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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7

영생을 맛보는가, 누리는가? (8)

 

entering god's rest

 

모세는 가나안 땅 코 앞에서 그 땅을 바라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했지만 모세의 시종이었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그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사실만 놓고 모세와 여호수아의 다른 점을 하나 찾는다면 아마 ‘과거의 경험을 의지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는가’ 일 것입니다.

모세는 40년 전 르비딤에서 백성이 물이 없다고 원망했을 때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온 경험을 의지하고 40년 후 가데스에서 똑같은 장면이 펼쳐졌을 때 역시 지팡이로 반석을 두번 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이 때는 하나님께서 “반석에게 물을 명하여 물을 내라” 라고 하셨는데도 과거의 생생한 경험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했습니다.

 

이에 반하여, 여호수아는 40년 전의 생생한 경험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해서 순종했습니다. 아마 옆에서 모세를 지켜보며 모세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은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는 40년 전 홍해 바닷가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취하여 홍해를 향해 손을 내밀었을 때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역사를 모세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출 14:21).

 

모세와 홍해 여호수아 언약궤

 

하지만 여호수아는 40년 후 요단강 앞에서 똑같은 장면이 펼쳐졌을 때 자신이 목격했던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가 모세 옆에서 생생하게 목격했던 자신의 경험을 의지했다면 필시 지팡이를 취해 요단강을 향해 손을 내밀었을 것이지만, 이번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요단강에 들어서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수 3:1 – 17)

 

모세가 손을 내밀자 홍해가 갈라져서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으로 걸어간 경험을 여호수아가 어찌 잊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 놀라운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결국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모세의 경우와 대조적입니다.

 

이미 여러번 언급했었지만, 히브리서 기자가 경고한 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장정 60만 명 중 두 명만 빼고 나머지 모두 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이 이 땅에서 약속하신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obedience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 3:15 – 4:11)

 

faith obedience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어째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지 그 이유를 히브리서 기자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믿지 않고 또 무엇을 순종하지 않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복음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의도, 계획, 목적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는 따로 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복음 곧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교회로서 이 땅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인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상당수는 그건 이 땅에서는 불가능하고 죽은 후 천국에 가서야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버립니다.

이 세상에서는 천국을 조금 맛보는 것일 뿐 이 세상을 떠나서야 그 천국을 누리게 된다는 비성경적인 사상이 현대 교회 안에 가득합니다.

 

즉, 이 땅에서는 영생을 맛보기는 하지만 누리지는 못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 안에 기정사실화 되어 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절대 다수처럼 주야장천 광야생활만 하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오늘날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교리와 사상을 신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이 땅에서 누려야 함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옛날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이미 기업으로 주셨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기업(상속)을 이미 다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inheritance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3 – 14)

 

바울 옥중서신

 

바울이 갇혀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기업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엄청나다는 사실에 압도되어 한 문장으로 기록한 내용입니다.

헬라어 원문에 위의 본문이 단 한 개의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가 얼마나 감격하고 흥분했으면 이 긴 내용을 문장 하나로 기록했겠습니까?

쉬지 않고 불러대서 편지를 대서하는 사람이 아마 진땀을 뺐을 것입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로서 이 기업을 이 땅에서 누리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그리고 앞으로 영원토록 이 기업을 누리는 ‘예수님짜리’ 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 1:23)

 

 

ephesians 3

 

바울은 또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엡 3:14 – 21)

 

우리는 교회로서 이것을 누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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