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에 와서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오늘이 911 사태가 일어난 날이라는 것을 이제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13년 전 오늘은 빈 라덴의 알카이다가 미국 여객기 네 대를 납치한 후 뉴욕 세계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와싱톤의 국방성 본부 등을 무차별 공격해서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날입니다.
미국에서 911은 원래 한국으로 말하면 119 구조대의 전화번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이제 미국에서는 911이 ‘구조’보다도 먼저 ‘테러’의 상징으로 떠오르는 숫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911 사태가 미국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나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40년을 사는 동안 비행기 여행을 수도 없이 많이 했는데 911 사태 이전에는 비행기 여행에 한국의 고속버스 여행처럼 아무런 제약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공항에 보안 검색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으므로 비행기 티켓을 받고 게이트에 가서 비행기에 올라타면 그만이었습니다.
게이트에서 본인 이름을 확인하는 절차도 물론 없었기 때문에 한국 고속버스나 KTX처럼 티켓만 보여주면 누구나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또 공항에 가족이나 손님을 마중나가거나 환송할 때도 누구나 게이트 바로 앞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하루 아침에 싹 바꾸어놓은 것이 2011년 9월 11일의 ‘911 사태’ 입니다.
그후로는 공항뿐만 아니라 웬만한 주요 관공서에 들어갈 때도 보안 검색대를 거쳐야 할 정도이니까요.
또 야구장, 축구장, 농구장 등 모든 운동경기장 같은데도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니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인들을 무슨 일만 터져도 먼저 그것이 테러일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게 한 주범입니다.
사건 하나가 세계에서 가장 강대국이라는 미국을 이렇게 좌지우지할 수 있음이 놀랍지 않습니까?
아니, 911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4세기의 사건 하나가 기독교 전체를 바꾸어놓고 타락시켜 오늘날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친 역사를 연상합니다.
다름아닌 서기 312년 10월 28일에 벌어졌던 ‘밀비안다리 전투’에서의 콘스탄틴의 승리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콘스탄틴(274? – 337)은 서로마제국을 다스리던 두 명의 황제 중 하나였는데, 서로마제국의 패권을 놓고 다른 한 명인 막센티우스와 5년간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지리멸렬한 5년 간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바로 로마 진입로인 티베르강 위에 가로놓였던 밀비안다리에서의 전투였습니다.
콘스탄틴은 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서로마제국의 유일한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 마지막 전투 전날인 312년 10월 27일, 콘스탄틴은 자신의 군사 수보다 적어도 네 배가 넘는 막센티우스의 군대를 맞아 싸워야 하는 힘든 상황에서 그 유명한 환상을 봤다고 합니다.
그는 그날 저녁에 지는 해가 십자가 모양으로 밝게 비치고 그 위에 헬라어 알파벳 두 글자가 겹쳐 있는 표시가 나타나더니 “이 표시를 사용하여 네가 정복하리라” 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콘스탄틴이 봤다는 헬라어 알파벳은 ‘카이’(chi)와 ‘로’(rho) 라는데, 그는 이것을 ‘크리스토스’(그리스도)의 처음 두 글자라고 제멋대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표시를 즉각 모든 군사의 방패에 그려넣도록 했던 그가 이튿날 밀비안다리 전투에서 막센티우스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게 된 것이 교회가 삽시간에 타락하게 된 시발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콘스탄틴은 십자가와 두 글자를 자신에게 보여준 존재가 그리스도인들의 ‘신’인 예수 그리스도라며 서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중지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이듬 해인 서기 313년에 ‘밀라노칙령’을 발포하여 종교의 자유와 함께, 몰수했던 교회재산을 모두 교회들에 반환시켰습니다.
이때부터 기독교가 기득권을 가진 종교로 탈바꿈하여 서기 324년에 동로마제국까지 손에 넣은 콘스탄틴이 명실공히 로마제국 전체를 다스리는 황제가 되면서 기독교의 위상은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멸시와 박해를 받으며 약하디 약했던 모습의 교회가 황제의 비호를 받으며 졸지에 지상에서 가장 힘있고 인기 있는 종교로 변모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너도나도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교회 안에 하나님의 생명의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심판의 대상인 이 세상, 아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심판하신 세상 나라와 교회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자유롭게 예수 그리스도 안의 새 생명을 만끽해야 할 새 하늘과 새 땅인 거주지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예수님의 유기적 공동체인 교회가 이제 이 세상의 원리를 따라 크고 화려하고 높고 부유하고 힘있는 것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런 위상에 걸맞은 교회를 만들려니 교회 건물이 웅장해지고, 제도를 세우고, 조직을 짜고, 교회의 자연스런 주님과의 유기적인 교제 모임을 구약의 제사를 방불케 하는 예배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성직자 계급을 만들어 주님의 거룩한 성도들을 평신도라 칭하는 하층계급으로 전락시키고, 세상적으로 수준있는 지도자를 세우고, 법과 규례를 정하여 교인들을 컨트롤하는 등 성경과는 거리가 먼 교회의 모습이 출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기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했던 콘스탄틴이 봤다고 주장한 엉터리 십자가가 가져온 결과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새로운 생명체의 거주지인 신약성경적 교회를 도둑맞은 채 지난 1700년이 흘렀습니다.
그 후로 종교개혁이 아무리 많이 일어난다 해도 그것은 빙산을 들이받고 가라앉는 타이타닉호같은 배의 내부를 수리하는 격이 되어 말았습니다.
조금 있으면 완전히 가라앉아서 바닷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 배의 창문을 갈고, 벽에 페인트 칠을 하고, 바닥의 카펫을 갈고, 기관실을 새로 꾸미고, 객실의 침대와 가구를 새것으로 바꾸고… 이렇게 하는 것이나 매한가지입니다.
거대한 항공모함이나, 유조선이나, 크루즈 여객선같은 초대형 선박이든, 아니면 인천과 제주도 사이를 오가는 중대형 연락선이든, 아니면 소형 고기잡이 어선이든 관계없이 암초를 들이받으면 다 가라앉고 말듯이, 오늘날의 제도권 교회는 초대형 교회든, 대형 교회든, 중형 교회든, 소형 교회든, 가정집에서 모이든 다 콘스탄틴이 타락시킨 제도적 기독교라는 암초의 영향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든 지체가 자발적으로 역할을 감당하는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가물에 콩나듯한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미국인들이 ‘구조’의 상징으로만 알았던 911이라는 숫자가 이제는 ‘테러’의 상징으로 더 먼저 떠오르듯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생명체로서 교회가 오늘날 인간의 제도로 얼룩진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천 년 전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종교로 전락시켰던 유대인들의 땅에 오셔서 유대교를 개혁하지 않고, 십자가를 통해 새로운 창조 세계인 에클레시아를 만드셨던 예수님처럼 해야 합니다.
즉, 오늘날 기독교 종교로 전락한 제도권 교회를 개혁하려는 망상을 버리고,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고 새로 시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새로운 거주지로서의 유기적 공동체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초대교회가 이 세상과 유대교로부터 받은 박해 이상으로 우리가 오늘날의 세상과 제도권 교회로 부터 당하는 핍박을 감수해야 하는 외롭고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는 영광스러운 길이요,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일 곧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는 신나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저기서 이런 길을 걸어갈 사람들을 찾고 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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