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열 아홉살짜리 서울대학생이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했다는 뉴스가 매스컴을 장식했습니다.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놓치지 않을 정도이기 때문에 이제는 자살에 관한 뉴스를 접해도 사람들이 별로 놀라지 않지만, 서울대학생이 자살을 했다는 것 때문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것도 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서울대에 들어간 수재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서 유서에 “생존을 결정하는 것이… 수저 색깔이었다” 라는 내용을 남기고 자살했다는 것이 의외라서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살을 하는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인들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너무나도 힘든 상황에 처해서 자살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어떤 분이 저에게 “자살이 죄인가요?” 라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살에 대한 저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써서 답장을 했습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것이니 분명 자살이 죄이지만, 심한 우울증이나 정신병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자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살은 대개 자기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자기 연민을 하며 고민하다가 하는 것으로써, 하나님도 더 이상 아무것도 하실 수 없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불신이 죄이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결정하는 모든 죄 중에 자살도 포함되므로 이렇게 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따라가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기본입니다.
얼마 후, 그 분에게서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습니다.
“목사님!
그 이후 저 다시 잘 살려고 하고 있어요!
좋은 소식으로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목사님! 뵙고 싶어요!
뵙는 날 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셔요!”
하마터면 그분을 못 볼 수도 있었는데, 그분이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단하고 이겨냈기에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창세 전 목적을 이루는 것, 즉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것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 이외에 존재 이유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야기로 밤을 새웠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알지 못하므로, 복음을 총체적으로 모르고 부분적인 것을 전부로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극한 상황이 되면 자살을 생각하고 또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라고 하실 때까지 이 땅에서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신 요한복음 17장의 의미만 알면 이 땅에서의 삶이 하나님의 목적과 직결되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되므로 어떤 상황에 처해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죽어서 저 세상의 천국에 가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아는 부분적인 복음에서 빨리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신 대로 이 땅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가 되는 교회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서는 “자살이 죄인가요?” 같은 질문은 나오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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