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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09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합니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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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대 교회 안에서 신음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동물원 철창에 갇힌 사자들로 비유합니다.

아프리카 정글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며 직접 사냥을 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자생하는 사자라야 사자의 본능에 충실해서 사자로서의 삶을 충만히 경험하고 발휘할 수 있지, 동물원에 갇힌 사자는 사자의 생명에 걸맞지 않게 극히 일부만 발휘해서 사는 존재로 전락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제도권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지만, 그들은 자신이 가진 영생을 충만히 경험하고 발휘하지 못한 채 철창같은 엉뚱한 종교제도에 갇혀 있습니다.

 

만약 철창에 갇힌 사자들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가?” 라고 질문한다면, 대답은 간단합니다.

손을 대고 자시고 할 필요없이 “동물원 철창을 탈출하여 아프리카 정글로 가라”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런데 사자들이 그 대답을 듣고도 그건 너무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니 들은 체 만 체 하고 계속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를 고민한다면 그들에게 많은 방법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즉, 동물원을 정글 비슷한 것으로 모방하여 바꾸려는 노력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철창 안의 면적을 크게 늘려 좀더 많이 뛰어다닐 수 있게 해달라 하고, 고기를 던져줘서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산 짐승들을 철창 안에 수시로 넣어달라고 하여 그 안에서 자기가 직접 쫓아다니며 잡아먹고… 등등 동물원을 개선해서 어느 정도 만족하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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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오늘날 현대 교회들의 모습입니다.

종교 개혁이니, 교회 바로 세우기 운동이니, 평신도 운동이니, 열린 교회니, 제자훈련이니, 셀교회 운동이니, 이머징처치 운동이니, 미셔널처치 운동이니… 하는 것들이 다 제도권 기독교에 여기 저기 손을 대서 뜯어 고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는 효과도 있고, 물론 하나님께서 쓰시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제한적인 복음을 가지고 성경에 있는 교회의 모델을 모방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온전한 복음과 온전한 교회 토양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자로 하여금 본능에 충실하여 사자의 생명을 전부 다 드러내고 발휘할 수 있도록 철창에서 해방시켜 아프리카의 정글로 보내서 거기서 동물의 왕으로 살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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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일 사자가 동물원에서 이것 저것 다 시도해보다가 안되니까 결국 서울의 동물원 철창에서는 탈출했지만 정글로 가지않고 서울 시내를 배회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곳에서 정처없이 떠돌다 가끔 눈에 띄는 개나 고양이나 쥐 같은 것을 잡아먹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연명하다가, 포획하려는 사람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면서 차에 치어 죽기 일수일 것입니다.

해방은 되었지만 도리어 비극으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한국에도 ‘가나안 교인'(“안 나가”를 거꾸로)이라는 신종 용어가 생길 정도로, 제도권 교회를 떠나 방황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고 하는데, 대안 없이 떠도는 이런 사람들이 바로 서울 시내를 배회하는 사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정글이 있는 줄 모르기 때문에 그곳에 갈 수 없는 사자처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참 교회의 토양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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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그런 사자들 중 서울 시내를 용케 가로질러 빠져나와 인적이 뜸한 시골의 벌판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사자들이 있다고 합시다.

소위 제도권 교회 밖에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가정 교회라는 이름으로, 평신도 교회라는 이름으로, 또는 유기적 교회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들이 이런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자들이 거기가 아프리카 정글이 아니기 때문에 또 다시 방황할 수 밖에 없듯이 이런 교회들도 얼마 지나면 또 방황하게 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제도에서는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는 듯 하지만 온전한 복음과 교회 토양이 무엇이지 모르기 때문에 헤매다가 또 다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합니까?” 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다가 이단과 사이비의 표적이 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다른 형태의 제도권 교회를 형성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다시 옛 종교생활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본색이 드러나서 종교 다원주의를 부르짖기도 하고, 범신론을 신봉하기도 하고, 무신론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복음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만족하며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생활이라고 믿고 안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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