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실력보다 20점이 더 붙을 지어다!”
“아멘”
이 축복의 선언과 화답은 수능을 하루 앞둔 한국의 어느 금식기도원 집회에서 외쳐진, 믿음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만 들으면 이것이 수능을 치는 전국의 모든 수험생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수능을 칠 자신들의 자녀들을 위한 것인지 구별이 가지 않지만, 추측건대 기도원에 와서 수능을 앞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던 부모를 위한 축복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수능을 치는 전국의 모든 수험생의 점수에 평소 실력보다 20점이 더 붙게된다면 그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하나마나 한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하고 저절로 나오는 질문은 어째서 “20점만 더 붙으라고 할까?” 입니다.
왜 30점 또는 50점, 아니면 100점이 더 붙으라고 하지 않는지, 더 나아가서 그 정도가 아니고 아예 만점 받도록 축복하지 않는지가 참으로 의문입니다.
이전에 교인 수 100명도 안되는 미국의 소도시(한인 인구는 천 명 남짓)에 있는 한인 교회 부흥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 온 유명 부흥강사가 “이 교회가 세계에서 헌금 제일 많이 나오는 교회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라고 황당하게 기도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왕 믿음을 발휘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도 믿음의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8년 전 독일 월드컵 때 한국 축구 대표팀의 관계자가 한국이 아프리카의 토고를 2대 1로 이긴 후, 존경하는 목사님에게 드리는 편지라며 독일 현지에서 쓴 내용이 인터넷 상에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대충 이렇습니다.
그동안 준비를 철저히 했지만 한국 선수들이 긴장을 한 나머지 전반전에 부진한 경기를 해서 먼저 실점을 했기 때문에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토고라는 나라는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부두교라는 종교를 믿고 주술사가 국가 대표팀을 따라와서 기도와 주술의 힘을 전세계에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기 때문에, 저는 하프타임 때 절박한 마음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엘리야의 하나님을 찾으며 간구했습니다.
토고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부족종교와 미신을 섬기는 수많은 영혼의 구원을 위해 한국에게 승리를 허락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세계선교를 위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우리 대한민국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또한 우리 축구 대표팀과 특히 그중 믿음의 용사 12명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후반전에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한국팀의 공격력이 살아나 두 골을 넣어 역전승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용사들인 이천수 선수가 동점골을, 안정환 선수가 결승골을 넣어서 더욱 기뻤습니다.
저는 이 승리가 목사님의 기도의 힘과 한국교회 성도들의 기도의 능력 때문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승리가 대한민국의 승리요, 또한 한국교회의 승리요, 그리고 목사님의 승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토고와의 경기를 마친 후 믿음의 동지인 네 명의 선수들과 함께 경기장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뜨거운 눈물의 감사 기도를 드렸는데, 전세계 매스컴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무언의 복음이 전파된 줄 믿습니다.
앞으로 싸워야 할 프랑스와 스위스는 강한 팀입니다. 유럽선교와 세계선교를 위해 우리 대한민국이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로 꼭 넘어갈 수 있도록 더 간절히 기도해주십시오.
이게 구약의 이스라엘이 블레셋 나라와 전쟁했던 것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한국이 축구경기에서 이긴 것이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이랍니다.
대한민국 = 하나님 나라
이런 등식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기독교 안에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21세기 한국의 기독교 안에서 이런 것이 굳센 믿음으로 통한다는 게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건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한국 기독교에 만연한 현상입니다.
한국의 기독교를 매도한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제가 한국에서 사역자들을 위해 세미나를 인도할 때 위의 편지를 백 명 남짓한 참석자들 앞에서 읽어주었는데 웃는 사람이 거의 없이 조용했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합니까?
위의 편지 내용을 들으면 기가 막혀서 열 받고 웃음이 절로 나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강의가 끝나고 거기에 참석했던 친구 목사 왈, 거기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 편지 내용에 동의하기 때문에 별로 반응이 없었다고 해서 한국 기독교에 대해 대충 이해가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위의 편지 내용을 읽고 하나님을 그런 것에 끌어다가 사용하는 유치한 기복신앙에 열 받았다가 그 밑의 댓글들을 보고 그래도 위안이 좀 되었습니다.
그중 다음과 같은 반응들이 저를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기도 열심히 하는 팀과 기도하지 않는 팀이 축구경기를 하면?
기도와는 관계없이 축구 잘 하는 팀이 이깁니다.
축구 잘 하는 놈보다 기도 잘 하는 놈이 축구경기에서 이긴다면 그건 축구시합이 아니라 기도시합이 되겠지요.
축구는 축구일 뿐, 그냥 축구로서만 즐기면 됩니다.
축구경기 지면 지옥에 간답디까?”
“유치한 기독교가 부끄럽습니다
토고가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경기에 졌다는 결론은 너무나 터무니 없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기독교 국가를 승리하게 해주셨다면, 믿음이 제일 좋은 국가가 우승하겠군요.
근데, “하나님 잘 믿는” 미국은 왜 3:0으로 패했는지… 우리와 스위스 전에서는 우리가 지겠네요.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이며 칼빈의 종교개혁지인 스위스를 어떻게 이깁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수준이 어린아이가 아빠에게 조르는 수준이군요.”
“가상 인터뷰
기자: 한국 축구 기술 보강할 것 뭐가 있습니까?
축구팀 관계자: 기도가 모자랍니다. 기도 보강해야 됩니다.
기자: 토고 전 승리의 요인은 뭐라 생각합니까?
축구팀 관계자: 기도입니다.
기자: 브라질 등 축구 강국에게 배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축구팀 관계자: 배울 것 없습니다. 그라운드에서 기도하지 않는 것들에게는 배울 것 없습니다.
기자: 우리가 다음 경기에서 경계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축구팀 관계자: 안 믿는 선수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고로, 그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팀은 프랑스와 비기고 스위스에게 져서 조 예선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위의 그 축구 관계자의 눈으로 볼 때 그 이유는 한국 교회와 자신과 믿음의 용사인 선수들의 기도가 부족해서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고, 결과적으로 유럽선교와 세계선교에 먹구름이 끼게 되었겠지요.
수능에서 20점이 더 붙게 해달라는 기도나 월드컵 축구에서 이기게 해달라는 기도나 다 미신적인 기독교를 반영해주는데, 이런 기도는 절에서도 불교신자들이 부처님께 비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믿음이 하도 좋아서 아무도 못 말릴 것입니다.
복음이 왜곡되어도 한참 왜곡된 이런 현실 속에서 신약성경이 말하는 에클레시아를 세우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에클레시아는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모든 필요를 뒤로 하고 오직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하나님의 목적 곧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것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게 됩니다.
신약성경과는 거리가 먼 기복적 복음이나 호국적 복음이나 세상을 바꾸겠다는 복음 같은 것을 고수하는 인본주의 기독교가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는 에클레시아를 이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베소서 2:19 – 3:13에서 말하는 온전한 복음만이 왜곡된 기독교에 물든 사람들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최근에 올바른 복음을 제대로 알고 받아들여 20년이 넘는 제도권 교회의 목회를 내려놓은 다음, 교회 간판 다 떼고 다음과 같이 간판을 교체한 분이 있어 위안이 됩니다.
간판이 더는 필요없으므로 아예 없애려고 했는데 구청에서 공짜로 간판을 교체해줘서 이렇게 간판을 달았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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