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으로 수면마취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한달 전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 의사가 저에게 ‘평생 내시경을 해본 적이 없으니 한번 하는 것이 좋겠다’ 고 해서, 지난 주 드디어 위 내시경과 장 내시경을 하기 위해 수면마취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간호사로부터 ‘지금 마취제를 투여했으니 옆으로 누워 기다리면 곧 의사가 와서 한 시간 가량 내시경을 할 것’ 이라는 설명을 들었는데, 이제나 저제나 의사 오기를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네. 수면마취를 한다더니 내 정신은 어째서 이리도 멀쩡한가?”
“이 사람들 참 오래도 기다리게 하는구나.”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방에 들어왔길래 언제 내시경을 할 거냐고 물었더니 이미 다 끝났으니 옷 갈아입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믿기 힘들어서 정말 내시경이 이미 끝났냐고 재차 물었더니 25분만에 다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의사가 오더니 사진을 보여주며 내시경 결과를 설명해주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 기분이 어떨떨 했습니다.
“분명 나는 잠이 든 기억이 없는데 25분이나 경과했다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이 다 진행되고 끝난 것입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평소에 늘 믿고 있던 죽음 이후에 대한 저의 생각에 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후에 대해서는 성경이 자세히 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성경의 원리를 가지고 추측은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름 정리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죽는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영원한 세계에서 주님과 함께 거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저는 제가 죽어서 사랑하는 가족과 교회 성도들과 이별하자 마자 순식간에 그들을 영원한 세계에서 주님과 함께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들이 제가 죽은 후에 이 땅에서 몇 십년을 더 살다가 죽는다 해도 저는 죽는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을 다 만날 것이라는 사실.
1세기의 성도들이 죽은 날이나, 천 년 전의 성도들이 죽은 날이나, 백 년 전의 성도들이 죽은 날이나, 제가 죽을 날이나,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영원한 세계가 펼쳐질 날이나 전부 다 시간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다 같은 순간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나 존재하는 것이지 영원하신 하나님 쪽에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수면마취를 받고 25분이나 경과했는데도 전혀 그것을 실감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부터는 더는 시간이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순식간에 예수님과 함께 영원 속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 5:1)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리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빌 1:23)
오늘날, 우리가 죽으면 저 어딘가에 있는 낙원이라는 곳에 가서 한참 기다리다가 어느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나타나 천년왕국을 거쳐 그 후에 새하늘과 새땅에서 살게 된다는 식의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바울은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자마자 곧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천국에서 만나보자’ 같은 찬송가 가사에 “기다리던 성도들과 그 문에서 만날 때…” 라고 하는 것은 성경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말도 안되는 논리입니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죽은 후의 천국에서 기다리고 자시고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살 때도 기다리다 지치는 일이 수도 없이 많은데 천국에까지 가서 또 기다리다니…
복음을 제대로 모르니까 너무 생각없이 이런 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늘 죽는다고 해도 우리는 순식간에 그동안 이 세상에서 살았던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과, 그리고 앞으로 예수님 재림하기 전까지 예수님을 믿고 살아갈 미래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복음의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의 강림을 통해 교회를 세우셔서 이제는 아버지와 아들 안에 교회가, 교회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어 사는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16-20)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헬라어로 mone)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mone)를 그와 함께 하리라.” (요 14:2-23)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요 17:21-24)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창세 전 목적에 따라 예수님 안에서 이미 시공을 초월하여 위의 성경 구절들이 사실이 된 존재입니다.
즉, 아버지와 아들과 교회의 하나됨을 이 세상에서,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서 영원히 경험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체인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죽는 날이 각기 다를지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가 다 영원한 세계에서 동시에 함께 교회로서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영생을 계속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신비를 복음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셔서 지금 교회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말년에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바울이 감격과 흥분 속에 써내려간 에베소서 3장을 우리가 읽을 때마다 가슴이 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 복음을 이 땅에서 경험하는 것은 신약성경이 말하는 유기적 교회라야 가능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제도권 기독교의 온갖 왜곡된 틀 안에서 이 복음을 살겠다는 것은 신기루를 잡는 것이나 매한가지일 것입니다.
“자고 깨니 영원한 세계라.”
하나님의 창세 전 목적을 따르는 복음을 살고 있다면 이 땅에서든 죽은 다음이든 상관없이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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