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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

땅콩 리턴과 땅콩 박사 (2)

 

korean air return 땅콩박사 1

 

“땅콩 리턴” 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항공사 부사장인 여자에 관한 기사가 매스컴을 계속 달구고, 끊임없이 그녀를 질타하는 분위기 속에 흥미롭게도  다음과 같은 반응들도 있습니다.

 

“그만들 하시게. 그대들은 얼마나 깨끗하신가?”

 

“남보다 더 지위나 재물이 있을 때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우리 모두에 대한 경고… 손가락질은 나 자신에게도 할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고, 자신을 비롯해 누구나 그럴 수 있으므로 각자가 주제파악하자는 반응도 있고,

 

“이제 그만해라. 비행기도 한 대 없는 것들이.”

 

“인민재판 고만해라. 홍위병들아.

잘못된 우월감으로 순간의 실행한 것을 마치 무슨 중죄인처럼 몰아부치는 사회가 부끄럽지 않나?

재판을 받아도 징역갈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사 기업체에서 일어난 해프닝을 가진 자에 대한 한풀이로 몰아치냐?

그 옛날 재벌회장들은 상상 못할 짓을 더 했다.”

 

평소에 부자들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다가 이때다 싶어 한풀이 하려는 사람들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이런 반응도 있고,

 

갑을 1

 

 

 

 

 

 

 

 

 

 

 

“그 여자가 술김에 갑질한 것 참 잘못이지만 언론과 국민들도 그 사람을 완전 끝장내려는 것도 그녀의 갑질보다 더합니다.

그녀가 승무원에게 모욕을 준 것보다 훨씬 강도 높은 벌을 연일 매시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무장이 TV에 출연하여 그녀가 반성을 하고 있지 않다고 전국민에게 고하며 회사에서 계속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자도 그 여자와 동급입니다.”

 

이렇게 그 여자나 언론이나 국민이나 피해자나 다 거기서 거기요, 오십보백보라는 반응도 있습니다.

 

오십보백보1

 

그런데 이 항공사 사주의 딸이 국토부에 조사를 받으러 갔는데 거기서 벌어진 일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합니다.

이 재벌 3세가 한번 뜨니까 그룹의 사장급, 전무급 임원까지 수십 명이 총출동해서 그녀가 도착하기 전에 현장 정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출두하기 한두 시간 전부터 그들이 그녀의 동선 파악을 위해 건물 이곳저곳을 샅샅이 살피다가 건물 경비원에게 여자 화장실 청소를 다시 해 달라고 해서 결국 청소부가 다시 청소를 했다고 합니다.

또 항공사 직원들이 조사실 2층으로 향하는 1층 출입구를 기자들이 못 들어오게 막기도 했고, 그녀가 도착하기 전에 그녀가 어떻게 걸어오고, 질문은 얼마나 받고, 인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이런 사전 리허설을 몇 차례나 했다고 합니다.

 

그룹의 고위 임원들과 직원들이 그녀와의 관계성이 깊어서,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서그렇게 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권세 있는 사람 앞에서 알아서 기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가알아서기는

 

그런데 이렇게 알아서 기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교회 안에서나 기독교 단체 안에서도, 특히 중대형 교회 안에서 세상의 정부기관이나 군대나 회사 못지않게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세상은 그런 게 당연하지만 교회는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다를 바 없다는 게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5 – 28)

 

예수님께서 분명히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라고 하셨는데도 오늘날 교회 안에 ‘섬기는 직분’ 으로 위장한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런 계급의 윗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권세를 부리고 그들 밑에 있는 사람들은 알아서 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저는 “땅콩 리턴”의 주인공과는 정반대의 인생을 걸어갔던 “땅콩 박사” 조지 와싱톤 카버의 삶을 본받고 싶습니다.

