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바이올라는 그의 책 영원에서 지상으로 의 306-307 페이지에서 하나님나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오늘이자 또 내일이기도 하다. 그 나라는 이미 왔고 또 오고 있다.
사실상, 미래의 세계에 속한 하나님나라가 지금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미래의 실체이지만 말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미래의 세계에 속한 하나님나라가 현세로 침투해 들어왔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도래했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왕권 아래 사는 공동체이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의 생명에 의해 살아가며 함께 그 나라를 드러내는 공동체이다.
말하자면, 몸의 지체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인 부활을 경험해서 이제 죽음에서 살아난 자들로서 살아가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미래가 현존하는 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다.
제대로 역할을 수행한다면, 교회는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나라를 미리 맛보고, 하나님나라를 먼저 실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이 세상의 인간의 권세를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 18:36)
그 대신,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권위로 영의 세계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멸망시킨다.
하나님나라는 인간적인 노력으로 정치적 질서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 나라는 사람들의 삶에 더 깊게 파고들어 영향을 주는 영적 질서를 바꿔버린다.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이 땅의 정치세력에 충성을 바치지 않고, 예수님의 통치에 복종한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홀로 우리의 주님과 우리의 왕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는 사람들 속에서 조용하게 그리고 비밀리에 움직인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 4:26 – 28)
그 나라는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 군사적인 힘이 아니다. 즉, 강압적인 권력이 아니다.
그 나라는 폭력과 미움과 부정을 혐오한다.
하나님나라는 씨를 심는 사람과 많이 비슷하다. 그 나라의 성패가 씨가 심겨지는 토양의 성분에 달렸다.
그 나라는 겨자씨처럼 성장이 더디고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나라가 놀라운 능력과 영광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하나님나라가 오늘날 성취되었고 또 아직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미스터리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마 13: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막 4: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눅 8:10)
프랭크 바이올라가 하나님나라의 속성에 대해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세상은 그대로 내버려두시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성령의 강림으로 도래한 하나님나라입니다.
이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서 드러내고 대표하는 존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고, 우리는 이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교회를 바울은 “한 새 사람”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엡 2:15). 타락한 인간 세계를 뒤로 하고 새로운 종족이 사는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잘 아는 구절인 고린도 후서 5:17에서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또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은 계시문학체로 표현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계 21:1 – 12)
“새 예루살렘”,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로 상징된 교회가 이 땅에 있지만 실은 하늘 소속임을 계시문학체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니”, “하늘에서 내려오는”).
위의 말씀(그리고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 전체)은 흔히 오해하듯 미래에 예수님 재림 후 펼쳐질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실현되었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새로운 창조 세계인 교회를 뜻합니다.
이것은 위에 인용한 고린도 후서 5:17과 같은 의미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보석으로 단장한 것 같은 영광스런 모습으로 만드셨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엡 3:14 – 21)
이게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교회로 존재해야 할 이유입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함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넘쳐나는 새로운 창조 세계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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