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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

엉터리 성경 해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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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합을 깨뜨린 여자의 이야기에서 ‘옥합을 깨뜨린 것이 곧 자아가 깨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식으로 갖다붙이는 것은 성경의 저자가 의도한 것이나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것과는 동떨어진 해석입니다.

이것이 왜 엉터리 해석인지 설명하겠습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자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4복음서에 다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26:6-13

마가복음 14:3-9

누가복음 7:36-50

요한복음 12:1-8

 

그중 누가복음 7:36-50의 내용은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다는 사실 외에는 다른 세 복음서의 내용과는 아주 많이 다른 것을 볼 때 주인공이 세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자와는 다른 여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복음서는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같은 사건이고 같은 주인공이라고 추정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는 옥합이라는 말이 등장하지만, 요한복음엔 옥합이라는 말은 아예 없고 그냥 마리아가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고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옥합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나머지 세 복음서에서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엔 그냥 옥합을 가지고 왔다고만 되어 있지 옥합을 깨뜨렸다는 말은 없습니다.

오직 마가복음에서만 여자가 옥합을 깨뜨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옥합을 깨뜨린 것은 자아가 깨지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향유를 부은 것이 포인트이지 옥합을 깨뜨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럼 이 이야기에서 저자와 예수님께서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 26:12)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막 14:8)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요 12:7)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날이 가까워지자 제자들에게 여러번에 걸쳐 자신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죽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의 귀엔 그 말씀이 들릴리 만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다윗처럼 왕이 되어 통치하시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모두 다 한자리 차지할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그런 망상에 빠져있을 때 오직 한 여자(요한복음엔 마리아라고 소개)만이 예수님의 그 말씀에 귀 기울이고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자기가 가장 아끼는 귀한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해서 예수님과 마음이 통하는 그런 관계성의 아름다움을 이 이야기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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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의 세 복음서와는 다른 주인공을 등장시킨 누가복음에서는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눅 7:46-47)

 

이것입니다.

역시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것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아가 깨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옥합이 깨어졌음을 주목하고 갖다 쓰는 것이야말로 proof texting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것과는 상관 없이 자기 구미에 맞게 갖다붙이는 엉터리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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