 

george carver 1

 

이미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조지 와싱톤 카버는 미국의 농업경제의 판도를 바꾸는 혁명을 일으키고, 천재적인 발명가로 명성을 떨치며 찬란한 업적을 쌓았고,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음에도 소박하고 검소하고 겸손한 삶으로 일관되게 살았습니다.

얼마든지 부와 지위와 권세를 크게 누릴 수 있었는데도 그 길을 택하지 않고 살아간 정말 보기드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흑인으로서 차별을 받고 무시를 당하고 살면서도 그 자신은 백인들을 미워하거나, 받은 멸시에 대해 원통해하거나 억울해하거나 대항하거나 보복하거나 한 적이 전혀 없고, 백인사회를 향하여 흑인들의 인권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급진 흑인운동가들은 그를 ‘언클 톰(Uncle Tom)’ 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언클 톰’은 백인들에게 아첨하고 흑인들의 이권을 무시하는 흑인을 비난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비난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묵묵히 삶으로 영향을 끼치며 흑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실력을 기르게 하는데 힘썼습니다.

 

george carver 2

 

이렇게 하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닌데 그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요?

조지 카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으로 예수님의 원리대로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어떤 분의 “오늘은 사무장이 TV에 출연하여 그녀가 반성을 하고 있지 않다고 전국민에게 고하며 회사에서 계속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자도 그 여자와 동급입니다” 라는 반응에서처럼 그 피해자나 가해자인 항공사 부사장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을 그는 일찍이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에서 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Fear of something is at the root of hate for others, and hate within will eventually destroy the hater. Keep your thoughts free from hate, and you need have no fear from those who hate you.”

 

이것을 번역하면 대충 이런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미움의 뿌리에서 뭔가 두려움이 생기고, 속에 있는 미움이 궁극적으로 미움을 품은 사람을 파멸로 이끌 것입니다. 당신의 생각을 미움에서 자유롭도록 지키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예화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그가 농학자로서 땅콩산업에 기여한 것이 알려지기 시작할 때, 미국 남부의 땅콩산업 연합회에서 땅콩 경작자 회의를 열고 그를 초청하여 사업운영에 관한 조언을 듣고자 했습니다.

하필 흑인을 데려다 자문받을 필요까지 있겠느냐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 합의가 되어 조지 카버는 기차를 타고 회의 장소인 호텔로 찾아갔습니다.

실험기구와 수십 개의 병이 든 무거운 가방 두개를 양손에 들고 갔는데 주최측 사람들이 시청을 갔다고 해서 다시 그 가방들을 들고 시청으로 갔습니다.

가서 한참 여기저기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이미 호텔로 돌아간 뒤였으므로 다시 그 무거운 가방들을 들고 호텔로 갔습니다.

 

no negros

 

땀을 뻘뻘 흘리며 호텔 안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 수위가 그를 늙은이라 칭하며 흑인은 호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그를 가로막았습니다.

피곤에 지쳐 한참 동안 길 옆에 앉아 있던 조지 카버는 다시 수위에게 가서 땅콩 생산업자들이 안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자기가 왔다는 것을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침내 그가 호텔 안으로 들어가 회의장으로 들어서려 할 때, 지금 회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으니 기다려달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또 기다렸다가 오후 두시가 되어서야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후일에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때 나는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나도 인간이므로 그런 감정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나를 쳐다보며 밀치고 지나갔습니다.

나는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여기까지 멀리 온 것은 내 개인의 감정이나 터뜨리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일깨워주셨던 것입니다.

또 내가 부유한 실업가들이나 농장주들에게 공헌하러 온 것도 아니고, 메마른 밭을 경작하느라고 땀 흘리며 애쓰는 가난한 농부들을 위하여 온 것이고, 그 연합회라는 것도 그 농부들을 위한 기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지 와싱톤 카버 같은 사람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듯 합니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교회생활,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살기를 원하는 우리가 본받을 삶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지 와싱톤 카버의 전기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으므로 그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땅콩박사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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