자가 거의 보이지 않고, 무장을 한 경찰관들이 될 수 있는 대로 눈에 띄지 않게 곳곳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관광산업이 위축되므로 테러의 흔적을 재빨리 지워버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보여주려 하지만 그 넓은 광장에 다른 한국 관광팀과 우리 일행을 제외하곤 서성거리는 몇 사람 밖에는 없었습니다.

관광에 목숨 거는 용감한 사람은 역시 한국 사람들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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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남아있는, 테러에 희생된 독일인들을 위한 추모행사의 흔적

 

하지만 그 광장을 가로질러 걸으며 혹시나 테러범이 있지는 않을까 반사적으로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터키에 입국하기 전 조지아에서 들은 소식에 의하면, 지금 IS 테러범들이 트럭 다섯 대에 폭탄을 가득 싣고 거사할 장소를 찾고 있다는데 그중에 우리 일행의 목적지인 이스탄불과 이즈미르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잠시 긴장하는 일행에게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음과 같이 얘기해주며 분위기를 전환시켰습니다.

“전투에서 폭탄이 빗발치듯 할 때 이미 폭탄이 떨어져 움푹 파인 곳으로 가면 그 자리에 다시 폭탄이 떨어질 확률이 적듯이, 한번 테러가 일어난 곳에서 또 일어날 확률이 적다.”

 

이런 테러에 대한 두려움도 하기아 소피아에 들어갔을 때 언제 그랬냐는 듯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너무나도 거대한 성당의 웅장함에 압도됨과 동시에 속에서 화가 치밀어올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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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아 소피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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