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한국의 자살률이 OECD 회원국 중 1위라고 합니다.
갈수록 격심해지는 경쟁사회에서 밀려 뒤로 처지고, 인간관계마저 뒤틀리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생활고가 겹치고… 하니 이 세상의 삶에 소망이 사라져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이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 라는 곳인데, 오래 전에 저도 한 때 인생무상을 느끼고, 산다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인생의 출발지인 그곳으로 가서 생을 마감할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렇게 삶이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현주소가 ‘살기도 괴롭군 죽으면 편하리’ 라고 했는데, 그게 그때 저의 심정이었습니다.
얼마전, 예비군 훈련장에서 훈련 도중 자기 주변의 예비군 여러명을 총으로 쏴 죽이거나 부상을 입히고 자살한 청년 역시 그런 현주소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인간이 참 무서운 게, 혼자 죽지 않고 이 청년처럼 다른 사람들까지 죽이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가 죽기 하루 전에 썼다는 유서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죽고싶다. 영원히 잠들고 싶다.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박증으로 되어간다.”
이전에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고 “이왕 죽을 거라면 북한에 잠입해서 저 극악무도한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죽이려는 시도라도 해보고 죽든가, 아니면 남을 억울하게 하고 고대광실에서 호의호식하는 파렴치한 사람들을 죽이고 죽을 것이지 왜 혼자 자살을 하나?”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저렇게 자기와 관계도 없는 애먼 사람들을 죽이고 자살하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혼자 가는 사람이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청년의 유서를 보면 사람들에게 ‘살기도 괴롭군 죽으면 편하리’ 라는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왜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수없이 내 머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무슨 목적으로 사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살아있으니깐…”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 즉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을 나름 찾았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살아갑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거창한 목적부터 내 가족을 위하는 소박한 목적까지, 또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오늘도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자신에게 되뇌이며 삽니다.
그리고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기 위해서, 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또는 구원받기 위해서라든가 죽은 다음 천국에서의 상급을 위해서… 등등의 이유를 붙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목적을 찾았다고 했지만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 때 자살로 끝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소위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살을 하지는 않아도 늘 좌절과 비관 속에 죽지 못해 사는 경우도 있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불행의 원인을 타인 탓으로 돌리고 불만이 가득차서 가족이건 남이건 그들을 괴롭히며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 땅에서 살게 하신 진짜 목적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현주소를 요한계시록은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 (계 9:1-11)
이 세상에 살 동안 하나님의 목적을 모르고 방황하는 사람들(“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의 내면세계에서 무자비하게 찔러대며(“쏘는”) 죽지 못해 살게 하는(“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사탄의 종인 영적 메뚜기(황충)를 계시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자들 중 핼 린지 같은 사람이 말세에 등장할 아파치 헬리콥터라고 코미디같이 엉뚱하게 해석했던 이 영적 메뚜기는 아마 죄책감, 낮은 자존감, 경쟁심, 열등의식, 피해의식, 원한,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공포, 혼돈… 같은 인간의 마음 속에 고통을 주고 괴롭히는 모든 것일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난 인간에게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죄의 결과입니다.
저 자신도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25년이 지나서야 하나님의 진짜 목적을 알게 되었으니 이 영적 메뚜기의 공격에 늘 맥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25년 중 소위 목회라는 것을 20년 가까이 하며 남들을 가르치고, 설교를 하고, 제자훈련도 하고… 하면서 “나보다 목회 제대로 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봐라” 라며 자부했지만 그 목적을 알지 못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신앙서적을 수도 없이 읽었지만 그 목적을 알 수 없었고, 그 누구도 가르쳐준 적이 없었으니 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창세전의 하나님 목적 곧 영원한 목적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을 얻고 헌신적인 사역을 해도 얼마든지 ‘살기도 괴롭군 죽으면 편하리’ 라며 탄식할 수 있습니다.
이 목적을 알고 그 목적을 따라 사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인데, 이것이 바로 신약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지체로 사는 교회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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